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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슈타인즈_게이트:02장_3

2장 : 공리 방황의 랑데뷰 (3)

- 계단을 달려 내려갔을 때, 마침 눈 앞에 자전거가 호쾌하게 옆으로 미끄러지며 정지했다.

스즈하 : 하아이, 오카베 린타로.

- 자전거에서 내리면서 스즈하가 인사를 해 왔다. 니가 무슨 양놈이냐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에 앞서서 이 녀석이 타고 있는 자전거에 시선이 갔다. 어제도 브라운관 공방 앞에 있었던 자전거다. 스즈하 것인 모양이었다. 얼마 정도 하는 걸까. 꽤나 비싸 보이는데.

린타로 : 꽤나 테크닉이 좋군.

스즈하 : 자전거는 정말 재미있는 것 같아. 난 자전거에 타는 건 여기 와서 처음인데 말야,

린타로 : 처음이라고!? 자전거가!?

스즈하 : 그래. 오토바이는 자주 탔지만 말야―

- 그거 보통 순서가 거꾸로 아냐? 이상한 여자다. 더군다나 방금 전에 스즈하가 멈춘 방법. 거리에서 그런 짓을 하는 건 상당히 위험한 것 같다. 초보자가 들떠서 하다가 사고를 일으키는 패턴이다. 적어도 그런 식으로 주행하려면 헬멧을 써야 하겠지.

린타로 : 지금부터 알바냐.

스즈하 : 응, 그래.

- 브라운관 공방의 셔터는 열려 있지만 이 가게는 항상 11시나 12시 무렵이 개점 시간이다. 정확한 시간은 모른다. 항상 점장의 기분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린타로 : 마침 잘 됐어. 너한테 할 이야기가 있다.

스즈하 : 에에―? 이제부터 개점 준비를 해야 하는데.

린타로 : 고물 브라운관 가게에 뭐가 준비할 게 있다고?

스즈하 : 없어, 정말로. 가게 앞을 약간씩 쓸어서 청소하는 정도야. 안은 청소하려고 하면 점장님이 화내거든. “이게 완벽한 배치라구”하면서.

- 청소하라고 화내는 건 그렇다 치고, 청소하지 말라고 화내다니. 역시 그 점장은 어딘가 이상하다.

린타로 : 그럼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스즈하 : 그치만, 졸립거든.

- 그러니까 이야기하는 게 귀찮단 건가. 난 스즈하를 째려봤다.

린타로 : 날 너무… 화나자 않게 하는 게 좋을걸.

스즈하 : 지금 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야?

- 째려봤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움츠러드는 기미조차 없었다. 난 그래도 험악한 표정을 유지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스즈하 : 그럼 해 봐.

- 스즈하는 어깨를 으쓱 하고서, 자전거에 열쇠를 채우고 이쪽으로 돌아섰다.

스즈하 : 단, 짧게 부탁해.

린타로 : IBN 5100은 어디에 있지?

스즈하 : …불명.

린타로 : 분명…? 뭐라고?

스즈하 : 불.명.

- 불명, 이라는 건 잘 모른다는 “불명(不明)” 말인가.

린타로 : 어제 네가 말하는 걸 봐선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스즈하 : 알고 있는 건 내 지인이라니까.

린타로 : 그러면 그 지인한테 안내해 주실까. 싫다는 소리는 못 한다. 거부하면 넌 산 채로 지옥을 보게 될 거다.

스즈하 : 무리.

- 산 채로 지옥을 보게 될 거라고 했는데!

스즈하 :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거든.

린타로 : 무슨 뜻이지? 설마 상상의 존재라든가―

스즈하 : 죽었으니까. 몇 년 전에.

린타로 : …… 미안.

스즈하 : 뭐, 그건 됐어. 뭐,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진 정보도 그렇게 대단치는 않아. 오히려 내 쪽이 가르쳐 줬으면 할 정도야.

- 스즈하는 거꾸로 내게 힘을 주듯 어깨를 탁탁 쳤다. 그 때 브라운관 공방의 문이 열리고 점장이 쓱 하고 얼굴을 내밀었다.

텐노지 : 어이 알바생. 아직 3일밖에 안 됐는데 지각하지 마!

