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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슈타인즈_게이트:02장_1

2장 : 공리 방황의 랑데뷰 (1)

- 하룻밤이 지나고, 이제 낮. 철야를 한 뒤엔, 한여름의 태양은 너무나 눈이 부시다. 밖에 나가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랩 안은 찌는 듯 더워서 짜증이 난다. 닥터 페퍼를 입 안에 흘려 넣었다. 너무 많이 마신 건지, 뱃속이 거북했다. 잠을 안 잔 탓에, 페트병을 쥐고 있는 손은 약간 떨리고 있었고 눈도 침침했다. 방심하면 의식이 날아갈 것 같았다. 샤워라도 하고서 졸음을 쫓는 편이 좋을까나. 이 빌딩에는 간이 샤워실이 있다. 목욕탕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샤워실이지만 그래도 있는 것하고 없는 건 하늘하고 땅 차이다.

이타루 : ……

- 나에게서 딱 등을 돌린 듯한 모습으로, 통이가 PC를 조작하고 있었다. 다리를 격렬하게 떨면서. 실내에 울리고 있는 건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하고 통이가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 정도였다. 통이는 이쪽을 보지도 않았고, 이야기를 걸어 오지도 않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기력이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무척이나 한가로운 여름철 오후일 테지만, 여기는 지금 살벌한 공기가 떠돌고 있었다. 어제― 그 충격적인 실험에 의해, 나는 전화렌지(가칭)에 타임머신 기능이 있다는 걸 확신했다. 크리스는 실험 결과나 내가 내린 결론을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듯,

크리스 : 타임머신이라니… 타임머신 같은 건… 거짓말이야!

- 라고 외치며 랩을 뛰쳐나갔다. 이제 두 번 다시 여기에 나타날 것 같지 않을 기세였다. 마유리는 어떤가 하면, 닭튀김하고 바나나 건 때문에 완전히 삐진 모양으로, 일과로 삼고 있던 코스튬 만들기도 빼먹고선 돌아가 버렸다. 먹는 것에 대한 원한은 역시 엄청난 것인가.

- 그래서 나하고 통이가 랩에 남아 있는 거긴 한데, 우리는 전화렌지(가칭)에 엄청난 가능성이 숨겨져 있다는 것 하고, 그리고 실제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메일”을 본 것 때문에 엄청나게 텐션이 올라가 버렸다. 그렇게 하여, 전화렌지(가칭)이 타임머신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두 사람이서 밤을 새 가면서 했지만, 그 결과는… 슈퍼에서 여러 가지를 사 와서 전화렌지(가칭)에 집어넣어 봤지만, 모두 실패. 변화 없음.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방전 현상이 일어난 이후의 실험에서는 젤리화가 되지도 않고, 여느 때나 다름없이 데워질 뿐이었다. 어째서 갑자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된 건가, 원인은 불명. 그리고 “메일을 과거로 날리는 기능” 쪽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실험을 반복해서 내가 정리한 문제점은 다음과 같았다.

- 문제 그 1―
방전 현상 대책.
화재 위험이 있기 때문에 개발실에서 불에 탈 만한 것을 모두 철거.
물로 가득 채운 방화 바께쓰를 2개 준비해서, 만에 하나의 경우에 대비했다.

- 하지만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앞으로 상황을 보아 가면서 생각하긴 하겠지만, 만일 위험할 것 같으면 실험하는 장소를 옮기는 것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 문제 그 2―
질량 증대 문제.
방전 현상이 일어날 때 전화렌지(가칭)는 원인 불명의 급격한 질량 증가 현상이 일어나는 듯 하다.
그것 때문에 렌지는 테이블을 부수고 바닥에 꽂혔다.

-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렌지를 바닥에 놓고, 쿠션이나 모포 같은 걸 밑에 깔아서 해결했다. 바닥에 난 구멍도 숨길 수 있으니 일석 이조다. 어디까지나 응급 처치긴 하지만 더 이상 바닥에 구멍을 뚫으면 미스터 브라운이 변상하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 만에 하나 바닥이 무너진다면 엄청난 참사가 일어날 것이다. 참고로 어째서 질량이 늘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조사해야 한다. 우리 같은 아마추어 집단이 조사할 수 있을까 하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상의 2가지는 사소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보다도 훨씬 중대한 문제가 있다. 이게 해결되지 않는 한 과거로 날아가는 메일을 완벽하게 사용할 순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크리티컬한 문제라 할 수 있다.

- 문제 그 3―
애시당초 메일을 과거로 보내게 할 수 있는 조건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

- 몇 번이고 시험해 봤지만 그 조건을 특정할 수 없었다. 밤을 새 가며 40번 이상 시행착오를 거듭했지만, 한 번도 방전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렌지 문을 반쯤 열어 두는 게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런 내 발상은 순식간에 박살났다. 달리 뭔가 조건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처음에는 법석을 떨었던 우리 역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실험이 잘 되지 않아서 초조해졌다. 그래서 지금 상황에 이른 것이다. 솔직히 포기 상태가 되어서, 아침이 되고서부턴 계속 이렇게 별 것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또 핸드폰에 메일이 도착했다. 어제서부터 계속해서 메일이 오고 있다. 모두 다 『샤이닝 핑거』― 키류 모에카라는 이름의 여자한테서 온 거다. 원래 난 메일을 자주 쓰는 타입이 아니다. 마유리 역시 요새 여고생 치곤 드물게 하루에 한 번 보낼까 말까 한 수준이다. 그래서 이 정도 되는 빈도는 좀 짜증이 난다. 지압사가 메일쟁이라는 건 그 손가락 놀림을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거였다. 경솔했다. 답장을 보내는 것도 귀찮으니, 무시. 손에 든 닥터 페퍼를 비우자 뱃속이 꾸륵거리며 소릴 냈다. 어젯밤부터 아무 것도 안 먹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샤워를 할 기력도 없었다.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던 통이한테 말을 걸어 봤다.

