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슈타인즈_게이트-비익연리의_달링:크리스2_01

크리스 루트 2 : 상극의 파 드 두 (1)

- 어느 쪽이 말을 꺼낸 것도 아니지만 우리 두 사람은 자연스레 역을 향해 걷고 있었다. 아키하바라에서 오챠노미즈.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우리는 오늘 완전히 피폐해진 상태여서 두 사람 다 더 이상 걸을 힘도 없었던 것이다. 이래저래 역에 도착했을 때엔 주위가 오렌지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 거기서부터 오챠노미즈까지 전철을 타고 한 정거장. 불과 3분 정도만에 도착했다.

- 크리스가 묵고 있다는 호텔은 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되는 곳이었다. 크리스가 프론트에 다가가자, 방 번호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카드키를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옆에 붙어 있는 걸 보고서 프론트의 직원은 아주 약간 흥미 있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과연 크리스는 그걸 눈치 챘을까. 그 후, 크리스에게 이끌려서 엘리베이터에 탄 후 6층으로. 그리고 좌우로 늘어선 문들 중에서, 어떤 문 앞에 멈춰섰다.

크리스 : 눈 감아.

린타로 : 뭐?

크리스 : 됐으니까 눈 감아. 그 다음엔 내가 안에까지 이끌어 줄 테니까. 그 상태 그대로, 됐다고 할 때까지 절대로 눈을 뜨지 마. 알겠지.

린타로 : 아, 알겠다.

- 뭔지는 모르겠지만, 기세에 밀려서 눈을 감았다.

크리스 : 그럼 들어갈 거니까 절대로 눈 뜨지 마, 절대로야!

린타로 : 그건, 눈을 뜨라고 하는 걸 암시하는 건…

크리스 : 뭐라?

린타로 : 아닌 거로군. 이해했다.

- 문이 열리고, 크리스가 이끄는 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크리스 : 거기서 기다려.

- 약간 전진한 후, 크리스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서서 기다렸다. 곧바로 옆에서 퉁탕거리며 뭔가 황망하게 움직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크리스 : 이번엔 여기.

- 5분 정도 기다렸을까. 팔을 붙잡아 끄는 식으로, 이번에는 다른 장소로 움직였다. 거기서 또다시 5분. 그 동안 나는 약속한 대로 눈을 감고 계속 기다렸다. 슬슬 기다리다 지쳐 불평하려 할 때,

크리스 : 됐어. 눈 떠.

- 드디어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와서,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 그 곳은 내 예상을 훨씬 능가하는 방이었다.

린타로 : 너, 혹시 일본에 있을 때는 계속 여기서 숙박하는 거냐?

크리스 : 최근에는 랩에서 밤을 새운 적도 있지만, 기본적으론 여기야.

- 아니, 생각해 보면 외관부터 그럴싸했으니 내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느낌은 들었다. 하지만 그렇더라 해도 작은 비즈니스룸 정도가 아닐까 했는데. 하지만 그것 역시 내 바램에 지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이 녀석… 전에 내가 갑부라고 했을 때엔 보통 호텔이라고 했건만, 역시 갑부십칠이었잖아!

린타로 : 가르쳐 줘. 도대체 어떤 악행을 저지르면 이런 방에서 머물 수 있는 거지?

크리스 : 악담 하지 마. 그런 짓은 하나도 안 했으니까. 그보다, 뭐라도 마실래?

린타로 : 닥터 페퍼는 있나?

크리스 : 유감이지만 없어. 돌아오는 도중에 사 둘 걸 그랬네… 콜라라도 상관없어?

- 크리스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냉장고를 열고 콜라를 꺼냈다. 참고로, 말할 것도 없겠지만 그 동안 난 1미터 이내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금붕어 똥처럼 따라다니고 있었다. 나는 크리스한테서 건네받은 콜라를 가만히 봤다. 분명 이것은 호텔에서 보충해 둔 콜라겠지. 보통 편의점에서 사는 값의 배 정도는 된다. 그런 비싼 걸 대수롭지 않게 마시다니— 역시 이 여자, 갑칠이로군.

크리스 : 안심해. 독 같은 건 안 들어 있으니까.

- 나는 받아든 콜라를 목으로 넘겼다. 밤중에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그 이후로는 아무 것도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되살아나는 듯 했다.

린타로 : 그건 그렇고, 방금 전엔 뭘 그렇게 쿵쾅거리며 소란스러웠던 거냐?

크리스 : 그건, 저기. 일단 당신도 남자고 하니까, 안에 들어오게 하려면 정리해야 하는 거라든가, 여러 가지 있어.

린타로 : 정리해야 하는 거?

크리스 : 그러니까 호텔에서 얼마간 지내다 보면 어지럽힌다든가, 여러 가지 있다구.

린타로 : 여러 가지?

크리스 : 그래, 여러 가지 말야.

린타로 : 걱정 안 해도, 별달리 난 네 곰돌이 팬티가 널부러져 있던가 해도 신경 안 쓰는데 말이지.

크리스 : 알고 있다면 입 밖으로 내지 마! 랄까, 곰돌이 팬티 같은 건 몇 년이나 전에 졸업했다구! 앗—!

린타로 : …옳거니, 그렇다는 건 몇 년 전까지는 입고 다녔다는 거로군, 곰돌이 팬티를!

