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슈타인즈_게이트-비익연리의_달링:크리스1_01

크리스 루트 1 : 애곡 비탄의 아포리아 (1)

마유리 : 앗! 저기 저기— 어떻게 됐어? 잘 된 거야?

- 옆 방에서 돌아오자마자 바깥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던 마유리가 질문해 왔다.

이타루 : 마유씨. 저거 봐, 저렇게 두 사람이 손목에 12호기를 차고 있다는 건, 실패했다는 것임둥.

마유리 : 아, 그런가— 늦어 버렸구나. 유감이야.

- 더 자세히 말하자면 통이하고 마유리 두 사람이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D 메일 보내기에는 실패한 거지만, 그런 사소한 건 어찌 되든 상관없다. 문제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거다. 다시 한 번 이 12호기의 기본적인 기능을 떠올려 보았다.

- 체온, 혈압, 맥박, 발한 상태 등을 모니터링하여 바람을 핀다고 판단되면 전류(정확히 말하면 강력한 저주파)가 흐른다.
- 억지로 벗기려 하면 전류가 흐른다.
- 싸움 같은 것으로 감정이 격앙되면 전류가 흐른다.
- 1미터 이상 서로 떨어지면 전류가 흐른다.
- 손을 잡으면 전류는 멈춘다.\\

- 그리고—

- 마음이 서로 통하면 벗겨진다— 다.

- 적어도 D 메일은 내일 낮 12시를 넘지 않으면 보낼 수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부터 약 18시간 동안 나는 크리스하고 달라붙어서 지내야만 한다는 게 된다. 그 동안에 마지막 항목인 “마음이 서로 통하면 벗겨진다”는 조건을 만족시켜서 12호기를 벗는다, 라는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도록 하자. 왜냐하면 나하고 크리스 사이이기 때문이다. 18시간 함께 있는다고 하면 지금 이상으로 험악한 사이가 되는 일은 있어도 사이가 좋아진다는 건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크리스 : 그러면, 어떻게 할래?

린타로 :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봐도, 어떻게 할 도리도 없잖나.

크리스 : 말해 두겠는데, 난 하룻밤 동안 당신하고 이 상태로 지내는 건 사양이야.

린타로 : 그건 내가 할 말이다!

마유리 : 저기— 저기— 두 사람 다, 침착해, 침착해—

- 마유리가 말려서, 우리는 창 끝을 거두었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말싸움이 시작되어 전기 충격을 먹게 될 뻔 했다.

크리스 : 몇 번이나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다니, 학습 능력이 없는 거 아냐?

- 큭— 자기가 한 일은 생각도 안 하고, 저딴 소릴 하다니.

마유리 : 역시 말야, 모처럼이고 하니까 오카린도 크리스도 이걸 기회로 해서 사이 좋게 지내면 될 거라고, 마유시—는 그렇게 생각해요.

린타로 : 그게 가능하면 이런 고생은 안 하지.

크리스 : 유감이지만 나도 거기엔 오카베한테 동의해.

린타로 : 정말 웬일이냐. 웬일인 김에 의견이 맞고 하니 이게 벗겨지거나 하면…

크리스 : 그렇게 간단히 될 리가 없잖아, 바보가.

- 정말이지 일일이 신경에 거슬리는 말을 하는 여자로군. 이것만 차고 있지 않다면 이 랩에서 가장 높은 인물이 누구인지 제대로 가르쳐 줬을 텐데.

마유리 : 음— 어째설까나—? 마유시—는 좀 이상해—

이타루 : 마유씨, 왜 그럼둥? 뭐가 이상하단 겅미?

마유리 : 왜냐면 마유시—는 오카린하고 크리스하고 둘 다 사이가 좋잖아. 그럼 오카린하고 크리스도 사이 좋게 지낼 수 있는 거잖아?

린타로 : 그야말로 마유리다운 아무 생각 없는 의견이긴 한데, 그게 되면 인류는 모두 한 형제가 되어 유사 이래 항상 갈구해 온 평화와 우애의 세계는 앳저녁에 실현되어 있겠지.