린타로 : 이봐, 『삼보』에 규동 먹으러 가지 않을래?

이타루 : 아~ 귀찮아…

린타로 : 배 안 고파?

이타루 : 고프긴 한데―

린타로 : 흥… 우유부단한 남자 같으니.

- 애시당초 이 녀석은 좀 전부터 PC 가지고 뭘 하고 있는 거지? 흥미가 생겨서, 등 뒤에서 별 생각 없이 훔쳐보았다.

- 거기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근미래스러운 시설의 사진이 표시되어 있었다. 거대한 팔각형 터널에, 원색으로 된 코드 같은 것이 무수히 많이 얽혀 있어서 마치 만다라처럼 보인다. 아니면 SF 영화에 나오는 거대 우주선 속이라든가. 높이는 10미터 이상 되는 것 같았다. 같이 찍혀 있는 사람의 키하고 비교해 보면 그건 명백했다. 참고로 그 인물은 일본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타루 : 하후~

- 통이가 그걸 보고서 절절하게 한숨을 쉬었다. 눈이 공허한 건 잠을 안 자서 그런 걸까, 피곤해서 그런 걸까, 그렇지 않으면 어딘가 맛이 간 걸까나.

이타루 : 라지 하드론 콜라이더는 레알 치유된다니까~

린타로 : 이, 이 자식…! 지금 뭐라고 했지!?

- 라지 하드 콘라이더? 그건 주문이냐? 아니면 필살기 이름이냐!?

이타루 : 라지 하드론 콜라이더. 몰라?

- 나는 아직 늘어진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통이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힘껏 조였다.

이타루 : 아야야야, 뭐 하는 거야!

린타로 : 잠꼬대라도 하고 있는 거냐?

이타루 : 잠꼬대 같은 건 아냐.

린타로 : 그 라지 하드론 콜라이더라는 건 뭐야?

이타루 : SERN이야 SERN. 그 시설의 실험 장치. 줄여서 LHC. 레알 모에하다니까. 춫헌.

린타로 : 너, 인간이 아닌 것에까지도 성욕을…

이타루 : 그런 거 없어. 그치만 뭐랄까, 보면 두근거린달까? 히죽거리게 된달까? 그런 느낌 있잖아?

린타로 :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엔 공장이나 고가도로 밑 같은 게 정말 죽인다든가 그런 소릴 했었지.

이타루 : 그래 맞아. 그런 거나 마찬가지지.

린타로 : 줏대 없는 녀석 같으니.

- 2차원, 3차원, 그리고 무기물까지 손을 뻗치다니…

이타루 : 장르별로 나눠서 흥미 있는 대상을 스스로 좁히는 게 더 아까운 인생 아냐?

- 그런 것 치고는 흥미 없는 일에 대해서는 뭐든 귀찮아하는 성격은 나아질 것 같지가 않은데 말이지.

린타로 : SERN이라…

- 다시 한 번 그 이름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최근 어디선가 봤었다. 어디였더라. 생각할 것도 없었다.

린타로 : 존 티토!

이타루 : 아, 존 티토. 오카린이 말한 건 지금 @채널에서 한참 날리고 있는 그 녀석 이야기였군.

린타로 : 그 자는 가짜일 가능성도 있어. 내가 말한 존 티토는 10년 전에 나타난 쪽이야.

이타루 : 10년 전에도 나타났다고? 동일 인물?

- 통이가 기억을 해 낸 건가 하고 잠깐 기대했지만, 금새 그 기대는 깨져버렸다.

린타로 : 어쨌든 간에 존 티토가 SERN에 대해서 언급을 했었어.

- 어렴풋한 기억이긴 했지만 하나 확실한 게 있었다.

린타로 : 티토는 이런 “예언”을 남겼어. 그러니까 2034년에 SERN이 타임머신을 완성시킨다고…!

이타루 : 오오, 타임머신. 그야말로 젖절한 화제로군. 하지만 그건 10년 전이 아니라 지금 이 티토도 이야기했음둥.

린타로 : 10년 전이든 지금이든, 어쨌든 좋아. 그보다도 신경 쓰이는 거 없나, 통이여. 이 기묘한 부호는 슈타인즈 게이트의 선택일 가능성이 높아!

이타루 : 티토를 믿을 수 있어?

린타로 : 믿을 수 있냐 없냐 하는 건 어쨌든 좋아! 우리하고 그 녀석은 지금, 타임머신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되어 있어. 그 티토가 언급한 SERN에 대해서 조사해 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구!

- 내 안에서 다시 기력이 되살아났다. 역시 매드 사이언티스트에게 있어선 호기심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먹잇감이지! 어차피 지금은 막다른 길인 상태이니 이렇게 곁길로 빠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린타로 : 통이, SERN에 대해서 자세히 부탁해.

이타루 : OK. 나의 SERN 폴더가 불을 뿜는다!

- 통이는 갑자기 득의양양해져선 키보드를 가볍게 두드렸다. PC의 내 사진 폴더에서, 진짜로 SERN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폴더를 열었다. 거기에는 통이가 웹 여기저기에서 모았다고 하는 SERN에 대한 수많은 사진이 모아져 있었다.

이타루 : SERN은 세계 최대 규모의 소립자 물리학 연구시설이라능. 『유럽 소립자 물리학 연구소』라든가 『유럽 소립자 원자핵 연구 기구』 같은 이름으로 불린 적도 있어. 스위스하고 프랑스 사이 국경 근처인 쥬네브 교외에 있다지. 예전 걸로는 HTML이나 HTTP, World Wide Web을 만든 장소로도 유명해.