크리스 : 큭! 말하다 보니… 오, 오카베! 지금 이야긴…

린타로 : 뭐냐, 곰돌팬.

크리스 : 고, 곰…!?

린타로 : 어때. 발음도 괜찮고 어감도 좋은데 그래. 안 그러냐, 곰돌팬.

크리스 : 당신, 그 이상 곰돌팬이라고 하면 두 번 다시 이 방에서 나갈 수 없도록 해 주겠어.

- …뭐냐. 사람이 모처럼 이런 식으로 전혀 흥미가 없다는 느낌의 이야기를 해서 안심시켜 주려고 했는데.

크리스 : 저기, 오카베.

- 방금 전하고는 확 바뀐, 뭔가 신기하다는 표정이 되어 크리스는 날 쳐다봤다.

린타로 : 뭐, 뭐냐, 조수.

크리스 : 많이 지치고 했으니, 슬슬 잘까 싶은데.

린타로 : 그런가. 그럼 나도 쉬도록 하지.

크리스 : 한 번 더 말해 둘게. 난 당신을 믿고 있거든.

린타로 : 그, 그래. 알고 있다. 안심해.

- 믿고 있다— 방금 전에도 했던 말이다. 그래서 이 녀석은 날 여기로 데려온 것이다. 그러면 나도 그 신뢰에 응답해야만 한다.

크리스 : 그럼 그대로 움직이지 마.

린타로 : 잠깐만 기다려.

크리스 : 뭐야?

린타로 : 네놈, 손에 들고 있는 그건 뭐냐?

크리스 : 뭐라니, 눈가리개하고 밧줄인데, 뭐가? 설마 당신, 본 적 없어?

린타로 : 그런 걸 묻는 게 아냐! 그걸로 어쩔 셈인지 묻고 있는 거다!

크리스 : 그거야 당연하지. 지금부터 내가 잠들었다 일어날 때까지, 이상한 짓을 할 수 없도록 이걸로 얌전히 있게 할 거야.

린타로 : 잠들었다 일어날 때까지라고!? 도대체 얼마 동안 그런 상태로 있으라는 거냐?

크리스 : 미안하지만 참아. 내가 푹 잠들기 위해서.

린타로 : 내가 푹 잠드는 건 어쩌고!

크리스 : 당신은 약간 피곤이 남는 쪽이, 얌전해져서 딱 좋아.

- 이 여자가—!

린타로 : 농담 마라! 날 신뢰하겠다고 한 그 말은, 거짓말이었던 거냐!

크리스 : 신뢰는 하고 있어. 하지만 그거하고 이건 이야기가 다르지.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 생긋 웃고 있긴 하지만 눈은 진심이었다. 아무래도 농담으로 하는 소린 아닌 것 같았다.

린타로 : 애당초 크리스티나여, 어째서 넌 방에 눈가리개나 밧줄 같은 걸 준비해 두고 있는 거냐? 설마 넌— 그런 취향이었던 거냐?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극도로 노말한 사고(성적인 의미로)를 가진 날 상대로 그러는 건 잘못되어 있다!

크리스 : 그럴 리 있겠어! 아이마스크는 비행기 안에서 쓰려고, 밧줄은 빨래한 걸 말리기 위한 거야. 여행의 필수 아이템이잖아. 그보다, 포기하고 얌전히 묶이시지. 아프게 하진 않을 테니까.

- —젠장. 아무리 그렇다 쳐도, 눈가리개를 당하는 데다 밧줄로 묶여지기까지 하는 수모를 당할 순 없다. 하지만 원래대로라면 방의 넓이를 최대한으로 이용해서 도망쳐 다니겠지만 1미터 이상 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선 노려보는 채로 슬금슬금 물러날 수 밖에 없어서, 결국에는 벽에 몰려 디 엔드가 된다.

린타로 : 말해 두겠는데, 만약 정말로 그걸로 묶을 생각이라면 나도 가만히 당하고 있진 않을 거다. 네가 샤워를 하든 잠자든 간에, 언제든지 격렬하게 저항해서 전류가 흐르게 해 주마, 곰돌팬.

- 물론 이 경우 전류는 크리스뿐만이 아니라 나한테도 흐른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수단을 가릴 때가 아니다. 물귀신 작전이란 거다.

크리스 : 비겁해! 그리고 곰돌팬이라고 하지 마!

린타로 : 비겁한 건 너다! 알겠다, 그럼 이렇게 하지! 백 보 양보해서, 눈가리개는 감수하겠다. 그 대신 밧줄은 없는 거다!

- 그렇지 않으면 아무래도 난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린타로 : 무슨 일이 생기면 문자 그대로 오랏줄을 받도록 하지.

크리스 : 누가 그런 멀쩡한 소릴 하랬어.

- @채널 용어로 맞받아치면서도, 크리스는 잠시 동안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크리스 : 알겠어. 그럼 밧줄은 없는 걸로 할게.

린타로 : 진짜냐?

크리스 : 응. 그 대신 아이마스크는 착용해 줘, 괜찮지?

린타로 : 뭐… 그 정도 쯤은 참아 주지.

- 아이마스크 정도는, 바꿔 생각해 보면 수면을 촉진하는 거라고 보면 되는 거니까.

크리스 : 그럼 이걸 착용해.