마유리 : 형제라— 으음— 마유시—하고 오카린은 오누이 같긴 한데 오누이는 아니니까, 으음— …역시 안 되는 걸까—?

크리스 : 겨,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는… 거 아냐?

이타루 :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론은 말이 되는 게 대단함.

- 그건 그렇고, 문제는 이 12호기다.

린타로 : 어떻게 벗길 방법이 없을까?

크리스 : 있다면 그렇게 당황하지도 않았을 거야.

린타로 : 애당초 팔 물건으로 만들 거였으니 보통 안전장치 같은 걸 달아 놓는 걸 생각하지 않나?

크리스 : 그러니까 처음부터 완성품이 아니라고 했잖아.

린타로 : 애당초 왜 이렇게 튼튼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나.

크리스 : 되도록 본격적으로 만들라고 한 건 당신이야.

린타로 : 난 몰라.

크리스 : 자기 불리할 때만 모르는 척 하긴.

린타로 : 모르니까 모른다고 한 거다.

이타루 : 그러니까 두 사람 다, 그렇게 화내고 있으면 또 전기 흐를 것임둥.

크리스 : 애당초 하시다가 놀래켜서 이렇게 된 거잖아!

린타로 : 애당초 네가 놀래킨 거잖나!

크리스 : 꺅!

린타로 : 오왓!!

이타루 : 것 봐, 말 했잖수.



- 시계를 보았다. 19시 반이 조금 넘어 있었다. 그렇다는 건 그 때부터 아직 1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거다.

마유리 : 오카린하고 크리스, 괜찮아~?

- 마유리가 우리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그 때부터 아직 1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전기 충격을 먹은 횟수는 이미 두 손의 손가락을 모두 써도 부족할 정도로 부풀어올라 있었다. 그 정도나 되고 하면 슬슬 좀 조심해도 될 것 같지만, 아무래도 크리스가 상대가 되고 하니 금새 성질이 뻗치고 만다.

이타루 : 정말이지. 말다툼 하다가 전기 흐르는 건 슬슬 두 사람 다 학습하는 게 좋지 않겠음?

린타로 : 그 정도는 따로 이야기 안 해도 알고는 있다.

이타루 : 알고 있다면 관두면 될 텐데.

린타로 : 그걸로 관둘 수 있다면 이런 고생은 안 하겠지.

크리스 : 난 오카베만 쓸데없는 소릴 안 하면 별달리 화내거나 하지 않을 거야.

린타로 : 쓸데없는 소릴 하는 건 네 쪽이잖나.

크리스 : 내 말의 어디가 쓸데없는 소리란 거야.

린타로 : 방금 그 말이 쓸데없는 소리란 거다.

- 이런 식으로 입만 열면 말싸움이 되고 만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몇 번이고 전기 충격을 받으면 몸이 버티지 못한다. 1시간 정도로 이런 식이었기 때문에 과연 내일 낮까지 우리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여부가 위험해지는 수준이다.

마유리 : 저기 말야— 마유시— 생각엔 말야—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닐까—?

크리스 : 어?

이타루 : 아— 그러고 보니 손을 잡고 있으면 전기가 안 흐른다고 했지.

- 그랬… 다.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좀 전에 이 12호기의 기능에 대해 확인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추태를! 그렇게 간단한 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니.

크리스 : 오카베…

- 크리스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린타로 : 그래…

- 약간 고개를 끄덕이고서 나도 오른손을 내밀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꽉 쥐었다.

마유리 : 와아—!

이타루 : 방금 전까지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두 사람이 굳은 악수라니, 전 me가 울었다!

- 그리고—

린타로 : 넌 조수잖냐, 어째서 이렇게 중요한 걸 잊고 있었나!

크리스 : 당신이야말로, 좀 전에 들은 걸 잊어버리다니, 바보 아냐, 죽는 게 어때?

린타로 : 뭐라고!?

크리스 : 뭐라아!

마유리 : 아아— 역시 이렇게 되는구나—

이타루 : 그렇네염—

크리스 : 애당초 그 때 당신이 빨리 메일을 보냈다면 이렇게는 안 됐을 거야!

