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슈타인즈_게이트-비익연리의_달링:크리스1_02

크리스 루트 1 : 애곡 비탄의 아포리아 (2)

- 이 무슨 일이람. 그대로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시각은 한 밤 중 2시가 지난 시점. 설마 갑자기 이런 충동이 닥쳐올 줄이야, 내가 상정했던 범위 외의 일이 벌어졌다. 어쩐다. 크리스는 내 옆에서, 보란듯이 영어 논문 같은 걸 읽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러고 있는 동안에도, 내 안에서 그것은 넘쳐 흐르려는 듯 부풀어 올라서 억제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었다. —참을 수 없다.

크리스 : 어이, 방금 전부터 뭘 옆에서 그렇게 비비적거리고 있어. 집중이 안 되잖아.

린타로 : 으……

- 나는 중간 단계는 다 생략하고 크리스의 손을 잡았다.

크리스 : 뭐, 뭐야!? 무슨 생각이야!?

린타로 : 크리스티나여…

- 나는— 난 이제—

크리스 : 잠깐, 당신 설마…

- 아무래도 말하기 전에 깨달은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눈치 빠른 여자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린타로 : 네가 닥터 페퍼를 마시지 않았던 이유를, 지금 깨달았다.

크리스 : 역시 그건가! 화장실이야! 마려운 거지!

린타로 : 총 저수량 한도에 도달해서, 붕괴 직전 상태다.

크리스 : 그렇게 꿀꺽꿀꺽 마시니까 그렇지!

린타로 : 이렇게 될 걸 알았다면, 그 때 한 마디 쯤 해 주지 그랬어… 윽!

- 안 되겠다. 큰 소리를 내자 하복부에 힘이 들어가서, 넘쳐 버릴 것 같았다.

린타로 : 그런 관계로, 화장실에 가자! 따라오도록.

크리스 : 하지만 거절한다.

- 순식간에 대답이 돌아왔다.

크리스 : 앗…!

린타로 : 너… 역시 @채널러로군.

크리스 : 무, 무슨 소리야. 난 그냥 『거절한다』라고 했을 뿐이야. 『하지만 거절한다』라곤 안 했어.

린타로 : 흥, 자기 꾀에 자기가 빠졌군. @채널러가 아니라면 어째서 『하지만 거절한다』가 @채널 용어라는 걸 알고 있나.

크리스 : 앗—!!

린타로 : 천재 소녀 마키세 크리스는 @채널러다. 이 정보를 매스컴에 팔아먹어 볼까나.

크리스 : 그건 됐다 치고, 당신 화장실 가고 싶은 거 아니었어?

린타로 : —! 그래 맞아! 이럴 때가 아냐! 어쨌든 화장실이다! 지금 당장 화장실에 갈 거니까 따라와라!

크리스 : 그러니까 거절한다고 했잖아!

린타로 : 넌 내가 여기서 일을 봐도 좋단 거냐!?

크리스 : 우왓, 부끄러라. 19살이나 되어서 오줌 쌀 것 같다고 하는 남자라니…

린타로 : 그런 소릴 하는 것도 지금 뿐이다. 만약 내 몸이 익스플로전을 일으키면, 너도 그냥 넘어가진 못할 사태가 벌어질 거다. 알고나 있나? 아니면 그건가? 설마 그런 취향이냐? 그건 어느 레벨이냐 하면 상당한 BYONTAI 레벨이지.

크리스 : 농담은 적당히 해 둬! 누가 그런 취향이란 거냐!

- 이런저런 소릴 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미 한계는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나는 왼쪽 오른쪽으로 몸을 꼬아 가며 간신히 버티며, 필사적으로 호소했다.

린타로 : 그러면 어째서 그렇게 완고하게 거절하는 거냐. 그게 너한테 무슨 득이 된다고!

크리스 : 당신 말야, 다른 사람한테 뭔가 부탁할 때는 부탁하는 방법이라는 게 있잖아.

린타로 : 같이 가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크리스 :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되잖… 꺄악!

