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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기:드림캐스트

드림캐스트(Dreamcast)

게임기명:
드림캐스트
일본어명:
ドリームキャスト
영어명:
Dreamcast
통칭:
드림캐스트
약칭:
드캐
세대구분:
거치형 6세대
개발사:
세가 (SEGA)
발매일:
1998-11-27
미디어:
GD-ROM, CD-ROM
저장매체:
비쥬얼 메모리카드
CPU:
히타치 SH-4 x 2
메인메모리:
16MB
비디오메모리:
8MB
사운드메모리:
2MB
그래픽칩:
PowerVR2 CLX2 100MHz
지원색상:
256색, 16비트 컬러, 24비트 컬러
화면출력:
컴포지트, RGB케이블, S-VIDEO, D-SUB
사운드칩:
Yamaha SISP(ARM7 AICA 커스텀 프로세서)
지원음원:
PCM/ADPCM 통합 64채널, MIDI XG 규격 128채널
음원출력:
16bit 2채널 스테레오
미디어스펙:
CD-ROM, GD-ROM (1.2GB 전용매체)
온라인지원:
33.6k 모뎀(북미는 56k 모뎀) 기본장착, 브로드밴드어댑터(패스트 이더넷) 별매
온라인플랫폼:
세가넷, 게임스파이(북미), 드림아레나(유럽)
전원:
자체전원 (110V 60Hz)
컨트롤러:
전용포트 4개
확장슬롯:
모뎀 슬롯, 시리얼포트
에뮬:
Chankast, nullDC

기본정보

드림캐스트(Dreamcast, ドリームキャスト)는 세가 (SEGA)에서 만든 거치형 6세대 게임기이다. 약칭은 국내에서는 ‘드캐’, 일본에서는 ‘도리캬스(ドリキャス)' 등으로 불렸으며, 보통 앞자를 따서 ‘DC’로 표기한다. 일본에 1998년 11월 27일 처음으로 발매되었으며, 북미에는 1999년 9월 9일에 발매되었다. 안타깝게도 이 시기에 국내 대기업들이 게임사업에서 완전 철수한 다음이라 당시 세가는 직접 한국에 진출하지 않은 탓에 국내에 정식 발매된 적은 없다. 기기자체의 완성도와 개발환경은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이어서 개발자들과 게이머를 모두 만족시키는 기기로서 만들어졌다.

이름인 드림캐스트는 꿈(Dream)널리 퍼트린다(Broadcast)는 의미로 지어졌다. 참고로 작명자는 현재는 고인이 된 워프의 대표 이노 켄지라고 한다. 1) 로고의 소용돌이 모양은 꿈이 확장되며 무한히 퍼져 나가는 모양을 형상화 시킨것이라고 한다. 또한 시스템 부팅 음악은 사카모토 류이치가 작곡했다.

새턴과 마찬가지로 아케이드 호환 기종인 NAOMI를 먼저 선보여 자사 아케이드 게임의 이식성을 높이는 계획을 유지했다.

드림캐스트는 메이저 게임기로서는 처음으로 범용OS(Windows CE 커스텀)를 장착한 게임기였으며, 역시 메이저 게임기로서는 처음으로 모뎀 기본장착을 했고, 또한 이 모뎀을 탈착을 통해 LAN카드로 변경함으로서 단순히 네트워크 기능을 제공만이 아니라 처음부터 기능 업그레이드를 전제로 만들어진 매우 선진적인 게임기였다. 이 덕분에 윈도우 환경으로 게임을 이식하기가 매우 용이했으며, 네트워크 플레이가 가능한 게임들 - 특히 협동 플레이가 가능한 판타시스타 온라인이 선보이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고, 이를 통해 현재까지도 유행이 지속되는 ‘헌팅류’ 게임을 만들어내는 계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부가적으로 스마트폰을 통해 서브모니터에 정보를 전달하거나 해당 화면을 조작함으로서 게임과 실시간으로 연계시키는 ‘스마트 글래스’ 개념을 비주얼 메모리로 (미력하나마) 최초로 시도하는 등, 말그대로 시대를 너무 앞서간 기기였다.

가장 먼저 발매된 일본 내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1 위주로 완전 재편된 시장 한가운데에서 서드파티의 큰 지원을 받지 못한 채로 발매되었고, 뒤이어 발매된 플레이스테이션2의 맹추격에 밀려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북미시장에서는 런칭부터 매우 큰 반향을 일으키며 대히트에 성공했다. 그러나 세가는 일본 내에서의 누적적자의 팽배와 모회사인 CSK의 회장이자 세가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오오카와 이사오 회장의 건강악화로 인하여 결국 게임기 사업 철수를 2001년 1월 31일 선언하게 되었고, 이로인해 일본 뿐만 아니라 분위기를 타기시작했던 북미와 유럽쪽의 시장까지 한번에 수직낙하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짧은 영업기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약 240만대, 일본 외의 북미, 유럽지역에 약 820만대 를 출하해 전 세계 누적 출하량은 약 1060만대에 이르른다.