린타로 : 그렇게 치자면 네가 잘못해서 스위치를 눌러 버린 게 잘못이잖아!

크리스 : 애당초 신작 가젯을 만들라는 말을 꺼낸 게 누구야.

린타로 : 그 때 네가 타임트래벌 강의 같은 걸 해서—!

이타루 : 저기— 마유씨.

마유리 : 왜 그래요— 통이.

이타루 : 이 두 사람, 언제까지 저렇게 말싸움이나 하고 있을까나?

마유리 : 아무리 전기가 안 흐른다곤 해도, 너무하긴 하네—

이타루 : 그치만 말여— 이렇게 보고 있으면 그거 같지 않음?

마유리 : 그거라니?

이타루 : 부부싸움.

마유리 : 아—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

크리스 : 잠깐, 뭐가 부부싸움이야.

린타로 : 그래! 도대체 이걸 뭘 어떻게 보면 부부싸움으로 보이냐!

이타루 : 뭘 어떻게라니…

마유리 : 그치—

- 마유리와 통이가 시선을 준 것은 서로 꽉 붙잡고 있는 내 오른손과 크리스의 왼손이었다.

이타루 : 손을 잡은 채로 싸우고 있으니까 옆에서 보면 부부싸움으로밖에 보이지 않잖음, 상식적으로.

린타로 : 그렇긴 하지만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마유리 : 저—기요.

- 갑자기 마유리가 손을 들었다.

이타루 : 예, 마유씨.

마유리 : 두 사람 다, 이제 그만 싸우는 게 좋겠다고, 마유시—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타루 : 랄까 말여, 두 사람 다 좀 전부터 계속 같은 걸로 싸우고 있잖음둥. 구경하는 것도 슬슬 질림둥.

- 별달리 구경거리가 되기 위해 하는 건 아니었지만 말야. 그렇다곤 해도 나도 이제 슬슬 더 이상 쓸데없는 설전을 계속해 봤자 헛수고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더 빨리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어느 쪽이 말을 꺼내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는 게 옳다. 문득 크리스의 얼굴을 보자 역시 마찬가지 생각을 했던 것인지, 상당히 곤란한 듯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린타로 : 그렇군. 뭐, 마유리나 통이가 하는 말도 맞는 말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크리스 : 나도… 이론은 없어.

린타로 : 그럼 앞으로는 누구 탓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도록 할까?

크리스 : 그래…

- 원래는 이 시점에서 악수라도 해야 하겠지만, 이미 우리는 손을 맞잡고 있었다. 뭔가 좀 찝찝하긴 하지만 이걸로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다고 봐도 되겠지.

마유리 : 그럼 오늘 두 사람은 어떻게 할 거야?

크리스 : 응? 어떻게 하다니, 무슨 말이야?

마유리 : 무슨 말이긴, 확실히 두 사람이 1미터 이상 떨어지면 안 된다고 했지—? 으음— 크리스는 오챠노미즈에 있는 호텔에 묵고 있다고 했던가?

크리스 : 마, 말도 안 돼! 오카베하고 같이 호텔에 가다니, 사양할래.

- 그건 내가 할 소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또 말싸움이 시작될 것 같아서,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마유리 : 그럼 두 사람 다 여기서 묵을 거야?

린타로 : 어쩔 수 없으니 그렇게 해야만 하겠지.

마유리 : 크리스도?

크리스 : 어쩔 수 없지만 그것밖에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네.

마유리 : 그런가—

- 우리 대답에 마유리는 뭔가 생각하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마유리 : 저기 말야, 두 사람한텐 미안하지만 마유시—는 돌아가 봐야 해.

린타로 : 뭐, 그거야 그렇지.

마유리 : 통이는?

이타루 : 나도 조금만 더 있다가 돌아갈 것임둥.

마유리 : 그렇지— 그렇다는 건 조금만 더 있으면 오카린하고 크리스가 둘만 여기에 남게 된다는 건데, 괜찮을까나아?