린타로 : World Wide Web이라고? 그거라면 인터넷에서 쓰는?

이타루 : 빙고. URL 처음에 붙는 그거.

- 그 http://www이라는 거 말인가. 그걸 만든 데가 SERN일 줄이야. 티토의 책을 읽고서 약간은 알고 있다 싶었는데, 그 정도로까지 대단한 곳이었을 줄이야…

이타루 : 일본에선 그렇게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일본 연구팀도 현재진형행으로 참가하고 있다구.

린타로 : SERN은 어떤 연구를?

이타루 : 기본적으로는 소립자 물리학일까나. 세계에서 유일하게 SERN만이 가지고 있는 초대형 실험 장치가 있거든. 이른바 입자가속기라는 거 말야. 저속 반양자 축적 링, 양자 싱크로트론 부스터, 대형 전자/양전자 콜라이더. 그리고 최종보스는, 세계 최대급을 자랑하는 LHC… 라지 하드론 콜라이더땅.

- 땅, …이라니. 오덕은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땅”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의인화, 모에화를 가능케 한다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딱 그거로군. 통이는 내 질린 표정을 보지도 않고서 모니터에 계속해서 사진을 띄웠다.

이타루 : LHC는 SERN 지하에 있는 전체 길이 약 27킬로의 원형 터널에 설치된 입자 가속기야. 양자를 그 터널에서 가속시켜서 서로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미지의 소립자 반응을 일으키는 실험을 작년 정도부터 시작했어. 뭐, 실험 개시 전에는 그 실험으로 미니 블랙홀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냐는 소문도 있었지― 그 미니 블랙홀에 지구가 잡아먹힌다! 우주가 위험해! 같은 소리 말야.

- 미니 블랙홀… 10년 전의 글에 따르면 티토의 타임머신은 미니 블랙홀을 사용했었다고 했다. “예언”은 SERN에 대해서는 맞췄다는 건가?

린타로 : 현실에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이타루 : 있… 을 리가 없지. SERN이 공식적으로 부정하고 있어. 만일 설령 미니 블랙홀이 생성되었다고 해도 에너지 양이 무척이나 작으니까 만들어진 순간에 사라지겠지. 지구를 삼키는 건 완전히 무리야.

린타로 : 하지만 불이 없는 데 연기가 생기진 않지.

- 확실히 티토는 이렇게 말했다. SERN은 2001년부터 타임머신 연구를 시작해서 2034년에 타임머신을 완성시킨다, 라고. 지금은 2010년. 현실에서 연구를 시작했다면 이미 9년이 지났다. 공식 안내를 보면 실험 시작은 2008년부터라고 되어 있는 것도 수상하다. 물론 예언이 현실이었다면, 이라는 가정이 필요하긴 하다. 티토의 예언은 맞춘 것도 있지만 틀린 것 쪽이 많으니 말이지. 어째서인지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티토가 2000년에 나타났던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묘한 사실도 마음에 걸렸다. 티토가 말한 것에는 뭔가가 있다. 뭔가가 있었으면 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들어 오른쪽 귀로 가져갔다.

린타로 : 나다. 큭큭큭, 듣고서 놀라지 마라. 사악한 음모의 스멜을 느꼈어. …존 티토와 SERN. 그 두 가지 단어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파악할 수 있을 것다. …그래, 맞아. 놈들은 “기관”하고 이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훗, 우연이라고? 어이 어이, 날 너무 실망시키지 말도록. …뭣이? 근거라고? 그렇군, 구태여 말하자면… 속삭이고 있다구. 내가 가진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직감이 말이지. 놈들은 세계를 멸망시키려 하고 있다. …그래, 미니 블랙홀을 써서다. 하지만 만일 그 기술을 우리가 탈취할 수 있다면 어떨까나? …큭큭큭, 당연하지. 날 누구라고 생각하나. 모든 건 슈타인즈 게이트의 선택이야. 엘 프사이 콩그루.

- 전화기를 집어넣자 통이가 질린 듯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이타루 : 님아는 도대체 누구하고 싸우고 있는 거야…

린타로 : 통이, 우리가 할 일은 한 가지다.

이타루 : 할 일? 그게 뭥미?

린타로 : 뭥미, 가 아냐! 되묻지 말라구! 거기선 모두 다 이해했다는 듯 쓰윽 웃어 줘야 하는 거다. 그렇찮음 슈퍼 하커스럽지 않잖아.

- “이것 참, 어쩔 수 없군. 그럼 보수는?” 같은 말을 해 주길 바랬는데. 그러고 나서 다음과 같은 농담 섞인 대화가 이어진다.

- 나 『감자칩 1주일치다』

- 통이 『10일치로 합의를 보지』

- 나 『훗, 먹는 것에 욕심은 많군』

- 통이 『다이브(침입)는 배가 고파지는 작업이니까 말야』

- 나 『교섭 성립. 곧바로 착수해 줘』

- 통이 『OK, 보스』

- 같은 느낌으로. 으음, 실로 쿨하고도 짜릿한 대화다. 하지만 현실의 통이는 입술을 내밀고서 삐져 있다.

통이 : 오카린은 항상 설명이 부족하다니깐. 폼 잡는 것보다도 먼저 이해가 되도록 이야기를 해 줘.

- 정말이지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녀석 같으니!

린타로 : 넌 슈퍼 하커다.

통이 : 하커라고 하지 마. 적어도 해커라고 해 줘.

린타로 : 그 다음은 알고 있겠지?

이타루 : 아니, 전혀.

린타로 : SERN을 해킹해.