- 크리스가 아이마스크를 건넸다. 본의는 아니긴 하지만 약속은 약속. 나는 내 손으로 건네 받은 아이마스크를 착용했다.

크리스 : 그럼 그대로 가만히 있어.

린타로 : 응?

크리스 : 영차.

린타로 : …어이.

크리스 : 뭐야?

린타로 : 뭐야? 가 아니지! 어째서 내가 묶이고 있는 거냐! 약속이 다르잖아!

크리스 : 잠깐, 움직이지 마! 아이마스크가 비뚤어졌잖아.

린타로 : 그건 네가 묶으니까 그렇잖냐.

크리스 : 방금 전엔 잘 때 이야기잖아. 지금부터 난 샤워를 할 거야. 미안하지만 그 동안만은 그 자세 그대로 있어 줬으면 해.

린타로 : 큭…

- 원래라면 불평을 늘어놓겠지만, 어찌 더 이상 이런저런 소릴 해도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애당초 이미 묶여 있는 상황에서 무슨 소릴 해도 헛수고다.

린타로 : 알겠다. 그럼 얼른 샤워든 뭐든 하고 와라.

크리스 : 아, 맞아. 그리고 이것도 부탁해.

린타로 : 이거란 게 뭐냐?

크리스 : 헤드폰이야.

린타로 : 헤드폰? 어째서 그런 걸 해야 하는 거지.

크리스 : 그건… 다, 당신이 내 샤워 소릴 듣고서 이상한 상상을 못하게 하려고야.

- 뭐냐? 뭘 저렇게 곤혹스러워 하지?

린타로 : 음? 하항— 그렇다는 건, 네녀석…

크리스 : 뭐, 뭐야?

린타로 : 호텔 샤워룸이라는 건 보통 화장실 일체형이니까, 함께 다른 용무도 보려고—

크리스 : 당신 말야, 정말 최악이야! 진짜로 배려심도 없고, 진짜로 죽일 거야!

린타로 : 기, 기다려, 농담삼아 해 본 말이야! 설마 진짜였다고는—!

크리스 : 그 이상 말하면 진짜로 죽일 거야.

린타로 : 죄송합니다.

- 이렇게 묶인 상황에서 거역하면, 농담이 아니라 생명의 위기가 된다.

- 결국 나는 크리스 말대로, 아이마스크와 헤드폰을 착용하고 묶인 상태로 샤워룸 문 앞에서 꼼짝달싹 못하는 상태로 오감을 모두 차단당하고 크리스가 샤워를 끝내기만을 기다렸다.



린타로 : 으… 으음…

- 아무래도 어느샌가 잠들었던 모양이다. 도대체 그 뒤에 어떻게 되었던 걸까. 맞아. 확실히 크리스가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또다시 예상했던 대로 아무래도 좋은 일 가지고 불평을 해 댔다. 그리고 그 뒤에 나도 크리스도 부지불식간에 잠들어 버린 거겠지. 방에 불도 그대로 켜져 있었다. 그렇게나 시끄럽게 쓰라고 했던 아이마스크를 씌우는 것조차 잊어버렸던 모양이었다. 시계를 보니 아직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여기서 크리스하고 말다툼을 했던 게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이었으니, 아직 그렇게 많이 자진 않은 거겠군.

크리스 : 음…

- 크리스가 자면서 내는 소리가 내 대각선 위쪽에서 들려왔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지만, 크리스는 침대에서, 나는 바닥에서 자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나 좋은 방의 바닥이다. 랩에 있는 낡은 소파 따위보다 훨씬 쾌적했다.

크리스 : …아빠.

- 사그라질 듯한 작은 목소리였지만, 확실히 들렸다.

크리스 : 흑… 죄송, 해요, 아빠… 그러니까…

- 도대체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러니까— 그 뒤엔 뭐라고 하려고 했을까. 이 천재 소녀가, 어떤 계기로 과학자를 지망하게 되어, 무엇 때문에 해외유학을 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어째서 울고 있을까—

린타로 : ……

- 생각하려다가 결국 멈췄다. 나하곤 관계가 없는 일, 지금 그건 못 들은 걸로 하자.

- 나는 바로 옆에 떨어져 있는 아이마스크를 착용하고,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 다음날 아침. 아침이라고 하기보단, 이미 12시를 넘어서 일반적으로 보기엔 한낮이지만,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호텔에서 랩 쪽으로 걸어갔다. 오챠노미즈에서 히지리 다리를 건너, 유시마 성당과 칸다묘진 앞을 지나 아키하바라로. 걸어서도 불과 2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다.

- 아키하바라 뒷골목을 지나고 있을 때, 의외의 인물과 만났다.

루카 : 아, 오카베씨.

린타로 : 루카코… 거기다…

크리스 : 키류씨…?

모에카 : …안녕.

- 루카코와 지압사. 뭐랄까 의외랄까, 기이한 조합이다.

린타로 : 너희들, 뭐 하는 거냐, 이런 데서.

-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그대로 두 사람에게 물었다.

모에카 : …저기.

- 모에카가 완만한 동작으로 가리킨 장소에는 어디에나 흔히 있는 작은 빌딩이 있었다.

모에카 : ……

- 그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모에카는 그 이상 뭔가 말할 낌새가 없었다. 여전히 메일로는 달변인 주제에, 말수가 적은 여자로군. 어쩔 수 없으니 다시 물어봤다.