스즈하 : 아, 점장님. 죄송해요. 아침부터 잠시 이야기가 있어서 말예요.

텐노지 : 성실하게 안 하면 언제라도 짜를 거다. 오카베도 우리 알바한테 손 대지 마.

린타로 : 욕정을 부리는 건 당신 쪽 아닙니까, 미스터 브라운.

텐노지 : 이 자식, 만일 나에가 있는 앞에서 그런 소릴 하기만 해 봐. 진짜로 죽여버릴 테니까. 아버지로서의 체통이 달렸으니까 말야. 애시당초 저런 젖비린내나는 애한테 욕정 같은 걸 부릴까보냐.

스즈하 : 무어라!? 점장님, 방금 그 말은 취소해요!

- 희한하게도 스즈하가 분노를 표출했다.

텐노지 : 뭐야, 화난 거냐?

스즈하 : 난 애가 아니에요! 제대로 된 전사라구요!

텐노지 : 하아? 너, 무슨 소릴 하는 거냐?

- 점장은 질린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스즈하의 강한 의지에 감명을 받았다. 무심결에 스즈하의 손을 잡고, 꽉 하고 쥐었다.

린타로 : 좋은 눈을 하고 있구나, 알바 전사. 현대인에겐 없는, 야수와도 같은 번뜩이는 빛이 있어. 그 눈을 잊지 마라. 그러면 넌 반드시 알바 전사에서부터 진정한 전사로 클래스 체인지를 할 수 있을 거야.

스즈하 : 그게 아니라, 난 이미 전사라니까.

린타로 : SERN하고의 라그나로크(최종결전)를 벌일 때는 함께 싸우자. 그 때까지 열심히 노력하도록.

스즈하 : 라그나로크?

- 스즈하는 거기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즈하 : 뭐야 그건?

린타로 : SERN하고의 최종 결전이다.

스즈하 : 그런 게 일어날 예정이 있어? 있다면 꼭 참가하겠지만 들은 적도 없는데.

린타로 : 당연하지. 지금 처음으로 밝힌 거니까. 라그나로크는 내가 일으킬 거다. 세계를 바꿔 만들기 위해서 말야!

스즈하 : 오오― 오카베 린타로는 참 용기 있는걸. 어차피 실패하겠지만, 그 마음가짐은 좋아. 내 동료도 너 정도로 기개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말야.

- 아무래도 스즈하에겐 동료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꼭 소개해 주었으면 하는데 말이지. 호오인 쿄마 직속의 대군단 『피닉스 크루세이더즈(봉황십자군)』를 만들기 위해서 말야. 랄까, 잠깐 기다려. 어째서 내 라그나로크가 실패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야기하는 거지. 스즈하한테는 나의 두려움을 확실하게 가르쳐 둘 필요가 있겠군.

텐노지 : 어째서 우리 가게 주변엔 이상한 녀석들만 모여드는 거냐구, 정말이지. 어이 알바생, 됐으니까 빨랑 가게로 들어가.

스즈하 : 예―이. 그럼, 오카베 린타로!

- 스즈하는 내게 한 손을 들어 올리며 윙크하고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마유리 : 오카린, 잠깐만 기다려―

- 하고 스즈하하고 교대하듯 마유리가 계단을 내려왔다.

린타로 : 역시 함께 찾기로 한 거냐, 좋은 랩멤버 정신이다.

마유리 : 아, 으응, 아냐― 점심을 사 올까 해서 말야.

린타로 : ……

- 정말로 잘 먹는 녀석이다. 아직 12시도 되지 않았는데 말야.

린타로 : 그래서 어디서 살 셈이지?

마유리 : 으음, 어떻게 할까나―

- 걸어가면서 입술 아래에 손가락을 대고, 마유리는 생각에 잠겼다.

마유리 : 『삼보』의 규동도 좋겠어―

- 이 작은 몸집의 여고생은 혼자서 『삼보』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강자인 것이다. 좋은 의미로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녀석이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가게에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게 될 정도로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규동 가게 『삼보』. 찐한 남성 손님으로 가득 차 있는 가게 안에서, 마유리는 다른 손님하고 마주보고 앉게 되더라도 방긋방긋 웃으면서 규동을 먹는다. 인터넷 상의 삼비스트―『삼보』를 사랑하는 단골 손님의 속칭― 들 사이에선 마유리가 『삼보』에 나타나면 “여신 강림!” “여신 떴다―!” 같은 글이 이어진다고 하는 소문도 있다.