- 내 부탁을 듣고서 통이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타루 : …그건 혹시나 개그라고 하는 소리야?

린타로 : 통이, 너라면 할 수 있어. 놈들이 저지른 악독한 짓들을 파헤쳐, 타임머신에 대한 힌트를 입수해라.

이타루 : 악독하다니… 오카린의 망상이잖아―

린타로 : 전화렌지(가칭)를 타임머신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가, 이대로 단순한 잡동사니가 되어 랩의 창고에서 잠들게 되는가, 지금이 분기점이야.

이타루 :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린타로 : 난 항상 진심이다!

- 통이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고서 그렇게 답했다. 그 덕분에 내 마음이 통이에게 전해진 모양이었다. 심각하게 어질러져 있던 PC 주위의 쓰레기를 난폭하게 손으로 쓸어낸 후에, 통이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이타루 : 어떻게 되도 모른다?

- 좀 전까지 게으른 포즈로 PC 앞에 앉아 있던 게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지금 통이는 꼿꼿이 등을 펴고 있었다.

린타로 : 교섭 성립. 곧바로 착수해 줘.

이타루 : 우하, 흥한다!

린타로 : 보수인 감자칩 1주일치는 스위스 은행에 입금해 두지.

이타루 : ……

- 내 마지막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통이는 이미 집중하고 있었다.

린타로 : 그럼 난 잔다. 뒤는 부탁해.

- 소파에 누워서 비몽사몽한 상태로 빠져드는 도중에도, 내 귀에는 계속 통이가 키보드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눈을 뜨자 창 밖은 황혼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상쾌한 바람이 들어와서 내 뺨을 어루만진다. 통이는 내가 잠에 빠지기 전하고 완전히 똑같은 장소에서 완전히 똑같은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변한 것이라면 다리를 떠는 속도가 빨라진 것 정도. 뭔가 중얼거리면서 PC를 조작하고 있다. 아직까지 해킹에는 성공하지 못한 거라고 봐야 하겠지. 방 안을 둘러봤지만 마유리의 모습은 없었다. 오늘은 오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역시 먹을 것에 대한 원한은 깊은 건가. 방해하면 미안하니 통이한테 말은 걸지 않고, 일어나서 크게 기지개를 폈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닥터 페퍼를 꺼내서 마른 목을 축인다. 다시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채널에 접속했다. 마침 타이밍 좋게 예의 티토님이 강림하신 중이었다.

229 이름 : JOHN TITOR◆f8VuYnoyWU : 2010/07/30(금) 17:36:29 ID:nE2bVz8A0
세계는 에버렛 휠러 모델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건 그쪽을 참고해 주세요. 여러분은 시간 개념에 대해서 고정관념에 지배되어 있는 것 같군요.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라는 한 쪽 방향으로 흐르고 있지 않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인과율은 무슨 일에 있어서도 모순을 용납하지 않도록 결과 부분이 바뀌었을 경우 그에 맞추어 원인도 문제 없도록 바뀌게 됩니다. 다이버젠스가 변동되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다이버젠스는 세계선 변동률을 말합니다)

230 이름 : 이름없는 예언자 : 2010/07/30(금) 17:36:47 ID:EwxU7IKu0
죽어라 사기꾼. 증거도 안 내놓고서 뭐가 타임트래벌러냐 잉여ㅅㄲ

231 이름 : 이름없는 예언자 : 2010/07/30(금) 17:37:21 ID:2BlkIGVA0
주가 정보 plz. 물론 알고 있겠죠 타임트래벌러라니까.

232 이름 : 발오반과 에네르기파 : 2010/07/30(금) 17:37:50 ID:c4YGJQG0
다이버젠스라는 것의 변동을 인식할 수 없다면 어떻게 티토는 변동률 수치를 관측할 수 있단 거지? 아, 맞아, 타임머신엔 그걸 계측할 수 있는 장치도 실려있는거군요 알겠습니다 ㅋㅋㅋㅋㅋ
그리고, 연구 기관이었던 SERN이 어느새 세계를 지배하는 통치 기관으로 변모한 건에 대해서 질문했는데 언제 대답해 주실 겁니까 존씨 ㅋㅋ

233 이름 : 이름없는 예언자 : 2010/07/30(금) 17:38:18 ID:oPnJf03P0
이야기는 잘 들었다! 인류는 멸망한다! (Aㅏ…

234 이름 : 이름없는 예언자 : 2010/07/30(금) 17:39:04 ID:zpCcZ/Db0
쉰 떡밥에 낚이기는 이런 ㅄ들ㅋ 티토는 걍 떡밥이야.

235 이름 : 호오인 쿄마 : 2010/07/30(금) 17:40:23 ID:VigrFpib0
이놈도 저놈도 다 티토를 비방하고 중상하기만 하고, 제대로 이의를 제기하려는 생각은 없는 모양이군. 그러니까 네놈들은 쓰레기란 거다!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게 아니라면, 타임머신은 좀 더 간단한 장치가 된다는 거지. 미래에서 과거로 가는 행위가 시공의 『역행』이 아니게 되니까 말야. 티토가 하는 말에도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티토, SERN이 지금 하고 있는 실험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가르쳐 줬으면 하네만.

236 이름 : 이름없는 예언자 : 2010/07/30(금) 17:41:31 ID:mHIPbPNP0
가을에 있는 천황상의 우승마를 가르쳐 줘. 전 재산을 쏟아 부을 테니까.

237 이름 : 이름없는 예언자 : 2010/07/30(금) 17:41:35 ID:okqnDJCu0
에버렛 휠러 모델 = 다세계 해석. 즉 세계는 패러럴 월드라는 거로군.