린타로 : 저게 어쨌단 거지.

모에카 : 빌딩 이름…

- 빌딩 이름?

린타로 : 아크 리라이트?

크리스 : 아, 아크 리라이트라면 혹시나 키류씨가 알바를 하고 있다는 편집 프로덕션 아냐?

모에카 : 응…

- 옳거니. 확실이 이전에 편집 프로덕션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고 했지. 그렇지만 이렇게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는 모에카다. 혹시 그건 거짓말이거나, 그렇지 않다 해도 얼마 안 지나서 모가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이 세상엔 뭐랄까, 참 관용적인 회사도 존재하는군. 만일 취직 자리가 없을 경우엔 나도 여기 문을 두드려 보자. 아니, 그렇게 되면 모에카를 선배로 모셔야 하는 건가. 그건 그것대로 좀 싫군. 아니, 그런 건 지금 어찌되든 상관없지.

린타로 : 그렇군. 지압사가 여기서 알바를 하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어째서 루카코까지 같이 있는 거지?

모에카 : 촬영… 부탁했어…

크리스 : 촬영?

모에카 : 독점. 아키하바라에 강림한, 진짜 무녀…

린타로 : 뭐? 루카코가, 말야?

모에카 : 응. 그라비아를 찍자고, 편집장님이…

- 옳거니. 확실히 아키바에서 무녀 복장은 자주 볼 수 있지만, 진짜 무녀로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루카코 정도 뿐일지도 모르겠군. 허나, 그렇지만.

린타로 : 루카코는 남자잖아, 잡지에서 다루기엔 간판이 가짜, 라는 문제가 있진 않나?

모에카 : 사진으론 모를 테니까 괜찮아…

- 이 무슨 안이한 생각이란 말인가. 오히려 잡지에서 다루게 되면 그 뒤에 유명해져서, 그쪽이 나중에 더 문제가 되는 거 아닌가? 아니, 오히려 최근 풍조라면 그건 그것대로 받아들여 질지도 모르겠지만.

- 흠. 그렇게 되는 경우, 뭔가의 형태로 루카코에게 랩 자금을 불려 주길 기대할 순 없을까. 예를 들어 관련 상품을 만들어서 판권을 팔아서 우헤헤— 라든가. © 미래 가젯 연구소— …나쁘지 않은 발상이로군.

린타로 : 그래서 루카코는 어쩔 셈이지?

루카 : ……

- 응? 대답이 없다. 왜 저러지? 아무래도 나하고 크리스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서 얼굴이 빨개져 있는 것 같은데.

크리스 : 왜 그래요, 우루시바라씨?

린타로 : 글쎄. 어이, 루카코! 루카코, 못 들었나?

루카 : 예? 아, 아, 옛!! 저, 저 부르셨나요?

린타로 : 부르셨나요, 라고 하면 안 되지. 넌 지압사의 의뢰를 받을 건지 물어봤잖아.

루카 : 아, 아뇨. 그냥 저기, 전 어쨌든 이야기만이라도 들어 보라고 해서…

린타로 : 그래서, 수락할 건지 거절할 건지, 어느 쪽이지?

루카 : 그건, 저기, 수락할 생각은…

- 여전히 루카코는 안절부절 못하며 나하고 크리스를 번갈아 쳐다보고 뺨을 붉히고 있었다.

크리스 : 왜 그러죠, 우루시바라씨. 혹시 몸 상태라도 안 좋아요?

루카 :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린타로 : 그냥, 뭐지?

루카 : 그냥… 역시 진짜인가 해서요.

크리스 : 진짜? 진짜라니 무슨 말이죠?

루카 : 저기… 방금 키류씨가…

린타로 : 지압사가 왜?

루카 : 두 사람이 같이 나오는 걸 봤다고 해서… 저기, 호호호호, 호텔에서. 그것도 손을 잡고서…

크리스 : 뭣!?

린타로 : 지압사!

- 그, 그걸 본 건가?

모에카 : 두 사람의 관계는…?

크리스 : 아, 아냐! 그건 그냥 나온 것뿐이고,

모에카 : 들어갔으니 나온 거잖아요?

크리스 : 그건, 저기, 뭐, 그런 거, 아, 하지만, 그게 아니라—!

린타로 : 너무 당황하는군, 크리스티나! 그리고 지압사도 지압사다! 이럴 때에만 달변가가 되다니!

린타로 : 음…?

- 받은 편지함
날짜 8/9 13:17
from 섬광의 지압사
sub
손을 잡고 나왔다는 건, 그런 관계라는 걸로 봐도 되는 거겠죠? 어떻다는 건가요, 저기!? 가만히 있지 말고 대답해 주세요! 모에카.

모에카 : ……

린타로 : 그렇다고 해서 일일이 메일로 보내지 마라!

루카 : 저, 저기… 이럴 때, 뭐라고 하면 좋을지, 전… 어, 어쨌든, 축하드려요!!

크리스 : 그러니까, 아니라니깐!


크리스 : …그렇게 된 거죠.

- 역시 오해를 산 채로 그냥 지나칠 순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모에카하고 루카코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린타로 : 그러니까 그 때 손을 잡고 있던 것도, 사이가 좋아서가 아니라 반대로 싸움 중이었기 때문이지.