- 마지막까지 듣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 나는 크리스 손을 잡아 끌고 와서 화장실 앞에 남겨두고 문을 닫았다. 살았다. 문 하나가 가로막은 상황에서, 간신히 1미터 이내가 유지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전류가 방출되고, 동시에 내 몸에서도 방출되어, 디 엔드를 맞이할 참이었다.

크리스 : 빠, 빨리 하라구!

- 재촉하지 않아도 빨리 할 거다.

린타로 : 듣지 마라.

크리스 : 누가 들을까보냐!!

- 그야말로 위기일발. 세계의 붕괴는 회피할 수 있었다.



- 닭의 목을 꺾어도 새벽은 온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기나긴 밤이 끝나고, 이 랩에도 태양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태양 빛은 온 세상에 은총을 내리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내가 지금까지 이 정도로 아침해가 뜨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그리고 고마움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시각은 이제 간신히 아침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린타로 : 이봐, 시험삼아 D 메일을 보내 보지 않겠나?

크리스 : 무슨 소리야. 잊었어? D 메일을 보낼 수 있는 건 오후가 되어서잖아?

린타로 : 당연히 잊어버리진 않았지.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을지도 모르잖나. 어차피 우리는 이대로 손을 맞잡고 기다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지. 시험해 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크리스 : 뭐… 그렇네. 만일 그걸로 보내 지는 것에 기대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 우리는 의견을 통일하고서 D 메일을 보내 보기로 했다.

린타로 : 문장은 어젯밤에 보냈던 메일처럼, 했었던 D 메일 실험을 그만두게 하는 거면 되겠지?

크리스 : 응, 문제없어.

린타로 : 좋아.

- 보내는 메일
To 전화렌지(가칭)
sub
D 메일 실험은 재고해 봐라. 큰일날 수 있다

- 메일 화면을 열고, 『D 메일 실험은 재고해 봐라. 큰일날 수 있다』라고 써 넣었다. 어제 문장에서 좀 더 변화한 것은 이 하룻밤을 지내며 이 12호기 사건이 예상 이상으로 무서운 사태를 불러 일으켰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이 상황에서 일각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 정도로까지, 나도 크리스도 이 12시간 동안 피폐해져 있었다.

린타로 : 그럼 간다! 전화렌지(가칭), 기동!

- 전화렌지가 기동하기 시작했다. 잘만 되면 이제 곧 방전 현상이—

린타로 : 가랏!

크리스 : 제발!

- 기도하듯 외친다. 그러나—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현기증도 없었고, 세상이 일그러지는 듯한 감각도 없었다. 다만 이미 들을 대로 들은 그 조리 완료를 알리는 『띵』 하는 소리만이 울렸다. 혹시나 해서 오른팔을 봤지만— 역시 거기엔 12호기가 확연히 채워져 있었다.

린타로 : 역시 안 되는 건가.

크리스 : 알고 있긴 했지만 역시 낙담이 되네.

린타로 :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 손을 맞잡고 있기만 해선 시간이 흐르는 걸 무익하게 기다리는 것밖에 안 돼.

크리스 : 맞아. 다음에 또 도전해 보자.

린타로 : 그래.

- 실패해도 잃을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다가 만약 잘 풀리면 그걸로 충분하다.

- 다음에 도전한 건 2시간 후. 오전 8시가 지난 시점이었다. 슬슬 일본 전체가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그렇기도 하니 혹시나 이번에야말로 성공하지 않을까. 그런 근거라고 하기에도 약한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부르는 것조차 어이없는, 거의 몽상에 가까운 기대를 품고 우리는 다시 D 메일 실험을 행했다. 하지만—

- 역시 결과는 기대에 응해 주지 않았다.

크리스 : 다음엔 1시간 뒤인 9시에 해 보자.

린타로 : 그래.

- 이쯤 되자, 나도 크리스도 지금까지 계속해 왔던 잘못— 즉 말싸움을 하다가 전기 충격을 당한다는 실수를 범하지 않게 되어 있었다.

- 그 뒤에도 9시, 10시, 11시 등, 1시간 간격으로 우리는 D 메일을 보내는 시도를 했다. 그 정도로 해 봤으면 이제 12시까지 기다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로선 거기까지 했기 때문에 반쯤 오기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은 오기로라도 D 메일을 보내는 시도를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실패로 끝났다.