238 이름 : 이름없는 예언자 : 2010/07/30(금) 17:42:22 ID:5mZEpBkK0
뭔가 고정닉 새퀴 짜증나는데? 티토보다도 호오인 쿄마란 새퀴가 더 짜증나.

239 이름 : 이름없는 예언자 : 2010/07/30(금) 17:42:49 ID:NFnnAEed0
존 티토라는 이름을 한 주제에 일본어를 아주 잘 떠드는 것부터가… 적어도 영어로 써 주셈, 리얼리티 있을 테니까. 물론 영어론 못 쓰겠지만.

240 이름 : 이름없는 예언자 : 2010/07/30(금) 17:43:36 ID:ujd0uBNy0
타임머신이라는 게 만일 정말로 있다면 전 티토씨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작년에 어머니가 시부야의 지진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나가시는 걸 제가 막았더라면 죽지 않으셨을 거예요. 그러니까 타임머신을 빌려 주세요!

241 이름 : 발오반과 에네르기파 : 2010/07/30(금) 17:44:40 ID:c4YGJQG0
»235
이론도 출처도 밝히지 않는 타임트래벌러ㅎㅎ가 하는 소릴 믿는 이 인간은…

311 이름 : JOHN TITOR◆f8VuYnoyWU : 2010/07/30(금) 18:09:37 ID:nE2bVz8A0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고 한 것에 대해서, 여러분은 특별히 아무런 느낌도 못 받으시는 모양이군요. 그게 바로 고정관념에 지배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고정관념을 깨뜨리지 않으려 하는 것은 제 시각으로 봤을 땐 상당히 심각한 현상입니다. 디스토피아가 구축되고 만 이유를 왠지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다이버젠스가 바뀌는 큰 사건이 발생하면 그 때마다 과거는 인과율에 따라 모순이 없어지도록 재구성됩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세계선에서 어떠한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여 다이버젠스가 크게 변동하며 세계선 B로 이동합니다. 세계선 B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이 @채널이라는 인터넷 게시판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경우 여러분 속에 있던 [email protected] 봤다, 글을 썼다』라고 하는 지금까지의 기억은 삭제되며 그 시간 동안에 다른 일을 했다는 기억이 구축됩니다. 이것은 결국 현재를 바꾸는 것으로 과거가 바뀐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SERN에 대해서는 어제 설명했습니다. 여기에 설명을 덧붙인다면,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미 그들은 마이크로 블랙홀 생성에 성공했습니다.

312 이름 : 호오인 쿄마 : 2010/07/30(금) 18:10:13 ID:VigrFpib0
»발오반과 에네르기파
나는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싶은 것뿐이다. 처음부터 거짓말이라고 결정짓고 보는 태도보다는 그게 거짓말인지, 사실인지 하는 건 티토가 말하는 것을 듣고 나서 판단하는 게 더 옳겠지. 이 나, 매드 사이언티스트 호오인 쿄마야말로 가까운 미래에 티토와 접촉해서 타임머신을 손에 넣겠다. 그 때엔 이 내가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손가락이나 빨면서 보고 있어라, 우민들아!

313 이름 : 이름없는 예언자 : 2010/07/30(금) 18:11:05 ID:pBgaGka90
됐으니까 주가 가르쳐 달라니까 까불거면 걍 나가 뒤져 그거 안 가르쳐 주면 절대로 안 믿을 거라구!

314 이름 : 발오반과 에네르기파 : 2010/07/30(금) 18:12:07 ID:c4YGJQG0
»311
그건 세계가 재구축되었다고 할 수 없는 거잖아 등1신아. 인간의 뇌 속 기억이 조정된다는 거잖아. 완전히 다른 거잖아 병1신아. 애당초 도대체 누가 67억이나 되는 사람의 뇌를 동시에 조정한단 거냐? 자기 자신이 의식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거냐? 적어도 나님은 그런 조정을 한 적도 당한 적도 없네여. 또 그게 어디가 다세계 해석이야. 좀 더 공부하고 와랔ㅋㅋ
마이크로 블랙홀ㅋㅋ

315 이름 : 이름없는 예언자 : 2010/07/30(금) 18:12:36 ID:X59cEgxM0
세계는 멸망하는 거야? 그러면 개조 버기카에 타고서 햣햐― 할 수 있게 되는 거구나! 잠깐 이발소에 가서 모히칸 머리 하고 올게. 가시 박힌 어깨뽕은 어디서 팔지?

316 이름 : 이름없는 예언자 : 2010/07/30(금) 18:12:54 ID:SWS6cCo20
SERN 홈피 보고 왔는데 2009년부터 실험하고 있네여. 레알 블랙홀 만들고 있는 걸까나?

317 이름 : 이름없는 예언자 : 2010/07/30(금) 18:13:20 ID:/+o/wQf50
도대체 무슨 일이 시작되고 있는 건가요?

318 이름 : 이름없는 예언자 : 2010/07/30(금) 18:13:44 ID:upvTBIcu0
티토씨도 햣햐―를 한 건가! 젠장, 조낸 모에하네!

319 이름 : 이름없는 예언자 : 2010/07/30(금) 18:14:10 ID:JqAkKre70
뇌가 곧 세계를 만들고 있다 같은 소릴 할 셈인가요? 인류의 모든 정신은 가지에 있으며 중앙에는 밑둥이 있다는 소리라도 할 참인가요? 세카이계 중이병 소재로 가는 겁니까. 실망이군요 미래로 돌아가 주시길.