- 참고로 이제 나하고 크리스는 두 사람 다, 어느 정도로 전압이 올라가면 전기 충격이 발생하는지 대충 감을 잡고 있었다. 때문에 말싸움 도중에 슬슬 위험하겠는데 — 하는 생각이 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손을 잡는다는 식으로, 옆에서 보면 사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암묵적인 양해가 성립해 있었다.

크리스 : 그렇게 된 거라서, 나하고 이 녀석 사이엔 무엇 하나 뒤가 켕길 것도 없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예요.

린타로 : 꽤나 거슬리는 소리로군. 말해 두겠는데, 나야말로 너 같은 귀찮은 여자는 사양하고 싶다.

크리스 : 하아? 그건 내가 할 말이네요! 당신 같은 남자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나는 것만으로도 닭살이 돋아.

린타로 : 뭐라고!

크리스 : 뭐야!?

- 손을 잡는다.

크리스 : 흥!

린타로 : —쳇!!

린타로 & 크리스 : 그런 거니까, 두 사람 다 알겠지? & 그런 거니까, 두 사람 다 알겠죠?

모에카 : 저기, 그러니까…

루카 : 서로 싸울 정도로 사이가 좋다는 건가요?

린타로 & 크리스 : 아냐!!


이타루 : 그래서, 하룻밤 같은 방에서 보내고서도 결국 아무 일도 없었던 겅미? 한심하네여.

린타로 : 그러니까 없었다고 했잖나. 너까지 그런 소릴 하는 거냐, 통이.

- 지압사도 루카코도 그랬지만, 이놈이나 저놈이나 어째서 하나같이 저속한 상상밖에 못 하는 거냐. 이 세상은 하반신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닐 텐데 말이지. 그야말로 한탄스런 이야기다.

이타루 : 그치만 말여, 처자하고 호텔이잖여. 다된 밥 아녀. 아무 짓도 안 하는 건 그것대로 실례 아님?

크리스 : 저기 말야, 그런 남자들 생각을 멋대로 가져다 붙이는 거, 좀 관두지?

린타로 : 그래. 애당초 내가 조수하고 뭔가 묘한 관계에 빠진다는 건, 이 세상에 나하고 조수 두 사람만 남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크리스 : 그렇게까지 말하니 왠지 더 열받네.

- 왜냐! 어제서부터 안심시켜 주려는 생각에 말을 할 때마다, 어째서 화내는 거지.

마유리 : 것봐, 마유시— 말 대로지?

- 영어 책자하고 격투하고 있던 마유리가 대화에 가담했다. 학교에서 내 준 과제인 모양인데, 상당히 고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영어라면 크리스한테 물어보면 될 테지만 공교롭게도 문제가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기는 힘들어서 자력으로 어떻게든 하려는 모양이었다.

마유리 : 오카린은 말야, 그런 건 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린타로 : 마유리. 그렇게 말하는 건 뭔가 오해를 살 것 같으니까, 관둬 줄래?

마유리 : 오해? 오해라니 무슨 말이야?

린타로 : 요는 말이지, 그런 식이면 마치 내가 불능이라는 것처럼…

크리스 : 일일이 설명하지 마!

마유리 : 불능—? 불능은 영어로 말하면…. 임포시블!

이타루 : 마유씨, 마유씨, 방금 그거 한 번 더 말해 줄래?

마유리 : 임포시블?

이타루 : 하악하악.

크리스 : 그러니까 BYONTAI 발언 하지 말랬잖아.

- 어떻게 된 일이지, 이건. 하루다. 아직 단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랩 분위기는 어제의 그 광란을 싹 잊어버리고, 이미 여느 때의 상황을 되찾아 심각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는데, 이건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아무래도 통이와 마유리를 상대하고 있자니 긴장감이 부족해져 버리는 것 같군. 그러나 우리가 12호기에 의해 이어져 있다는 사실에 변함은 없다.

린타로 : 그런 것보다, 빨리 D 메일을 보내자.

이타루 : D 메일? 어째서?

린타로 : 뭣… 너, 너희 말야, 어째서 내가 일부러 크리스티나 쪽 호텔까지 갔던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냐.

이타루 : 응? 어째서라니…

마유리 : 크리스가 묵고 있는 호텔이 어떤 덴지 구경하고 싶었던 거, 였지? 좋겠어— 역시 마유시—도 같이 묵어 보고 싶어—

- 이 녀석들… 설마 정말로 잊어먹은 건가?

이타루 : 잠깐, 농담이야 농담.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지 마셈.

- 이 자식, 다른 사람 일이다 그거지! 여기선 한 번 제대로 말을 해 둬야겠군.

린타로 : 알겠나, 통이! 이건…

크리스 : 자, 오카베. 그보다 D 메일, 빨리 보내 보자.

린타로 : 어? 어, 어이! 크리스티나…?

- 통이한테 한 마디 하려고 입을 열었던 내 팔을 잡고, 크리스는 반쯤 억지로 끌면서 개발실로 들어왔다.

린타로 : 뭐 하나, 난 통이에게—

크리스 : 어쩔 수 없잖아.

린타로 : 뭐?

크리스 : 우리한테 있어선 아주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하시다나 마유리한테 있어선 어차피 다른 사람 일이니까 말야. 그러니까 화가 나더라도 별 수 없어.