크리스 : ……

린타로 : ……

- 그렇… 군. 중대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밤이 되면 여기에 남는 건 나하고 크리스 둘 뿐이라는 게 된다. 그건 곧—

크리스 : 잠깐, 그건 안 돼! 곤란해!

마유리 : 으음— 마유시—도 같이 있어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말야, 오늘은 꼭 돌아가야만 해—

크리스 : 그걸 좀 어떻게든!

마유리 : 미안해— 크리스.

크리스 : 그럴 수가…

마유리 : 아, 하지만 혹시나 통이한테 부탁하면 남아 줄지도 몰라.

크리스 : 뭐? 하시다가?

- 크리스는 통이하고 날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크리스 : 오카베하고 하시다하고 나, 세 사람…

이타루 : 아, 나라면 마키세씨가 『가면 안 돼애』하고 말해 준다면 여기 남아 줄 수도 있는디?

크리스 : 그런 소릴 할까보냐!

이타루 : 걱정 안 하셔도, 오카린하고 두 사람이서 덮치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괜찮슴여. 하악하악.

크리스 : 에잇— 가까이 오지 마, 이 BYONTAI! 랄까, 그런 소릴 듣고서 부탁할 리가 없잖아!

-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였다.

이타루 : 너무해여— 그냥 엄메리칸 조크였는데.

크리스 : 어디가 아메리칸 조크야. 애당초 하시다가 말하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아.

- 그건 그것대로 너무하다고 생각하네만, 조수여.

이타루 : 뭐 하지만 농담은 됐고, 사실 나도 오늘은 일이 좀 있어서 돌아가봐야만 함둥.

- 즉 어떻게 되든 간에 여기 남는 건 나하고 크리스 둘 뿐, 이라는 게 된다는 이야기다.

마유리 : 그런가— 응. 하지만 아마 괜찮을 거야, 크리스. 저래뵈도 오카린은 신사라서 이상한 짓은 안 하지 싶어. 응, 그렇지, 오카린?

린타로 : 저래뵈도란 말이 좀 신경 쓰이긴 하지만, 일부 사전에는 『신사』를 찾아보면 『오카베 린타로를 말함』이라고 쓰여져 있을 정도로 정확한 평판이지.

마유리 : 그렇대—

이타루 : 하지만 신사는 신사라도 BYONTAI 신사일지도 모르지.

크리스 : 더욱 믿음이 안 가는데!

린타로 : 랄까 조수 너 말야, 지금까지 몇 번이나 여기서 묵었잖나. 지금와서 뭘 걱정하는 거냐.

크리스 : 저기 말야, 아무리 생각해도 여느 때하곤 상황이 다르잖아.

- 큭— 사람이 직접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 준 건데.

크리스 : 어쨌든 이상한 짓을 하면 소리 지를 거야.

린타로 : 너야말로 묘한 짓을 하면 용서치 않겠다.

크리스 : 어째서 내가 묘한 짓을 한다는 거야!

- 그건 그렇다 치고, 참 기분이 나빠진다. 생각해 봐라. 상대는 조수다. 여기서 하룻밤 두 사람이서만 있는다고 해서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기나 하겠냐. 무슨…

린타로 : 그래, 나다. 뭐? 조수가 “기관”의 앞잡이가 아닐까, 라고? 걱정 마라. 설령 그렇다고 해도 저런,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남아있는 여자한테 홀릴 내가 아니다.

크리스 : 어이, 아무렇지도 않게 실례되는 소릴 하고 있잖아.

린타로 : 흥. 몽고반점녀는 입다물고 있어라.

크리스 : 몽고반점 같은 거 없어.

마유리 : 정말이지 또 그렇게 싸우다니—

- 완전히 질린 것인지, 웬일로 마유리가 화가 난 양 말했다.

마유리 : 알겠어요? 마유시—는 이제 슬슬 돌아갈 건데, 두 사람 다 사이좋게 있으세요. 싸움 같은 거 하면 안 돼.

린타로 : 예.

크리스 : 죄송합니다.

마유리 : 예, 두 사람 다 대답 잘 했어요. 그럼 통이는 어쩔래?

이타루 : 아, 나도 돌아갈까나… 아, 그 전에 오카린.