320 이름 : JOHN TITOR◆f8VuYnoyWU : 2010/07/30(금) 18:15:19 ID:nE2bVz8A0
»314
그렇군요, 이렇게 번호를 지정해서 대답할 수 있군요. 세계 재구축과 인간 뇌 속 기억의 조정. 저는 둘 다 동일한 의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어째서 당신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세계선의 변동을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은 일부를 제하곤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계선이 변한 시점에서 재구축은 종료되었기 때문입니다.
햣햐―라는 게 뭔가요?

??? : 안냐세―요.

- 인터넷 상에서의 토론에 열중해 있을 무렵, 그다지 익숙치 않은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관 문이 열리고 조심스런 태도로 여성이 실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본 적 있는 얼굴. 확실히 어제, 브라운관 공방에서―

여자 : 실례할게요― 브라운관 공방입니다.

- 나하고 눈이 마주치자 자칭 브라운관 애호녀는 잠시 우물거렸다.

여자 : 수리 맡긴 TV, 고쳤어. 가지러 와 줄래?

- 통이가 다리를 떠는 속도는 더욱 빨라져 있었다. 지금이 고비인 모양이라, 이야기 소리를 내는 것도 안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허둥지둥 밖으로 나왔다.

여자 : 어째서 그렇게 살금살금 움직이는 거야?

- 으음, 이 녀석 이름이 뭐였더라. “아루마”라든가 “아모레”였던가 하는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 “아마네”다. 아마네 스즈하.

린타로 : 지금 내 천재 파트너가 중요한 미션을 수행하는 중이지. 방해하고 싶지 않아.

스즈하 : 흐음. 너희는 뭐 하는 사람인데?

린타로 : 전에도 말했을 텐데. 우리의 비밀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네 녀석도 위험에 휘말려 들 가능성이 있다고.

스즈하 : 미래 가젯 연구소, 라는 거로구나.

린타로 : 어, 어째서 알고 있지? 나는 설명한 기억이 없는데. 설마 네놈은, “기관”의 스파이―!?

- 나는 재빠르게 당랑권 자세를 잡고서 경계했다. 하지만 스즈하는 멀거니 있었다.

스즈하 : 아래 있는 편지함에 그렇게 써져 있었는데.

린타로 : …그, 그런가.

- 자세를 잡느라 힘들었잖아. 감히 날 헷갈리게 하다니.

린타로 : 아, 알게 되었다면 어쩔 수 없지. 간단히 설명해 주마. 하지만 이건 다른 데 가서 이야기하지 말도록.

- 스즈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꽤나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린타로 : 우리 미래 가젯 연구소는 세계를 그림자에서 조작하는 어둠의 기관에 대항하여 그 지배 구조를 파괴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지. 후하하하!

스즈하 : 헤에~ 그 어둠의 기관이란 건, SERN?

린타로 : …!? 그, 그렇긴 한데…

스즈하 : 오옷! 역시 그런 거야? 그 녀석들, 타기(唾棄)할 만한 녀석들이지~

- 어째선지 뭔가 잘 알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다. 더군다나 “타기할만한”이라니… 그런 어려운 단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건 나 정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린타로 : 어째서 우리가 지금 막 SERN을 해킹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스즈하 : 엇? 해킹 중이야? 지금?

- 이런, 쓸데 없는 소릴 떠들었다.

린타로 : 됐으니까 이쪽 질문에 대답해라. 어째서 우리하고 SERN의 관계를 알고 있지!?

스즈하 : 아―, 저기, 그건… 이야아, 아하하, 실은 낮에 이야기 소리를 들어서 말야. 여기 서 있으면 창문으로 들려오거든.

- 창문… 확실히 활짝 열려 있고, 나하고 통이는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들리는 정도인 걸까. 2층을 올려다 봤다. 지금도 창문은 활짝 열려 있지만 아무 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다. 통이는 묵묵히 작업 중인 모양이었다. 시선을 떨군다. 브라운관 공방의 입구 근처엔 낯선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흔히 말하는 MTB(마운틴 바이크). 프레임은 번쩍거리고 있고, 타이어도 전혀 더럽지 않으니까 아마도 새 거겠지. 꽤나 빠를 것 같은데, 누구 거지?

스즈하 : 나, 어제서부터 여기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 스즈하는 브라운관 공방의 문을 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스즈하 : 이게 예상 이상으로 심심해서 말야, 오늘에만 4, 5번은 밖에 나왔어. 손님이 오지 않을까 하고서 가게 앞에서 “색적”까지 했다구.

- 색적? 익숙치 않은 단어가 갑자기 섞여든 탓에 나는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떠올렸다. 색적… 색적… 색적… 설마 적을 찾는 색적(索敵)!? 이 여자, 어딘가의 소령이냐!?

- 스즈하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스즈하 : 그러고 있을 때 2층에서 너희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 거야. 신경이 쓰여서 곧바로 인터넷으로 조사해 봤어. SERN이 가진 검은 소문에 대해서도 확실히 알게 됐다궁.

- 큭, 경솔했어. 앞으로 바깥에 누설되면 안 되는 대화를 할 때는 창문을 닫아 둘 필요가 있겠군. 하지만 그런 짓을 하면 랩 안은 작열 지옥이 된다. 으음, 망설여지는군.

린타로 : …어, 어쨌든 절대로 다른 사람한텐 누설하지 마.

- 그러지 않으면 검은 양복을 입은 양놈들이 대거 몰려올 것만 같았다.

스즈하 : 아, 응응. 알겠어. 이래뵈도 입은 무거우니까 맡겨만 둬.

- 스즈하는 싱긋 웃고는 자기 가슴팍을 탁 하고 쳤다. 브라운관 공방 가게 안은 조용했다. 예의 거대 브라운관은 켜져 있지 않았다. 미스터 브라운의 모습도 없다.

린타로 : 점장은 어디 갔지?

스즈하 : 방금 전에 네 TV 수리가 끝나고서 나갔어.