린타로 : 그럼 간다! 5, 4, 3—

크리스 : 2, 1—

린타로 : 전화렌지(가칭), 기동!!

- 오늘 6번째가 되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핸드폰 메일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렌지 안의 접시가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몇 초 후—

- —또다시 아무런 반응도 없이, 전화렌지는 멈췄다. 12시가 거의 다 되어서 보낸 D 메일은, 또다시 실패로 끝났다.

크리스 : 이럴 수가…

- 피로와 낙담이 뒤섞인 목소리와 함께, 크리스의 어깨가 실망감으로 축 늘어졌다.

린타로 : …뭐, 어쩔 수 없지. 애당초 보낼 수 있는 건 12시 정도부터, 라는 정도고 딱 12시에 보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크리스 : 그런… 건가. 아! 하, 하지만 다음엔 분명히 되겠지? 왜냐면 지금까지의 실험에선 적어도 13시에는 확실히 보낼 수 있었으니까.

린타로 : 그래, 그런 거지!

- 어째서 그렇게 시간대가 애매한가 하는 건 아직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지금 와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 상황을 바꿀 수만 있다면. 하지만 이걸로 이제 낙담할 일은 없다. 보내기에 실패하여, 소파에 몸을 묻고서 탈력한 상태로 시계 초침을 쳐다보고만 있다는 단순 작업에 종사하는 것도 이제 끝이다.

크리스 : 이제 1시간. 적어도 1시간 후엔 확실하게 해방되는 거겠지.

린타로 : 그래! 이제 1시간이다.

크리스 : 저기, 그 동안, 이 12호기에서 해방되고 나면 뭘 할 건지 이야기하지 않을래!?

린타로 : 그거 좋은 생각이군! 과연 천재소녀!

크리스 : 정말이지, 그렇게 부르는 건 관둬. 부끄럽잖아.

린타로 : 아, 이거 미안하군. 버릇이 되어 놔서… 하하하하하!

- 이 얼마나 틀에 박힌 대화란 말인가! 그야말로 미드 자막에라도 나올 것 같은 대화다. 나중에 돌이켜 보면 소름이 돋을 것 같은 대화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진심으로 이러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염원하던 해방을 앞두고, 고양감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잘 생각해 보면 리딩 슈타이너라는 특수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난 그렇다 치고— 크리스의 경우에는 D 메일을 보낸 시점에서 이 12호기 사건 자체가 없었던 게 되어 버리니까 해방감이랄 건 아무 것도 없을 테지만, 그런 생각은 우리 머릿속에 한 조각도 존재하지 않았다.

크리스 : 해방되면 어떻게 할까나! 역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서 에어콘이 잘 나오는 호텔 방에서 실컷 자고 싶어! 오카베는?

린타로 : 나도 마찬가지로군. 해방감에 가득 찬 상태로 마음껏 자고 싶다.

크리스 : 후훗, 기대돼.

린타로 : 그래, 기대되는군!

- 이렇게 하여 우리는 이상할 정도로 하이 텐션인 상태로 1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13시를 맞이하는 데 이르렀다!



마유리 : 어라—? 저기, 저기— 통이, 열쇠가 안 잠겼어—

이타루 : 어, 정말이네? 오카린하고 크리스, 아직 안 돌아간 건가?

마유리 : 혹시나 두 사람 다 피곤해서 자고 있는 걸까나?

이타루 : 들어가면 위험한 상황이 되어 있다면 어쩌지?

마유리 : 그럴 리는 없어— 왜냐면 오카린이니까.

이타루 : 동의함.

마유리 : 뚯뚜루—! 오카린, 크리스, 안녕—!

마유리 : …어라?

이타루 : 왜 그럼둥, 마유씨.

마유리 : 오카린하고 크리스가…

이타루 : 오잉? 두 사람 다 무슨 일임둥? 왠지 새하얗게 불태워 버린 복서처럼 되어 있는디.

마유리 : 어—이, 오카린, 크리스—!

크리스 : 어째서지…?

마유리 : 응?