린타로 : 하지만 『삼보』는 이 시간엔 아직 안 열었을 텐데―

- 그렇게 충고했는데, 옆에서 걷고 있을 터인 마유리의 모습이 없다. 사라져 버렸다. 마유리는 가끔 이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유리가 정말로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어서 깜짝 놀라곤 한다.

- 주위를 둘러보자, 조금 떨어진 데에서 마유리가 가만히 서 있었다. 빌딩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다. ―또 시작됐다. 거리 한복판에 가만히 서 있기 때문에 다른 보행자는 무슨 일인가 하고 마유리를 곁눈질하면서 지나간다. 그런 시선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마유리는 매료된 것인 양 천천히 오른손을 하늘로 뻗친다.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있다. 이건 마유리의 버릇이다. 나는 내 멋대로 “스타더스트 셰이크핸드(별똥별하고의 악수)“라고 부르고 있다. 옛날부터 마유리는 밤하늘을 쳐다보는 게 좋다고 했었다. 손을 뻗치는 이유는, 로맨티스트처럼 되고 싶다고 하는 어린애스러운 이유다.

마유리 : 별에, 닿지 않을까나― 해서 말야.

- 전에 내가 물어봤을 때는 수줍어하며 그렇게 대답했다. 처음에는 밤하늘만을 보고서 그러곤 했지만 최근에 와선 장소나 시간을 가리지 않고 저러게 되었다. 지금도 그렇듯 다른 사람하고 같이 걸어가고 있을 때나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갑자기 그 스위치가 켜진다. 확실히 말해 전파적이다.

린타로 : 별 같은 건 안 보이잖아.

- 다가가서 그렇게 말을 걸자, 멍한 표정에 웃음을 띄우며 그제야 마유리는 손을 내렸다.

마유리 : 저기 말야, 낮에도 별님은 저기에 있어―

린타로 : 철학적인 이야길 하는 건 상관없지만 길 한복판에 멈춰서는 건 위험하잖아.

마유리 : 에헤헤― 그렇네― 그래 맞아, 지금 하늘을 보고 생각했는데 말야, 마유시―는 오늘 점심은 라면으로 하겠어요.

- 라면하고 별에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인가, 그건 마유리밖에 모르는 것이어서 나는 깊게 따지는 걸 포기했다.

- IBN 5100을 찾는다곤 했지만 단서는 제로다. 1시간 정도 PC방에서 정보를 찾아봤지만 수확은 없었다. 요도바시 안에 있는 쥬스 가판대에서 산 타피오카가 들어간 망고 쥬스를 마시면서 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토요일이고 해서 역 앞은 혼잡해지기 시작했다. 몇 사람의 메이드가 역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람들에게 광고물을 돌리고 있다. 통이 이상으로 구형 PC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이 누가 없을까나. 그러고 보니 그 샤이닝 핑거(섬광의 지압사)가 IBN 5100에 집착하고 있었지. 그 메일광에게 연락하는 건 그다지 기분이 동하진 않는데… 성전의 승패가 걸려 있는 일이니, 좋고 싫고 할 때가 아니라는 건 알고는 있지만. 결국 연락하지 않고, 나는 망고 쥬스를 다 먹어치웠다. 별 생각 없이 중앙 거리로 향했다.

- 그 때 마치 타이밍을 맞추듯 메일이 왔다. 설마… 메일광인가?

- 받은 메일
날짜 7/31 12:26
from 섬광의 지압사
sub 살아 있어~?

부탁이니 연락 좀 해여―(-_-x)

- 큭, 이 자식은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만 같군. 걸어가면서 무심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말았다. 그 음침한 얼굴이 가까이 있지 않는가 하고 찾아봤지만 역시나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답변을 줄까. 지압사의 핸드폰 번호는 모르니까, 우선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 보내는 메일
To 섬광의 지압사
sub 전화 부탁

080-X094-X626

- 『전화 부탁』이라고 쳐 넣고서 함께 내 전화번호도 넣고, 보낸다. 이제 저쪽에서 연락이 오길 기다리자. 그러자 곧바로 답변이 왔다. 정말 엄청난 속도의 답변이다. 하지만 전화를 달라고 했는데 어째서 메일로 답변하지?