- 어차피 또 “예의 작은 동물”에 연관된 일이겠지. 그 점장은 가끔 영업 시간 중임에도 불구하고 모습을 감출 때가 있다. 어디에 가는 건지 몇 번 물어본 적이 있지만 “사랑하는 딸을 학교까지 데리러 간다”라든가 “사랑하는 딸이 감기에 걸려 간병하러 간다” 같은 식으로 득의양양하게 대답하곤 했다. 과보호가 너무 심한 수준이라고 본다. 딸 쪽은 내심 짜증날 거다. 랄까 일까지 빼먹고서 딸을 만나러 가다니, 이 얼마나 무책임한가. 가게를 비우는 경우에는 지금까지는 문에 “곧 돌아오겠습니다”라고 쓰여진 팻말을 달아 두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즈하가 가게를 보고 있었다.

스즈하 : 그런 관계로, 고친 TV는 이거야.

- 스즈하는 카운터에 놓인 TV 위쪽을 가볍게 두드렸다.

스즈하 : 비용은 1000엔이면 된대.

- 점장놈. 서비스 수준의 요금으로 빚을 지워 놓겠다는 건가. 담담하게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스즈하에게 건넸다. 미리 준비해 둔 듯한 영수증을 교환하듯 받았다.

스즈하 : 감사합니다. 그럼 가져가도록 해.

린타로 : 설마 혼자서 가지고 가라고?

스즈하 : 어? 그런 거 아냐? 가져왔을 때에도 혼자였잖아?

- 이 여자는, 계단을 올라갈 때하고 내려갈 때의 노력이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군. 중력에 거스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줄 모르는 거냐!

스즈하 : 도와줘도 상관은 없는데, 그런가. 이제 힘쓰는 일도 여자가 하는 시댄가―

- 의미심장한 소릴 중얼거리고 있다. 큭, 무척이나 찔리게 만드는 소리로군.

린타로 : 흥. 아무도 네 녀석에게 도와달라고 한 적 없다. 라기보다도, 네 녀석 같은 여자한테 도와달라고 하는 건 이 나의 프라이드가 용서치 않아.

스즈하 : 오오―

- 박수를 받았다.

스즈하 : 지금 이야기 참 남자다운걸. 반해버릴 것 같아.

린타로 : 훗, 속을 것 같나. 네 녀석, 거짓말을 하고 있군.

스즈하 : 엇?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린타로 : 그건 이 내가 가진 능력 중 하나… 『칼라링 젠틀맨(안색 살피기는 어른의 소양)』이 반응했기 때문이지.

스즈하 : 느, 능력?

- 이 능력은 상대의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다. 거짓말을 한 자는 그 몸이 붉게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상대는 죽는다. 스즈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곧바로 평정을 되찾고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스즈하 : 그건 초능력 같은 거야?

- 고개를 끄덕이자, 목소리를 죽이고서 귓속말을 걸어 왔다.

스즈하 : 저기 말야, 너 같은 능력자는 이외에도 많이 있어?

- …이 녀석의 일본어는 무척이나 기묘하게 들린다.

린타로 : 있을 리가 없지. 이 내가 스페셜한 거거든!

- 가슴을 활짝 펴고서 나란 인간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스즈하 : 그, 그런가. 별로 없는 거구나. 깜짝 놀랐어― 하지만 있다는 시점 자체로 대단해. 역시 SERN 때문에 퇴화한 걸까나…

- 뭔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혼자서 중얼거리더나, 이윽고 납득한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즈하 : 그치만, 전투가 벌어지면 상대의 거짓말을 간파하는 힘 같은 건 의미 없잖아? 역시 1000미터 급의 장거리 저격을 명중시킨다든가, 효율 좋게 상대의 관절을 꺾거나 하는 쪽이 중요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 이 녀석은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서바이벌 게임 오덕인가? 아니 기다려. 설마…!

린타로 : 이 자식… 넌 “기관”의 히트맨(암살자)이지? “미스 고르고”라는 코드네임으로 불리고 있겠지? 누구에게 고용된 거냐!?

스즈하 : 아니, 아무한테도 고용되어 있지 않아. 랄까 고르고가 뭐야?

- 은근슬쩍 웃음을 띄워서 그냥 넘어가려 하고 있다. 이렇게 표변하는 건 뭔가 수상하다. 그러고 보니 어제, 처음 만났을 때에도 꽤나 뒤숭숭한 소릴 했던 것 같다.

스즈하 : 그런데 말야, 네 능력에 다른 것도 있어?

린타로 : 있다고 하더라도 날 죽이러 온 히트맨에게 가르쳐 줄 것 같냐.

스즈하 : 널 죽이거나 하지 않는다니까.

린타로 : 자기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거지. 힘은 숨겨두는 것. 상대가 깨닫지 못하도록 써야 최대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거다.

스즈하 : 째째해.

린타로 :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

- 나하고 스즈하 사이에 스파크가 튀는 듯한 긴박함이 느껴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고, 거기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고 있었다.

린타로 : ……

- 그 때 메일이 와서 눈싸움은 중지되어, 나는 스즈하에 대한 경계심을 풀었다. 최근 메일 착신음을 들으면 기분이 처진다. 어차피 메일을 보낸 건 그 메일중독 지압사겠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큭, 점점 더 짜증이 치솟는다. 꽤나 많이 들러붙는 스토커다. 이런 이중인격녀에게 메일 주소를 가르쳐 주는 게 아니었어. 스즈하 쪽을 보자 카운터에 엎어져 있었다. 손으로 뭔가를 만지고 있었다. 핀 뱃지, 인가? 랄까 알바 2일째에 이렇게나 퍼져 있다니. 역시 브라운관이 좋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었군.