이타루 : 어라? 두 사람 다, 아직 12호기를 장착한 상태… 라는 건…

린타로 : 어째서냐… 어째서 D 메일이 작동하지 않는 거냐아아아앗!!



이타루 : 으음, 여러 가지로 조사는 해 봤지만, 역시 아무 데도 망가진 덴 없다고 생각함.

린타로 : 그럼 어째서 보내지지 않는 거냐! 벌써 오후 3시가 넘었다구! 지금까지는 잘만 보내졌잖아!

이타루 : 혹시나 횟수 제한이 있었다든가.

린타로 : 횟수 제한이라고!? 그런 소린 들은 적 없어!

이타루 : 그거야 그렇겠지. 나도 지금 대충 말해본 것 뿐이니. 랄까, 뭐 일반적인 물리적 현상으로 생각해 봐도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긴 함.

린타로 : 그럼 뭐가 원인인 거지?

이타루 : 그러니까 모른다니까.

린타로 : 으으윽!

- 우리가 이제 곧 12호기에서 해방될 수 있을 거라는 기쁨을 가슴에 안고, 의기양양하게 D 메일을 보내려 한 것이 13시가 넘었을 때의 일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D 메일을 보내서 과거를 바꾸지는 못했다. 이유는 불명. 다만 몇 번을 시도해 보더라도 예의 『띵』 하는 건조한 소리만이 울렸을 뿐, 과거 변경은 고사하고 방전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배반당했을 때의 절망감도 컸다. 완전히 탈력 상태가 되어 빈 껍데기처럼 되어버린 우리 두 사람은, 통이나 마유리가 왔던 것도 얼마간 눈치 못 채고 있었을 정도였다.

크리스 : 나, 한 번 더 해 볼게.

린타로 : 그래.

- 혹시나— 방금 전엔 안 됐지만 지금이라면 될 지도— 이 1시간 동안 몇 번이나 품었던 기대. 그러나 그건 이번에도 또다시 건조한 렌지의 소리에 의해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 뭐가 원인인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소파에 몸을 묻었다.

마유리 : 괜찮아, 크리스?

크리스 : 응, 괜찮아… 라고 하고 싶지만, 역시 이건 좀 무리일지도 몰라.

- 이제 남은 수단은 없다. 통이나 크리스가 조사해 봐도 원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대처할 방법도 없었다.

이타루 : 이래서야 이젠 D 메일을 보내서 과거를 바꾸는 건 포기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군.

마유리 : 그럼 오카린하고 크리스는 그냥 그대로 있게 되는 거야?

이타루 : 얼마 동안은 그런 상태가 될 것 같음둥.

마유리 : 얼마 동안이라면 어느 정도?

이타루 : 으음, 그건 나도 모르겠는디. 오카린하고 마키세씨가 사이 좋게 지내면 빨리 벗겨질지도 모르고, 전지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할지도 모르고.

- D 메일을 보낼 수 없다— 즉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건 그렇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거야 매우 당연한 이야기긴 하지만. 메일을 보내서 과거를 바꾼다— 그런 것은 불과 며칠 전의 우리라면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과거 변경— 한 번 그 금단의 과실 맛을 보고 만 우리는, 지금 상황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적어도 내일이 되면— 즉 오늘이 되고 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하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거다. 그런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생각은 완벽하게 엎어지고 말았다. 24시간 내내 안 자고 있었던 데 기인하는 피곤함과, 눈앞에 닥친 사실에서 밀려오는 절망감. 이 두 가지가 서로 뒤섞여서, 이제는 나도 크리스도 사고가 정지해 가는 상태였다.

- 그 때 현관문이 기세 좋게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스즈하 : 안냥—!

- 명랑 쾌활한 목소리와 함께 나타난 건 스즈하였다.

마유리 : 아, 스즈씨, 뚯뚜루—

스즈하 : 시이나 마유리, 뚯뚜루—! 음—?

- 실내에 시선을 한 번 주고선, 나하고 크리스의 모습을 보고 약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즈하 : 왜 그래? 어쩐지 모두들 심각한 표정이 되어 있는 것 같은데.