- 받은 편지함
날짜 7/31 12:29
from 섬광의 지압사
sub Re:전화 부탁

드뎌 연락 왔네― 전화는 별로니까 메일로 대화해 줬음 해.

- 메일로, 라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어째서 그렇게 귀찮은 방법을 취해야 하는 거지. 어떻게든 전화번호를 알아내 주겠다.

- 보내는 메일
To 섬광의 지압사
sub Re:Re:전화 부탁

전화번호를 가르쳐 다오. 그리고 IBN 5100에 대해 그쪽의 정보를 원한다.

- 『전화번호를 가르쳐 다오. 그리고 IBN 5100에 대해 그쪽의 정보를 원한다』. 이걸로 보내자. 메일을 끝낸 후에 고개를 들자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다. 변함없이 라디오 회관 앞엔 엄청나구나… 매스컴 숫자도 추락한 날에 비해 거의 줄지 않았다. 라디오 회관은 오늘도 휴업 중이다. 당연히 인공위성은 지금도 거기 있었다. 답장은 30초도 지나지 않아서 왔다. 메일을 보고자 시선을 떨궜을 때, 낯익은 얼굴하고 눈이 마주쳤다.

크리스 : 아,

린타로 : 조수인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크리스 : 이봐, 내가 언제 조수가 됐어.

- 지금 당장에라도 물어뜯을 것 같은 기세여서, 난 그 기세를 꺾기 위해 메일을 확인했다.

- 받은 편지함
날짜 7/31 12:32
from 섬광의 지압사
sub Re:Re:Re:전화 부탁

이쪽 정보는 거의 없어. 그쪽은?

- 이 년이…!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한 걸 무시하다니! 더군다나 정보도 없다니! 쓸모 없는 것도 정도가 있지!

크리스 : …어째서 당신이 날 째려보는 거지?

린타로 : 신경 쓰지 마. 열받아 있는 건 네가 원인이 아니다.

크리스 : 괜히 화풀이하는 거네, 째려보지 마.

린타로 : 너도 예전에 날 몇 번이나 노려봤잖아.

크리스 : 그건 당신이 BYONTAI 행위를― 아, 아니, 아무 말도 필요없어.

- 이런, 또 왔다…

- 받은 메일
날짜 7/31 12:33
from 섬광의 지압사
sub Re:Re:Re:전화 부탁2

슈퍼 하커의 연락처를 가르쳐 줘♪

- 곧바로 핸드폰을 꺾어서 지면에 패대기치고 싶어졌다. 뭐가 “가르쳐 줘♪”냐! “♪”라니, 날 바보 취급 하는 거냐! 이 구걸쟁이 여자가! 그것보다도 어째서 이렇게 짧은 메일은 2통 연속으로 보내는 거냐. 보낼 거라면 한 통으로 묶어서 보내면 되잖아.

크리스 : 그렇게 싫은 메일이 온 거야?

린타로 : 싫다기보다도, 상식 밖의 메일이야.

- 뭐라도 한 소리 하지 않으면 기분이 안 풀릴 것 같았다.

- 보내는 메일
To 섬광의 지압사
sub Re:Re:Re:Re:전화 부탁2

잘게 잘라 메일을 보내는 건 관둬라. 부탁이니 하고 싶은 말은 한데 모아서 보내 줘!

- 『잘게 잘라 메일을 보내는 건 관둬라. 부탁이니 하고 싶은 말은 한데 모아서 보내 줘!』 그런 메일을 보낸 걸로 나는 조금 만족했다. 다시 크리스를 쳐다본다.

린타로 : 그래서 크리스티나, 여기서 뭘 하고 있지?

크리스 : 적어도 이름 정도는 통일해 줬으면 하는데. …내가 뭘 하든 간에 상관없는 일이잖아.

린타로 : 뭐야? 뭘 그렇게 삐져 있나.

크리스 : 삐지지 않았어. 단지 할 수 있는 한 당신하곤 이제 관련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야.

린타로 : 무슨 바보 같은 소릴. 넌 이미 랩멤버다. 랩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만 하지.