상세설명

드림캐스트는 세가의 전세대 가정용 게임기인 세가새턴(Sega Saturn, セガサターン)의 패배를 철저하게 분석해서 만들어진 게임기였다. 종전까지의 ‘필요에따라 해당 필요기능을 조립한’게임기가 아닌, 철저하게 밸런스를 염두에두고 ‘범용적’으로 쓸 수 있도록 처음부터 설계를 했으며, 세가 게임기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랄 수 있는 둥근 방향키조차 버리고 십자키를 장착하고, 하위기보다 사용가능한 버튼수를 감소시키는 전무후무한 방향성의 전환을 해가면서 만들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타이틀로고의 컬러를 ‘행운’의 상징으로 오렌지 색으로 정했다는 일화는 당시의 세가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드림캐스트를 만들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드림캐스트의 끔찍할 정도의 분투기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역사

탄생

드림캐스트는 세가새턴의 열기가 플레이스테이션1에 밀려 점차 식어가는 1997년 즈음에 시작되었다. 세가는 세가새턴의 일본시장에서의 사실상 실패에 더해서 1위나 다름없었던 북미와 유럽시장을 통째로 빼앗기고 말았다는 뼈저린 후회속에서 이전세대에서 일방적으로 진행했던 차세대기의 개발에대한 논의를 북미와 공동으로 진행하게 된다. (특히 이 시기에 SOA, 세가 오브 어메리카의 대표는 E3쇼에서 ‘새턴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다’라는 발언이 나올 정도로 일본 세가의 독선적인 태도로인한 실패에 반발하고 있었다) 세가 재팬과 세가 오브 어메리카는 서로 다른 기계를 설계하되 기본적으로 ‘개발이 용이하고’, ‘하드웨어적으로 커스텀화시켜 단가 하락에 용이한’ 하드웨어를 타겟으로 한다는 전제를 두고 시작하게 된다. 이것은 모두 결쟁기종이었던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에서 본받은 것이었다. 그 결과로 두가지 샘플이 만들어지게 된다. 하나는 북미에서 디자인한 코드명 ‘블랙벨트(Blackbelt)’, 또 하나는 일본쪽에서 디자인한 코드명 ‘카타나(Katana)‘였다. 이 두 기종은 기본적으로 같은 방향성을 전제로 만들어졌으나 CPU와 그래픽 처리 로직을 각각 다른 것을 채용하고 있었다.

먼저 나온 것은 일본에서 디자인한 ‘카타나(Katana)‘로, 초기 코드명으로 버추어 파이터의 보스인 ‘듀랄(Dural)‘을 사용하여 먼저 알려졌으나 중간에 코드명이 ‘카타나’로 바뀌었다. 이 코드네임은 ‘칼(刀, かたな)‘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 관서 지방 사투리로 ‘이겨야만 한다(카타나 아칸)‘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이 제품은 새턴의 CPU인 SH2를 만들었던 히타치가 만든 모바일 지향의 프로세서 SH4를 CPU로 장착하고 비디오로직(현 이미지네이션)에서 설계하고 NEC에서 생산할 예정이었던 효율성 중시의 GPU PowerVR을 장착한 기기였다.

뒤이어 만들어진 것은 미국쪽에서 설계한 ‘블랙벨트(Blackbelt)‘로, 실제로 외부에 유출된 적이 없어 명확치는 않으나, CPU로는 모토롤라의 PowerPC 계열을, GPU로는 3DFX사에서 만든 유명 칩셋 부두 시리즈가 장착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두 기종 모두 상당히 밸런스잡힌 성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상당기간동안 경합을 다투었다. 블랙벨트의 경우 부두라는 이미 검증된 하드웨어 성능과 생산력으로 안정감이 있었고, 카타나의 경우엔 더 높은 성능과 낮은 단가, 효율성이 있었다. 경합 과정에서 여러 논의가 오갔으며, 일본과 미국 양쪽에서 많은 실험을 거친 결과 카타나 프로젝트가 승리를 거두는 형태로 결론이 나게 된다. 이 과정에는 성능도 성능이지만, 세가의 PC시장 진출과 맞물려서 드림캐스트에 당시 PC시장에 확산되어가고 있었던 마이크로소프트DirectX를 사용할 수 있는 윈도우 CE (Windows CE) 커스텀 버전을 지원하려는 기획과도 연관되어 GLiDE로 대표되는 부두의 자체 라이브러리를 쓰는 것보다는 PowerVR 쪽이 더 유리하리라는 판단도 포함되어있었다.

이 과정에서 세가와 3DFX간에는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3DFX는 테스트기종에 장착된 자사의 칩셋과 커스텀을 제공하면서 자신들이 채택되리라고 확신한 나머지 ‘세가의 차세대기에 부두 칩이 들어간다’는 내용의 광고를 했던 것이다. 3DFX는 비밀준수 의무를 저버린 행위를 한것으로 인해 SOA와의 소송전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단 이 때문에 카타나 프로젝트가 선정된 것은 아니었다고 당시 세가 미국지부의 사장이었던 스톨라 씨는 밝히고 있다.

추가바람

1) 당시 새턴이 ‘사탄’과 발은 같아 일본내에서 워낙 악평을 들어서 사내에서 이름 짓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었던 듯 하다

 

덧글

게임기/드림캐스트.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3/07/23 21:11 저자 에리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