마유리 : 저기 말야, 통이가 놀래킨 탓에 오카린하고 크리스가 떨어질 수 없게 되어서, 큰일났어요.

스즈하 : 으음, 뭐가 뭔진 잘 모르겠지만 곤란한 상황이라는 건 잘 알겠어.

- 스즈하는 다시 한 번 방 안을 둘러보고 나서 머리를 긁적였다.

스즈하 : 그런가— 그럼 안 되겠네—

이타루 : 안 되겠다니, 무슨 일이라도 있었음?

스즈하 : 저기, 점장님이 나에를 데리고 여행 가서 말야, 알바도 없어서 지금 한가하거든— 그래서 같이 놀까 해서 이렇게 와 본 거야.

이타루 : 아— 유감이지만 지금 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음둥.

스즈하 : 그런 것 같네— 그래 그래, 그럼 괜찮아.

마유리 : 미안해—

스즈하 : 으응, 이쪽이야말로 바쁜데 미안해— 그럼 실례했습니다—

- 스즈하가 떠나고 나자, 다시 그 자리에 정숙이 찾아왔다.

이타루 : 그럼… 일단 나는, 이제 조금밖에 안 남았으니까 예의 걸 완성시킬게.

- 예의 것, 이라는 건 아마도 내가 부탁한 신작 가젯이겠지. 그러나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런 것보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하고 싶었으나, 방금 여러모로 조사한 결과가 지금 이 두 손발을 다 든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소리 해 봤자 소용없겠지.

크리스 : 샤워, 하고 싶어…

- 얼마간 넋이 나가서 빈 껍데기처럼 되어 있던 크리스가 나직이 말했다.

크리스 : 호텔로 돌아가고 싶어. 샤워 하고 싶어. 푹 자고 싶어.

마유리 : 크리스…

린타로 : 어리광 피우지 마라. 그런 소릴 해 봤자 이걸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 잘 알고 있을 텐데.

크리스 : 어떻게라니, 뭘 어떻게?

린타로 : 그건 만든 너밖에 모르는 일이지.

크리스 : 그렇다면 무리야. 난 완벽한 걸 만들었다고 자부하고 있거든.

- 결국 하루 전의 상태로 돌아왔다. 아니, D 메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낮아졌기 때문에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유일하게 다행인 점은, 우리가 피곤해져 있는 탓에 어제 같은 말싸움으론 발전하지 않는 것 정도인가.

린타로 : 그런가. 그렇다면 어쩔 도리가 없지. 이대로 1주일이든 10일이든 전지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던가, 아니면—

- —서로의 마음이 통하면. 나하고 크리스 사이다. 그건 정말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겠지.

크리스 : 그래, 좋은 생각이 났어.

-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모두 크리스 쪽을 쳐다봤다.

마유리 : 뭔데 뭔데?

이타루 : 역시 마키세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겠음둥.

린타로 : 그래서? 들려 줬으면 하는데. 그 좋은 생각이라는 게 뭐지?

크리스 : 그건 말야,

- 기대에 가득 찬 6개의 시선을 받으며, 크리스는 엷은 웃음을 띄우고, 그리고 말했다.

크리스 : 잘라 버리는 게 어때?

마유리 : 잘라? 자르다니, 『달링 바보오』를?

크리스 : 안 돼. 그런 짓을 하면 더 강력한 전기가 흐를 거잖아?

린타로 : 그렇다면 뭘 자른단 거지?

크리스 : 그거야 당연하지. 이거야, 이, 거…

- 크리스는 웃음을 띄운 채 천천히 왼손을 들었다. 그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내 오른손이다.

크리스 : 안 그래—? 이걸, 이 정도쯤 해서 찰캉 잘라 버리면, 벗겨지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잖아?

-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지?

마유리 : 저기— 저기— 무슨 말이지? 통이는 알겠어?

이타루 : 뭐여, 마키세씨가 얀데레가 됐잖어——!?

린타로 : 바보놈! 그런 소릴 할 때냐! 크, 크리스티나, 너, 제 정신이냐!? 피로에 쩔어서 맛이라도 간 거 아냐!?

크리스 : 어머, 난 제정신이야. 그게 지금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러는 게 제일 합리적이잖아?