린타로 : 뭐냐?

이타루 : 예의 새 가젯 제작에, 랩에 있는 부품을 적당히 써도 괜찮지?

린타로 : 그래, 물론이다. 모두 다 너한테 맡기지. 마음대로 해라.

이타루 : 오키도키!

크리스 : 뭐야? 당신 이보다 더 가젯을 늘릴 참이야?

린타로 : 당연하지. 신작을 만들었다는 것 정도로 우쭐해지긴. 이 랩이 네 힘만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해라.

크리스 : 아무도 그런 생각 안 했는뎁쇼.

마유리 : 그만 그만—! 그럼 마유시—는 돌아갈게요— 사이 좋게 있어—

이타루 : 오카린! 함께 마법사가 되자고 맹세했던 그 날의 약속, 잊지 마.

- 그런 맹세는 결단코 한 적 없거든.



- 시각은 오후 9시를 넘긴 시점. 마유리와 통이가 돌아간 뒤, 5분 정도가 경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5분 동안에 들려온 것은 시계바늘 소리뿐이며 서로의 목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긴장에 가득찬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 방에서 크리스와 둘이서만 있었던 상황이라면 전에도 분명히 있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과거에는 있었던 상황이다. 그러나 그 때엔 뭔가 특별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분명 크리스도 그랬을 거다. 얼핏 봐선 지금 이 상황도 그 때의 상황하고 별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소의 공기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너무나도 답답하다. 설마 내일 낮까지 이 상황이 계속될 것인가? …아무리 해도 그건, 절대로 견딜 수 없다. 뭐가 안 되겠느냐 하는 걸 따져 보자면, 분명히 이 침묵이 계속되는 상황이 가장 안 좋다. 그렇다면 그걸 깨부수기만 하면 그 다음엔 지금까지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공기로 돌아갈 거란 이야긴데—

- 한 마디다. 단 한 마디를 꺼내는 것만으로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다. …좋았어!!

린타로&크리스 : 저기… & 아…

- 이 얼마나 안 좋은 타이밍이란 말인가! 동시에 말을 꺼내다니.

크리스 : 뭐, 뭐야!?

린타로 : 아, 아니. 특별히 이렇다 할 건 없지. 그쪽은?

크리스 : 나, 나도 특별히 그런 건 없는데…

린타로 : ……

크리스 : ……

- 다시 침묵하고 말았다. 젠장, 이렇다 할 게 없다면 어째서 말을 건 거냐! 아니, 혹시나 크리스도 나하고 마찬가지 생각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간에 이상하게 타이밍이 틀어져 버려서, 이야기하기가 더 힘들게 됐잖아. 뭔가, 뭔가 화제 같은 게 없을까. 그러고 보니 난 지금까지 이 녀석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했었지? 생각해 보면 크리스하고는 만난 뒤로 아직 10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 동안 한 이야기라면 타임트래벌 이론 이야기나 D 메일 이야기, 실험 이야기, 가젯 이야기 같은 것들. 요 며칠간 했던 이야기라면 신작 가젯 관련 이야기가 대부분이어서, 이런 일 없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서 갑자기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어도, 곤란한 건 곤란한 거다. 그러나 여기서 수상쩍게 어물쩡거리고 있어도 이 공기가 계속될 뿐이다. 어쨌든 뭐라도 좋다. 뭔가 말을 꺼내야—

린타로 : 아— 그러고 보니 목이 마르군.

크리스 : 그, 그러고 보니 오늘도 덥네.

린타로 : 그러고 보니 확실히 닥터 페퍼를 사 둔 게 있을 텐데.

크리스 : 뭐라더라, 올해는 기록적인 폭염이 온다고 하던가. 더운 게 당연할 거야.

린타로 : 아니, 그러고 보니 그건 어제 마셔 버렸던가.

크리스 : 그러고 보니 친구가 그랬는데, 미국도 꽤 더운 모양이야.

린타로 :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사 둘 걸 그랬군.

크리스 : 그건 그렇고, 온난화 원인이 이산화탄소라고 하는 잘못된 정보는 언제가 되어야 철회될까.