- 크리스…

크리스 : 그보다 말야, D 메일. 문장은 마찬가지 걸로 되겠지? 그러면 빨리 보내자.

린타로 : 그, 그래…

- 나는 기분을 전환하고 D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린타로 : 역시 안 되나.

크리스 : 그렇네.

- 결국 어제에 이어 몇 번이고 도전해 봤지만 역시 전화렌지(가칭)는 예의 “띵”하는 얼빠진 소리만 냈을 뿐, 상황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았다.

린타로 : 원인은?

크리스 : 모르겠어. 하지만 전화렌지 자체가 작동하는 걸 볼 때 아마 뭔가 중요한 조건이 부족한 거라고 생각해.

린타로 : 그렇지만 그 조건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른다, 는 건가.

크리스 : 그런 거지.

- 그렇다고 하면 역시 우리는 오늘도 이대로 지낼 수밖에 없다는 거로군. 조금 상황에 익숙해졌다곤 하지만, 역시 의식하게 되면 숨막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타루 : 이 상황을 보아하니, 역시 안 됐음?

- 우리 상황을 살피고 있었나보군. 일단락이 된 것을 보고 통이가 개발실로 들어왔다.

린타로 : 그래. 유감스럽게도 말야. 원인도 알 수 없는 상태다.

- 하지만 확실히 유감스럽긴 하지만 어제 정도로 쇼크를 받진 않았다. 어제는 반드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상태였기 때문에 한 방에 나락 끝으로 떨어졌던 거다. 그러나 이번엔 안 될지도 모른다는 전제가 있었고 그래서 나온 결과다. 각오하고 있었던 만큼 충격도 적었다.

이타루 : 아 맞아. 그 대신… 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오카린에게 줄 선물이 있음둥.

린타로 : 선물? 뭐지?

이타루 : 저기, 예의 부탁했던 신작 가젯. 그거 완성했음둥.

린타로 : 뭣이? 벌써 완성된 거냐?

이타루 : 요는 발신기를 붙이는 것뿐이니까 말야. 기본 구조는 이미 다 되었고, 남은 건 부품만 있으면 되는 상태였거든. 그래서 어제 두 사람이 돌아간 뒤에 개발실도 비었고 하니 이때다 싶어서 마무리한 거지.

크리스 : 새로운 가젯… 뭐야? 당신들 또 그런 걸 만들었어?

- 아무래도 크리스는 어제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뭐,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무리는 아니지만.

크리스 : 신작 가젯이라… 그러면 이번엔 도대체 어떤 가젯이야?

린타로 : 훗, 알고 싶나, 크리스티나여.

크리스 : 뭐, 신경이 쓰이긴 해.

린타로 : 그런가. 그럼 가르쳐 주지. 새로운 가젯, 즉 13호는—

크리스 : 13호기는 먼저 내가 만들던 게 있으니까 그쪽은 14호기겠지.

린타로 : 윽… 14호기는, 그러니까 전파 재커다!

크리스 : 전파 재커? 뭐야, 그건?

린타로 : 모르겠나? 그 글자 그대로, TV 방송을 전파 재킹하는 장치지. 천재소녀이니만큼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크리스 : TV 방송… 아항, 요는 “broadcast signal intrusion”이라는 거네.

린타로 : 뭐냐, 그 장황한 영어는.

크리스 : 저기 말야, 일본에선 배를 탈취하거나 버스를 탈취하거나 하는 걸 “시 잭”이라든가 “버스 잭”이라고들 하는데, 그건 완전히 일본식 영어야.

이타루 : 뭐, 그렇슴둥?

크리스 : 그래. 애당초 “하이잭”이라는 건 그거 하나로 탈것을 탈취한다는 의미의 한 단어야. 그러니까 배를 탈취하는 것도 버스를 탈취하는 것도 전부 하이잭. 잭 만으로는 뭔가 탈취한다는 의미는 없어. 그래서 방금 이야기라면 아마 14호기는 TV 발신 전파 위로 다른 전파를 보내서 영상을 흘려보내는 장치겠지, 안 그래?

이타루 : 아, 맞음. 그대로임둥.

크리스 : 그런 거라면 영어론 “broadcast signal intrusion” —요는 방송 신호에 끼어들든가 개입하든가 하는 의미가 될 거야.

이타루 : 헤에, 그런가. 버스잭이 일본식 영어였군여. 번개 모임 때 써먹을 상식을 획득했슴다!

- 흥, 자기가 해외파라고 해서, 지식을 과시하다니. 영어 좀 하는 게 어쨌단 거냐. 그런 건 익사이트 선생님만 있으면 어떠한 영어라도 멋지게 번역해 줄 텐데 말이지.

크리스 : 그런데 요즘 세상에 뭣 때문에 TV 방송을 탈취하겠다는 거야?

린타로 : 그런 거야 당연하지. 이 호오인 쿄마가 세계를 혼돈에 빠뜨렸을 때, 전 세계를 향해 나의 고마우신 메시지를 발신하기 위해서다!

크리스 : 그럼 그거야말로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라든가에 업로드하면 되는 거잖아. 뭘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린타로 : 그래서야 보겠다고 나서는 인간들밖에 못 보는 거잖나. 하찮군. 갑자기 전 세계의 인간들이 반강제적으로 보게 되는 것에, 불타는 남자의 로망이 있는 거다. 이해 못 하겠나.