- 싱긋 하는 그 얼굴에는 차가운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린타로 : 노, 농담 마라! 그런 짓을 하면 내 오른손이 폭주해서 큰 일이 벌어진다!

크리스 : 그러니까 아예 그걸 잘라내 버리면 앞으로 두 번 다시 그 중이병이 폭주할 일도 없을 거잖아?

- 이, 이 자식, 뭐가 천재소녀냐! 이 녀석, 완전히 매드 사이언티스트잖아!

크리스 : 그런데 이럴 때엔 어떤 걸 도구로 쓰면 좋을까? 고기 써는 칼? 톱칼? 아니면 도끼라든가 그런 거?

마유리 : 크, 크리스— 어떻게 된 거야—?

이타루 : 여, 엽기 호러.

린타로 : 그러니까 그렇게 느긋한 소리 할 때가 아니라니까! 통이, 이 여잘 어떻게든 해라!

크리스 : 어머, 그건 안 돼. 하시다는 날 도와주겠다고 했는걸, 그렇지?

이타루 : 아, 아니, 나, 그런 건 좀…

크리스 : 흐음, 그럼 방금 한 말은 거짓말이었던 거네…

- 찌를 듯한 시선에 꿰뚫린 통이는 겁을 먹고 주춤했다. 온 몸에서 땀이 솟아나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에어콘도 없는 방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 버린 것만 같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어째서 갑자기 이런 일이? 역시 어제부터 있었던 일에 맛이라도 간 건가?

크리스 : 뭐 좋아. 어쨌든 얼른 시작하자.

린타로 : 시, 시작하자니?

크리스 : 그러니까 말했잖아? 자른다고♪

- 방금 전하고는 확 바뀌어, 즐거운 듯한 미소. 하지만 그 미소가 더욱 더 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린타로 : 기, 기다려, 크리스티나! 냉정해지자, 응? 이야기로 해결할 수 있어!

크리스 : ……

린타로 : 넌 지금, 좀 피곤한 거야. 어쨌든 침착해라.

크리스 : 농담.

린타로 : 뭐?

크리스 : 농담이야.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뭘 그렇게 진지하게 반응하는 거야.

이타루 : …농담이라니?

크리스 : 그러니까 농담은 농담이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마유리 : 저, 저기— …크리스, 이상해 진 거 아니지?

크리스 : 미안, 마유리. 놀라게 했어?

- 생긋 웃었다.

린타로 : 이… 이 놈이!! 이럴 때 이 무슨 농담이란 말이냐! 하마터면 진심이라 받아들일 뻔 했잖아!

크리스 : 이럴 때이기 때문에 이런 농담이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못 버틸 것 같았어! 안 그럼 뭐야? 자칭 광기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나 되시는 분은, 방금 그걸로 겁을 먹고 덜덜 떨었다든가 하는 거야?

린타로 : 흥, 그거야말로 농담이로군. 그 정도 광기 따윈 내가 보기엔 어린애 울음 소리나 마찬가지다.

크리스 : 그런 소리 하면서, 얼굴이 다 창백해 진 게 과연 누굴까?

린타로 : 통이, 네 이야기가 나왔군.

크리스 : 너 말하는 거야.

마유리 : 저기— 두 사람 다 말야, 그렇게 화 내면 또 전기 충격이 올 거야—

이타루 : 그럴 걱정은 없는 것 같음둥, 마유씨.

마유리 : 응? 어째서—?

이타루 : 저거 봐, 두 사람이서 손을 꽉 잡고 있잖아.

마유리 : 아, 정말이네—

- 익숙해진다는 건 두려울 정도다. 말싸움이 시작될 것 같기만 하면 손을 잡는다. 어제부터 하룻밤 지났을 뿐인데, 우리는 벌써 그런 습관을 익히고 있었다. 그야말로 파블로프의 개로군, 그것도 전기 충격을 피하기 위해서니까. 어쩔 수 없지. 아니면 전기 충격으로 받는 고통을 기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는 다른 수단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걸 익혔다간 나중 생활에 지장이 있을지도 모르니 당연히 각하했다.