린타로 : 이야, 그것 참, 어쩌지.

크리스 : 정말 어쩌면 좋을까.

- —이게 아냐!!! 얼핏 보기에 화기애애하게 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단순한 혼잣말 나열에 불과하다. 일방통행의 솔로 토크가 계속 이어지고 있을 뿐이잖는가. 이런 쓸데없고도 공허한 행위를 내일 낮까지 계속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에잇! 애당초, 어째서 내가 이런 일로 이것저것 생각해야 한단 말인가. 이럴 때엔 이제, 그걸로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린타로 : 후하하하하하!

크리스 : —!?

린타로 : 왜 그러지, 좀 전부터 태도가 이상하잖는가. 여느 때처럼 위세 좋게 행동해 보시지, 크리스티나.

크리스 : 뭐, 뭐야, 갑자기?

린타로 : 네게 한 마디 해 줘야겠군. 이 호오인 쿄마는 광기의 매드 사이언티스트이며, 흥미 있는 대상은 연구와 실험. 결국에는 그에 따르는 결과에 의해 세계의 지배 구조에 파괴와 혼돈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크리스 : 갑자기 뭐야.

린타로 : 즉, 지금 현재 내가 흥미 있는 대상은 과학적 사고 뿐이며, 여자 같은 이성에 대한 관심은 극도로 낮다는 거다.

크리스 : 어… 오카베는 혹시나 그쪽 계열 사람이야?

린타로 : 그쪽이란 게 뭐지?

크리스 : 그러니까, 저기… 베이컨 레터스라든가, 블랙 리스트랄까, 브리티쉬 라이브러리랄까.

린타로 : 허어? 너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냐?

크리스 : 그러니까 『Yooo』라든가 『ANG?』 같은 거, 말하게 하지 마, 부끄러우니까.

- 베이컨 레터스… 즉 B라든가 L이라든가 그런 말인가?

린타로 : 부, 부끄러운 건 네놈 쪽이잖냐! 남자를 보기만 하면 커플링이다 뭐다 하며 뭐든 간에 끌어다 붙이려 하는, 동인녀 같으니라구! 어째서 내가 통이 따위하고…

크리스 : 하지 마 바보야! 상상하게 되잖아.

린타로 : 바보는 너다! 상상하지 마라, 끔찍하니까.

- 하마터면 나까지 상상할 뻔 했잖아!

크리스 : 아! 마, 말해 두겠는데, 난 그쪽 취미는 없다구! 그건 그렇지만, 당신 말야, 마유리 같은 여자애가 옆에 있는데 그냥 소꿉친구일 뿐이라고 하잖아, 그리고 방금 전에도.

린타로 : 방금 전이라고? 내가 언제 그런 『ANG?』스런 이야길 했다는 거냐.

크리스 : 그게 아니라 말야, 당신하고 하시다가 약속했다고 한…

린타로 : 약속?

크리스 : 그러니까, 말했잖아. 같이 마법사가 되자고.

린타로 : 뭣!

크리스 : 최근 그런 데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남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진짠가 싶어서.

린타로 : 바, 바보 소리 마라! 그건 통이가 농담삼아 멋대로 한 소리일 뿐이지, 나는 그런 약속 한 기억 따윈 없다!

크리스 : 과연 그럴까.

린타로 : 진짜다! 실제로 난 완전히 육식남이라구! 기회만 있으면 뼛속까지 빨아먹을 정도의 육식남이란 말이지!

크리스 : 기회만 있으면…?

린타로 : 아.

크리스 : 뼛속까지…?

- 크리스의 몸이 스스슥 하고 소리없이 멀어졌다. 사람이 모처럼 괜한 불안감을 없애 주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렇게 된 거냐. 애당초 이 여자, 좀 자의식 과잉인 거 아닌가?

크리스 : 좀 전에 한 이야기하곤 완전히 달라…

린타로 : 기, 기다려! 방금 이야긴 이야기가 나온 김에 대답한 것뿐이고, 그럴 생각은 없다구!