크리스 : 못 하겠어.

- 곧바로 대답했다.

이타루 : 뭐, 전 세계라곤 하지만, 전파 강도를 볼 때 재킹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아키바 정도, 그것도 아날로그 TV 한정이지만 말여.

크리스 : 뭐야 그거, 더욱더 의미 없잖아.

린타로 : 흥. 너 같은 된장녀는 이 고상한 로망을 평생 이해할 수 없겠지. 통이여, 더 이상 쓸데없는 이야기는 필요없다. 그 14호기는 어디 있지?

이타루 : 아, 그거라면 어제 완성해서 저기… 어라?

린타로 : 왜 그러지?

이타루 : 아니, 확실히 이 근처에 놔 뒀는데, 안 보이네.

- 개발실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럴싸한 건 놓여 있지 않았다.

이타루 : 이상하네. 어제 확실히 이 근처에 놔 뒀는데. 혹시 무의식적으로 이쪽에 놨다거나… 음— 역시 없네…

- 통이를 따라 나도 크리스에게 이끌려 개발실에서 나왔다. 통이는 그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찾았지만, 역시 찾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의 그러한 모습에, 지금까지 대화가 안 들릴 정도로 진지하게 영어 숙제에 몰두하고 있던 마유리도 고개를 들었다.

마유리 : 왜 그래, 통이? 뭐라도 찾아?

이타루 : 아니 그게, 어제 새로 만든 신작 가젯 14호기가 어디론가 사라져서 말야. 마유씨, 몰라?

마유리 : 14호기? 어떤 건데?

이타루 : 그게 이 정도 크기에…

- 나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린타로 : 응?

이타루 : 왜 그려, 오카린. 혹시 찾았어?

린타로 : 아니, 그게 아니라… 아무래도 부족한 게 그것만이 아닌 것 같은데.

이타루 : 뭐?

- 다시 한 번 방 안을 둘러보았다. 역시…

린타로 : 없다! 역시 없어! 박스 안에 넣어 뒀던 가젯이 모조리 사라졌어!

이타루 : 거짓말이지!?

- 확실히 한 데 모아서 개발실 구석에 놔 뒀을 텐데. 그게 어느새 모조리 사라졌다. 이건 혹시 — 빈집 털이라도 당한 건가!?

린타로 : 큰일이야! 경찰! 경찰에 전화해야 해! 마유리! 지금 당장 폴리스를 불러 줘! 119, 아니 117, 어느 쪽이지!?

크리스 : 오카베, 진정해. 그거 둘 다 아니거든.

마유리 : 아—!

-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이번엔 마유리가 큰 소릴 질렀다.

이타루 : 왜 그러셈, 마유씨. 뭔가 짐작 가는 거라도 있음둥?

마유리 : 그러고 보니 말야, 말하는 걸 깜빡했어.

린타로 : 깜빡했다니, 뭘 말야?

마유리 : 저기 말야, 지난 번에 말했던, 메이퀸 손님인 점장님이라고 있잖아?

린타로 : 그건— 예의 가젯을 사겠다고 했던 인물 말인가?

마유리 : 그래 맞아! 저기 말야, 그 사람이 말야, 어젯밤에 여기 왔었어요.

- 뭐라고!?

린타로 : 그렇다는 건 설마…

마유리 : 응. 박스에 들어있던 가젯을 모조리 다 가져간 거예요.

- 뭣이!

린타로 : 어, 어째서 그걸 좀 더 일찍 말하지 않았냐!

마유리 : 죄송해요— 말을 해 둬야 하는 일이었는데, 마유시—가 바보라서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 일갈을 하자, 마유리는 풀이 죽어서 고개를 떨구었다. 말이 좀 지나쳤던 걸까.

린타로 : 뭐, 뭐어, 잊어버릴 수도 있는 거지. 도둑맞은 게 아니면 그걸로 됐어.

크리스 : 그래. 마유리 덕분에 자금난에서도 탈출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감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마유리 : 미안해, 오카린. 앞으로는 조심할게.

린타로 : 됐어. 죄과는 공적으로 갚을 수 있는 거니까.

마유리 : 죄과? 공적?

린타로 : 이번엔 죄과보다도 공적 쪽이 크니까, 잘 했다는 걸로 칭찬해 주겠어.

마유리 : 으음, 그러면 기뻐해도 되는 걸까?

린타로 : 그래. 방금 전엔 소리 질러서 미안해.

마유리 : 으응, 마유시—도 잘못한 게 있으니까 됐어.

크리스 : 흐음—

- 문득 보니, 크리스가 뭔가 복잡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크리스 : 당신 말야, 역시 마유리한텐 비교적 솔직하네.

린타로 : 흥! 바보 같은 소릴. 난 언제나 솔직하지.

크리스 : 어디가.

- 어쨌든 말이지, 가젯이 팔려서 자금이 손에 들어온 건 기뻐할만한 일이다. 이걸로 얼마 동안은 빈곤하게 지내는 것도 면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크리스 다음으로 이번엔 통이가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타루 : 음—

린타로 : 왜 그러지 통이. 배라도 고프냐?

이타루 : 아니, 그런 건 아님둥. 단, 혹시나 나, 14호기도 그 박스 안에 들어 있던 게 아닌가 싶거등.