크리스 : 뭐 좋아.

- 뭔가 결심한 것처럼, 갑자기 크리스가 일어섰다.

크리스 : 계속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소용이 없다는 건, 뼈아플 정도로 잘 알았어. 어쨌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수면과 휴식. 손을 잡고 있든 어쨌든 간에 살아가기 위해서 이 두 가지는 필요불가결해.

린타로 : 지극히 당연한 의견이지만, 그래서 어쩔 셈이길래? 설마 여기서 나하고 침식을 함께 할 참인가?

- 뭐, 내 입장에선 그래도 별 상관은 없지만 그걸 거부한 건 크리스 본인이다.

크리스 : 이렇게 된 이상 그것도 어쩔 수 없긴 한데… 어차피 함께 쉴 거라면,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는 환경에서 쉬는 편이 현명하겠지. 그렇고 하니… 난 돌아갈게.

린타로 : 돌아간다, 라고?

크리스 : 응, 그래.

린타로 : 기다려, 돌아간다니, 어디에 돌아갈 셈이지?

크리스 : 그거야 당연하지. 호텔 말야.

- 호텔…? 그건,

이타루 : 응? 하지만, 그럼 오카린은 어떻게 하는 것임둥? 혹시나 방금 전처럼 팔을 자르겠다는 건…

크리스 : 설마. 방금 그건 농담이라고 했잖아?

린타로 : 이봐, 그럼 어떻게 할 셈이지?

크리스 : 물론 오카베도 같이 가는 거야.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잖아?

- 나하고 같이 호텔에…? 다시 실내 공기가 얼어붙었다. 잠시 동안 랩 안을 침묵이 지배하고 있었다. 가장 처음 입을 연 건 통이였다.

이타루 : 호텔에 가? 오카린하고? 두 사람이서?

크리스 : 그렇게 넓은 방은 아니니까, 3명이나 4명이 들어갈 순 없으니 그렇게 되겠네.

- 어떻게 된 거지? 날 데리고 호텔로 돌아가는 게 싫었기 때문에 여기서 아침까지 있었던 게 아닌가? 그게 지금 와서 어째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뭔가 꿍꿍이라도 있는 건가?

린타로 : 크리스티나… 네놈, 이 몸을 방에 꾀어들이겠다고, 확실히 그렇게 말했지?

크리스 : 꾀어들이겠다고 하지 마, 저속해.

린타로 : 그럼 말을 바꾸지. 네놈, 날 자기 본거지로 유인하여 어쩔 셈이지? —핫! 그런가, 알겠다! 너, 내 이 천재적인 뇌를 너무나 원한 나머지 머리를 열고 끄집어 내서 자기만의 것으로 삼고 감상할 생각이로군! 그게 아니면 로보토미 수술이라도 해서, 실험 재료로 쓸 생각인가?

크리스 : 그러길 바란다면 정말로 그렇게 해 줄까.

린타로 : 흥! 할 수 있다면…

- 해 봐라, 라고 말할 뻔 했지만 일순 방금 전 오른팔 사건이 뇌리를 스쳐서 입 밖으로 꺼내는 걸 멈췄다.

크리스 : 저기 말야, 호텔에 돌아가는 거니까 할 일은 단 하나. 잠자는 거잖아.

이타루 : 호텔, 할 일, 잠자는, 것만 들었음.

크리스 : 하시다, 뭐하면 당신 뇌도 끄집어 내 줄까?

이타루 : 후히히, ㅈㅅ여.

크리스 : 정말이지 이 녀석이고 저 녀석이고, 이상한 상상 하지 마. 알겠어?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이 상황을 바꿀 수 없고 하니, 어차피 자는 거라면 쾌적한 환경에서 자고싶은 것뿐이야.

- 즉 장기전으로 갈 각오를 했다는 거로군. 어젯밤에도 느꼈던 거지만, 이럴 때에 더 강한 건 역시 여자 쪽인지도 모르겠다.

린타로 : 그, 그렇지만, 괜찮겠나?

크리스 : 뭐가?

린타로 : 그러니까, 내가 같이 가도 말야.