스즈하 : 뭔가 떫은 표정을 짓고 있네. 사망 통지라도 왔어?

린타로 : 하아?

스즈하 : …예, 예컨대 말야.

- 일반적으로 사망 통지라는 말을 예로 들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째서 그런 태연한 얼굴로 그런 예를 드는 거지. 랄까 사망 통지가 뭐야? 그런 게 있나?

스즈하 : 으음, 보기 싫은 통지라도 있는 걸까, 하고 물어보고 싶었던 거야.

린타로 : …비슷한 거야.

- 아무리 생각해도 이 여자는 언동이 불안정하다. 역시 경계는 풀지 않는 편이 좋겠군.

린타로 : IBN 5100이라는 구형 PC에 심각하게 집착하는 여자가 있어서 말야,

- 그렇게 말하자 스즈하는 쓱 하고 몸을 일으켰다.

스즈하 : IBN 5100…?

린타로 : 알고 있나?

스즈하 : 아, 응.

린타로 : 그런가. IBN 5100의 도시전설은 유명했나.

- 그런 구형 PC에 흥미를 가진 여성 오타쿠도 의외로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스즈하 : 그, 그래. 도시전설로 알았어. 넌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어?

린타로 : IBN 5100을 실제로 찾아다녀 봤지만 결국 아키바에는 없었다고 하는 정도는 알고 있지.

스즈하 : …그런가. 그거야 그렇겠지.

린타로 :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말투로군.

스즈하 : 어? 아니, 알고 있다고도 모르고 있다고도 하기 어렵다, 정돌까나. 난 잘 모르지만 아는 사람한테서 대충 들은 적 있는 정도로 말야. 아하, 아하하.

- 또 겉으로만 웃고 있었다. 이 여자는 실은 상당히 서투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겉으로 웃고 있을 때는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즈하 : ……

- 실제로도 스즈하는 거짓 웃음을 굳힌 채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린타로 : 네 놈의… 정체는―

스즈하 : 하아―아.

- 깊고도 깊은 한숨과 함께 스즈하는 또다시 카운터에 엎어져 버렸다. 그 자세 그대로 날 올려다 본다.

스즈하 : IBN 5100에 대해서 말야, 흥미 있을 만한 정보를 가르쳐 주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런 눈으로 쳐다보니까 가르쳐 줄 기분이 사라졌어.

린타로 : 애당초 난 IBN 5100 따위에 흥미가 없다.

- 오히려 지금은 SERN에 푹 빠져 있는 상태다. 아키바의 도시전설을 해결했다고 해서 세계의 지배 구조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으니까 말이지.

린타로 : 네 녀석을 신용할 요소는 하나도 없다. 그 재미있는 정보가 진실인지 어떤지도 모르지.

스즈하 : 우와― 그렇게까지 말하는 건 너무한데? 확실히 난 거동이 수상하긴 하지만. 그럼 말야, 가르쳐 주진 않겠지만 힌트는 줄게. 그렇게 해서 알 것 같지만 잘 모르겠다는 찝찝함에 실컷 괴로워하도록 해. 실은 IBN 5100에는 숨겨진 기능이 있어.

- 숨겨진 기능… 그러고 보니 내 기억에 남은 2000년의 존 티토도 그런 소릴 했던 것 같았다. 나는 희미해져 가는 내 기억 속을 뒤져봤다.

린타로 : 확실히, IBN 5100에는 독자적인 프로그래밍 언어가 어쨌든가 하는 소리였지.

스즈하 : 거짓말!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어떻게, 어떻게!?

- 대충 기억하고 있는 거긴 했지만 아무래도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싱긋 웃었다.

린타로 : 능력명 『사이즈 행(낫 걸기)』… 난 네 녀석의 마음을 읽을 수 있지.

스즈하 : 뭐야 그거, 반치익―!

- 스즈하는 어째서인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손가락하고 손가락 사이로 눈을 내밀고 이쪽은 열심히 보면서. 그런 짓을 해도, 이 나의 능력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그리고 상대는 죽는다.

린타로 : 모든 건 다 꿰뚫어 보았다, 아마네 스즈하. 이제 포기해라.

스즈하 : 크으, 어쨌든 IBN 5100에는 숨겨진 기능이 있어! APL이나 BASIC이 보급되기 전에 쓰여진, IBN의 독자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도 해독할 수 있다니 말야, 경악할만하다고 생각 안 해?

- 스즈하의 설명으로 간신히 나도 자세한 걸 떠올렸다. 확실히 티토는 그런 이야길 했었다. 그리고 티토의 예언 직후에 IBN의 기술자가 공식적으로 그런 기능이 있다는 걸 인정했다.

스즈하 : 지금은 IBN 5100으로밖에 해독할 수 없는 잃어버린 프로그램 언어가 있는 거라구.

- 티토가 1975년으로 타임트래벌을 한 목적은 그 기능을 입수하기 위해서였지. 모에카도 그 기능을 사용하고 싶어서 그렇게 필사적인 걸까.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 지압사는 IBN 5100에 어떤 기능이 탑재되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스즈하 : 그래서 IBN 5100은 엄청나게 레어한 PC야.

- 그렇게 말하며 스즈하는 손에 든 핀 뱃지로 시선을 떨궜다. 손 안에서 천천히 굴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게 버릇인 것 같았다. …IBN 5100이라. 입수하게 되면 비싸게 팔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연구 자금을 보충하기 위해선 찾아 본다는 선택지도 있겠다. 물론 지금은 SERN 쪽이 우선 사항이긴 하지만.

게임/슈타인즈_게이트/02장_1.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1/07/03 02:52 저자 LeD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