린타로 : 뭐? 그게 진짜냐?

이타루 : 으음. 확실히는 기억 안 나지만, 그런 것 같음둥.

린타로 : 그러냐.

- 라는 건 지금쯤 그 점장님이라는 쪽 가게에…

이타루 : 아—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니까, 만들려고 하면 곧바로 만들 수 있는데?

린타로 : 아니, 지금 당장 필요하다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그 사 갔다고 하는 점장이라는 쪽한테 이야기해서 다시 사오면 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라.

- 여하튼 간에, 지금은 돈이 손에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됐다. 어느 정도의 일은 대범하게 넘어가자.

크리스 : 어라?

- 또다시 크리스가 목소릴 냈다. 조금 전부터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는군. 도대체 이번엔 무슨 일이지?

크리스 : 저기, 저쪽 컴퓨터 옆에 놔 뒀던 하드디스크, 어딨는지 몰라?

린타로 : 하드디스크? 아니, 난 모르겠는데…

이타루 : 어? 그거 혹시… 250기가 짜리? 검은 케이스에 들었던?

크리스 : 그래! 하시다, 알아?

이타루 : 아— 그거 마키세씨 거였구나, 그럼 실수한 거네…

크리스 : 뭐? 무슨 말이야?

이타루 : 저기, 방금 이야가 한 14호기 말인데. 요는 하드디스크에 녹화된 데이터를 송신하는 가젯이거든…

크리스 : 뭐? 잠깐! 그렇다는 건 설마…

이타루 : 그 하드디스크, 14호기에 써 버렸음. 데헷♪

크리스 : 썼, 어? 그럼…

이타루 : 이야— 오카린이 개발실에 있는 건 써도 된다고 해서 말야— 설마 마키세씨 건줄은 몰랐음.

- 아무래도 통이 녀석, 놔 뒀던 크리스의 하드디스크를 무단으로 써 버린 모양이군. 확실히 있는 건 써도 된다고 한 건 나긴 하지만…

크리스 : 보통 그런 건 확인하고 나서 쓰는 거잖아!?

이타루 : 그렇긴 한데, 일단 한 번 붙여 보자, 라고 생각했거든… 미안 미안.

린타로 : 뭐, 그 정도는 괜찮잖나. 저기 방치해 둔 네 잘못도 있고, 그 정도의 호텔 생활을 하니까 말야, 하드디스크 1개 2개 쓰는 것 정도는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잖아. 또 사면 되잖아, 안 그래?

- 모르고 저지른 일이라도 해도, 써도 된다고 한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미안한 부분도 있고 해서 어떻게든 원만하게 해결하려 했는데…

크리스 : 그…

- 잘 보자 크리스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크리스 : 그런 문제가 아냐!!

- 이건— 행여나 큰일이 난 건지도 모르겠다.

린타로 : 지, 진정해라 크리스티나!

- 나는 어쨌든 전류가 흐르지 않도록 황급히 크리스의 왼손을 잡았다. 설마, 여느 때엔 폭주하는 내 오른손을 봉인을 위해 쓰게 될 줄은 몰랐다.

크리스 : 이게 정말이지, 진정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 그 하드디스크 안에는 데이터가 들어있다고!

린타로 : 데이터? 그게 너한테 소중한 건가?

크리스 : 소중… 그건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담할 순 없지만, 어쩌면 그럴 가능성도 있어.

마유리 : 어쩌면이라니, 무슨 뜻이야?

크리스 : 그 하드디스크는 말야, 13호기의 일부야.

- 13호기… 그건, 요 근래 크리스가 계속 개발하고 있던 신작 가젯이다.

크리스 : 하시다. 14호기는 그 안에 있는 영상 데이터를 전 세계의 TV로 비추는 가젯이었지.

이타루 : 전 세계라는 건 좀 그렇고, 출력상 간신히 아키바 안 정도밖에 보낼 수 없긴 한데…

크리스 : 그렇다고 해도 불특정 다수의 눈에 비치게 된다는 의미로는 충분해…

- 크리스의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이건… 생각했던 것보다 큰 일인지도 모르겠군.

마유리 : 크리스, 괜찮아? 얼굴 빛이 나쁜데? 물 마셔.

크리스 : 으응. 괜찮아, 고마워, 마유리.

린타로 : 저기, 크리스티나. 그 13호기라는 건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지?

크리스 : 그건…

- 크리스는 내 질문을 받고서, 왠지 주저하는 듯 했다. 말하기 힘든 기능인 걸까. 하지만 말을 해 주지 않는다면 크리스가 뭘 이렇게 초조해하는지 우리로선 전혀 알 수 없다.

린타로 : 어쨌든 14호기를 여기서 가져간 것 때문에 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게 왜 그런질 설명해주지 않으면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큰일인지 전혀 알 수 없지. 설명해 주겠나?

크리스 : 그치만…

- 말을 하다가, 크리스는 우리 얼굴을 한 번 둘러보았다. 지금 곧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이었다. 이런 크리스를 보는 건 처음일지도 모른다.

크리스 : …알겠어. 그럼 이야기할게, 13호기는 말이지…

게임/슈타인즈_게이트-비익연리의_달링/크리스2_01.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2/01/04 23:52 저자 에리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