크리스 : 당신이 말했잖아. 이상한 짓은 안 할 거라고. 안 그러면 그건 거짓말이었어?

린타로 : 물론 거짓말이 아냐. 거기에 대해선 뉴튼에게 맹세할 수 있다.

크리스 : 어젠 아인슈타인이었던 것 같은데… 뭐, 자잘한 건 어쨌든 간에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난 당신을 믿겠어.

- 크리스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믿는다— 그런 눈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걸 듣고 나면, 설령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묘한 짓을 할 순 없다. 그런 생각이 들게 되는 눈이었다.

마유리 : 좋겠어, 오카린. 마유시—도 크리스가 묵고 있는 방에 가 보고 싶어요.

크리스 :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도 했었지. 그럼 다음 번에 이 12호기가 무사히 벗겨지면 내 방에서 자고 가.

마유리 : 만세—! 친구 집에서 자는 건, 전에 루카군네 집에서 자고 그 이후로 처음이라 정말 기대돼—

린타로 : 뭐!? 마유리… 너, 루카코네 집에서 잤던 적이 있냐?

마유리 : 응, 잤었어—

린타로 : 잠깐, 난 그런 이야기 들은 적 없는데!

마유리 : 어라? 이야기 안 했던가? 아, 그런가, 그 때 마침 오카린이 뭔가 바빠 보여서, 이야기 안 했을지도 모르겠네—

린타로 : 혹시나 해서 확인하겠는데… 루카코는 남자, 맞지?

- 뭔가 일이 벌어져서 성별이 바뀌었다— 같은 일은.

마유리 : 맞아—

- 역시 없었던 모양이었다.

린타로 : 그건 부모님한테 이야기 했어?

마유리 : 응. 루카군네 집이라면 괜찮다— 라고 하셨어.

린타로 : 루카코네 집이라면? 그렇다는 건 너희 부모님, 루카코하고 만난 적이 있나?

마유리 : 응. 전에 한 번. 집에 온 적이 있거든. 예의 바르고 착한 애구나, 라고 하셨어.

- 그건… 아무리 봐도, 루카코를 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 아닌가?

마유리 : 루카군 아버지도, 딸이 두 명 생긴 것 같아서 떠들썩한 게 좋구나, 하고 기뻐해 주셨답니다.

- …루카 아빠라면 그러고도 남겠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런. 생각을 시작하자 머리가 아파 왔다.

마유리 : 어라—? 왜 그래, 오카린.

린타로 : 아, 아니…

- 상대는 루카코다. 루카코니까 괜찮긴 한데… 으음, 뭐랄까, 복잡한 기분이로군.

크리스 : 남자의 독점욕, 꼴불견이네.

린타로 : 그런 게 아냐!

마유리 : 그보다도, 오카린도 크리스도 어제부터 계속 안 자고 있었지? 호텔에 돌아갈 거면 빨리 가서 푹 쉬는 게 좋을 거라고, 마유시—는 그렇게 생각해.

크리스 : 그래. 이대로 여기서 계속 이야기할 것도 아니고 하니… 갈까, 오카베.

린타로 : 괜찮… 겠어?

크리스 : 그러니까 믿고 있다고 했잖아.

린타로 : 그, 그런가…

- 그렇게까지 말하는 이상, 나도 각오를 다질 수밖에 없다.

린타로 : 그럼 갈까, 마의 소굴로!!

크리스 : 마의 소굴이 뭐야!

- 이렇게 하여 나는, 크리스가 일본에 체재하는 동안 임시로 머물고 있는 오챠노미즈에 있는 호텔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이타루 : 아, 기다려! 오카린, 오카린!

- 랩을 나서려 할 때 통이가 불러 세웠다.

린타로 : 왜 그러나, 통이?

이타루 : 이런 때야말로, 한 마디 해 둬야만 하는 말이 있음둥.

린타로 : 뭐냐…?

- 통이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이타루 : 그런 장비로 괜찮은가?

린타로 : …제일 좋은 걸로 부탁해.

크리스 : 너희 말야…

게임/슈타인즈_게이트-비익연리의_달링/크리스1_02.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2/01/04 22:39 저자 에리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