크리스 : 육식남인 걸 자랑스레 말하는 남자라니…

린타로 : 어, 어쨌든 침착해라. 더 이상 떨어지면,

크리스 : 아…

크리스 : 꺅!

린타로 : 으아아아!

- 말이 끝나기보다 빠르게 다시 전기 충격이 흘렀다.

린타로 : 그러니까 말했잖아!

크리스 : 그런 건 좀 더 빨리 말해… 라고 했잖… 아.

- 화를 내면 또 전기 충격을 받게 된다는 걸 깨달은 건지, 도중에 크리스의 말이 부드러워졌다. 과연 방금 막 전기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조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린타로 : 어쨌든 그렇게까지 불안하다면 확언해 두지. 난 맹세코 아무 짓도 안 한다.

크리스 : ……

린타로 : 진짜다. 그러니까 안심해라.

크리스 : 믿어도 되는 거겠지.

린타로 : 아인슈타인에 맹세코.

- 오른손을 들고서 선언했다.

크리스 : 알겠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믿어 주겠어.

린타로 : 좋아! 그렇게 결정했다면, 좀 전처럼 시간을 보내는 건 관두도록 하지.

- 침묵이나 정지 상태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시간 경과는 느리게 느껴진다. 체감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일반상대성 이론에서는 중력 포텐셜이 변화하는 것으로 체감 시간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당연히 중력을 제어하는 기술 같은 건 우리에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뭔가 행동을 해서 심리적인 체감 시간을 빠르게 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린타로 : 내일 낮 12시까지 조금이라도 릴랙스 할 수 있으며, 또한 시간 흐름이 빠르게 느껴지도록… 그렇군. 여기선 뭔가 게임이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어떨까.

크리스 : 게임? 그런 게 여기 있어?

린타로 : 아니,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개발실의 PC로 할 수 있는 게임이 뭔가 없나 찾아보자.

- 나는 크리스의 도움도 받아 가며 개발실을 뒤져 게임을 찾았다. 그 결과—

린타로 : 뭐야, 이건! 야겜밖에 없잖아!!!

- 찾은 건, 완벽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모조리 어덜티한 게임의 패키지 뿐이었다. 그것도 놀라울 정도의 수량이었다. 이 정도로 사 모을 돈이 있다면, 약간이라도 랩 운영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텐데…

크리스 : ……

- 크리스가 냉랭한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린타로 : 아, 아냐! 이건 내 것이 아냐! 모조리 통이 거다!

- 스스슥— 하고 크리스가 30 센티미터 정도 멀어졌다. …확실히 크리스 앞에서 이걸 플레이 할 순 없지.

린타로 : 그, 그렇군. 잘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이 모니터 앞에 나란히 앉아서 PC로 게임을 한다는 것도 꽤 이상한 소리지.

- 달리 뭐가 없나…

린타로 : 음? 그래, 생각났다! 뭐랄까 그, 보드 게임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 너도 해 본 적 있겠지. 라이프 게임이라든가 모노폴리스트라든가, 그런 류의 거 말야.

크리스 : 흠… 그래. 확실히 그런 류의 게임이라면 몇 번 정도 하면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갈 것 같아.

린타로 : 그렇지? 확실히 전에 마유리나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하려고 어디다 사 놨던 게 있을 거야. 그걸 찾아보자.

- 다시 크리스하고 두 사람이서 랩 안에 있을 보드 게임을 찾았다. 그리고 그 결과 발견한 건—

린타로 : 이건… 트위스터잖아!

- 트위스터라는 건 그거다. 무작위로 뽑은 색깔이 있는 곳에 교대로 손발을 놓아 가며, 포즈가 이상해지는 것을 즐기는 게임이다. 애당초 어째서 여기 이런 게 있는 거지!? 적어도 내 기억에는 여기서 이런 게임을 즐겼던 기억은 한 번도 없다. 그렇다는 건 설마 이전에 보냈던 D 메일이 이런 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건가? 어쨌든, 이걸로…

크리스 : 오카베, 당신 일부러 이러는 거야?

-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린타로 : 아냐. 난 이런 게 여기 있었다는 것조차 몰랐다!

크리스 : ……



- 또다시 침묵. 그리고 “스스슥”의 더블 콤보였다. 게임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은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 뒤에 두 사람은 마실 거나 가볍게 먹을 것을 사러 나갔다 와서, 그러는 김에 편의점에서 잡지 같은 걸 보며 시간을 때웠다. 그 후에 돌아왔을 무렵엔 시각은 간신히 0시가 되어 있었다.

크리스 : 그건 그렇고, 1미터 이상 떨어지면 안 된다고 하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일이었어.

- 크리스 말 대로였다. 특히 바깥에 돌아다니고 있을 때엔 정신 바짝 차리고 있지 않으면, 조금만 걸음이 맞지 않는 것만으로도 반경 1미터 정도는 순식간에 넘게 된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살 때에도 그랬다. 한 쪽이 뭔가 필요한 것이나 신경이 쓰이는 것을 발견해도, 다른 한 쪽이 그걸 눈치 채지 못하고 두세발짝 앞으로 걸어가면 그것만으로도 곧바로 1미터를 넘었다. 잠깐 물건을 사러 가는 데에도 몇 번이나 전기 충격을 먹어서, 그 때마다 점원이 수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린타로 : 완전히 일상 생활에 지장을 주는 레벨이로군.

크리스 : 상품화 할 거라면 개량할 필요가 있겠어.

린타로 : 크리스티나, 너 이 상황에서도 아직 그런 걸 생각하고 있나?

크리스 : 그거야 당연하지. 불행한 사고였다곤 하지만 이렇게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까, 어차피 하는 거라면 활용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뭘 위해서 힘든 시간을 보내며 이런 상황을 감수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게 되잖아.

린타로 : 그야말로 실험에 목숨을 걸었군. 별명으로 실험 바보라고 해 줄까.

크리스 : 뭘, 과학자라면 당연한 거지. 그런 게 아니라면, “자칭” 매드 사이언티스트인 호오인 쿄마씨는, 그런 것조차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 정도로 혼란스런 상태에 있다는 거야?

린타로 : 웃기는 소리 마라. 당연히 나도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지.

크리스 : 과연 그럴까.

- 마유리 같은 경우도 그렇지만, 예측하지 못했던 사태가 일어나면 당황하긴 하지만 한 번 평정을 되찾고 나면 그 다음엔 뭐랄까, 듬직해지거나 한다. 이럴 때에는 여자 쪽이 더 담력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이다.

크리스 : 그건 그렇고, 정말이지 이 방 덥네. 해외라면 모르겠지만 요즘 세상에 일본에 에어콘이 없다니, 건강, 문화적인 측면에서 최저한도의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거 아냐?

린타로 : 그 자금을 얻기 위한 가젯 제작이지. 어쨌든 이거라도 마시고서 참아라.

- 나는 편의점의 비닐 봉투 안에서 닥터 페퍼를 꺼내서 크리스한테 내밀었다. 하지만 크리스는 받아들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크리스 : 안 마셔.

린타로 : 왜냐. 닥터 페퍼는 좋아하는 거 아니었나.

크리스 : 그래. 좋아하긴 하는데, 지금은 관둘래.

- 이마에 약간 땀을 흘리면서도 왠지 그런 소릴 했다. 이상한 녀석.

린타로 : 이 더위에선 야간이나 건물 안이라고 하더라도 일사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 그렇게 되도 난 모른다.

- 안 마신다고 하는 걸 억지로 마시게 하는 것도 아까운 이야기다. 어쩔 수 없이 난 들고 있던 닥터 페퍼의 뚜껑을 딴 후에 한 번에 반 이상을 비웠다. 그다지 잘 팔리지 않고 있는 건지, 그만큼 확실하게 차가워져 있어서 맛이 좋았다. 지금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그 긴장감 넘치던 공기도, 좀 전까지 있었던 묘한 분위기도 사라져 있었다. 이대로 가면 별일 없이 아침을 맞이하여, 오후가 되면 무사히 해방될 수 있겠지.

게임/슈타인즈_게이트-비익연리의_달링/크리스1_01.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2/01/04 22:01 저자 에리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