- 기간이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아니, 기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천재 소녀의 지식을 1분 1초라도 많이 랩에 부어 넣어야만 하는 것이다.

크리스 : …호기심에 져 버린 그 때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

- 크리스는 다시 한숨을 쉬고서 머리 위의 인공위성을 올려다 봤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여기에 멈춰서서 올려다보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아키바의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되어가고 있군.

린타로 : 인공위성을 보러 온 건가?

크리스 : …뭐어 그래. 믿을 수 있어? 인공위성은 일반적으로 대기권에서 모두 타 없어지도록 궤도 계산을 해서 떨어뜨리는데, 저렇게까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는 걸 말야.

- 더군다나 빌딩에 충돌해서 크게 구멍을 뚫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게 또… 인공위성이란 건 그 정도로 튼튼한 거던가. 어떤 느낌이냐면 좀 더 튼튼하지 않은 느낌인데 말이지.

린타로 : 애당초 저건 어디 인공위성이지?

크리스 : 아직 모른대. 구 소련 게 아닐까 하는 소문이 있지만 러시아는 부정하고 있어. 그것 때문에 철거하려고 해도 그렇게 못 하는 모양이야.

- 3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불명이라니, 재미있군. 음모의 스멜이 난다.

린타로 : 그런가, 저것도 “기관”이 보낸 거야…! 그 때 라디오 회관에 있던 날 말살하기 위해서!

크리스 : “기관”? 뭐야 그게?

린타로 : “기관”은 “기관”이지. 정식 명칭은 따로 있지만 그 조냊를 아는 자는 모두 경외와 공포의 감정을 담아 “기관”이라 부르지. 세계를 그림자에서 조종하고, 국가를 초월한 비밀 기관이며 정치, 경제, 종교,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지.

크리스 : 어떻게 봐도 음모론입니다. 정말로 감사― ……윽.

- 어째서인지 크리스는 얼굴을 붉히고 움츠러들었다.

린타로 : 무슨 일이지?

크리스 : 아, 아무 것도 아냐.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니라니까. 더 이상 추궁하면 때리겠어.

- 이상한 여자다.

크리스 : 그, 그것보다 예의 전화렌지는 어떻게 됐어!?

린타로 : 뭘 그렇게 흥분하는 거냐. 참고로 전화렌지가 아니라, 전화렌지(가칭)고―

크리스 : 됐으니까 대답해. 어떻게 됐어?

린타로 : …진전은 없다. 실험을 반복해 봤지만 아직까지 그 방전 현상 및 과거로 거슬러가는 메일은 한 번도 재현하지 못했어.

크리스 : 그래…

- 또 메일이다. 지압사 놈, 그렇게나 잘게 잘라서 메일을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거냐. 메일광의 장단에 맞춰 줄 순 없지. 메일은 나중에 확인해 보자.

크리스 : 잘난 척 하긴 해도 최저한의 매너는 있는 모양이네.

린타로 : 무슨 소리지?

크리스 : 다른 사람하고 이야기할 때 핸드폰 만지는 사람, 난 싫어해.

린타로 : 그런가, 그래서 넌 처음 만났을 때 나한테서 억지로 핸드폰을 빼앗은 거로군.

크리스 : 처음 만났을 때? 그런 짓은 안 했어.

린타로 : 했잖아. 내가 정시 보고를 하려고 할 때, 넌 내 손에서―

- 빼앗아 갔다, 하고 계속하려다가 난 입을 다물었다. 라디오 회관에서 있었던 일. 그 때 이야기를 하면 통이하고 마유리, 그리고 크리스하고도 대화의 아귀가 맞지 않게 된다. 역시 그건 꿈이나 환상이었던 건가…?

크리스 : 뭐야? 정시 보고라는 게 무슨 소리지?

린타로 : 아니. 아무 것도 아냐. 그래서, 전화렌지(가칭)에 대한 이야기였지. 너는 그 실험 후에 “타임머신 같은 건 거짓말이야” 같은 비통한 소리를 질렀지. 과거의 트라우마라도 떠올린 거냐.

크리스 : 어이 이봐, 멋대로 나한테 트라우마 설정을 붙이지 마.

린타로 : 그래, 그건 아직 5살이었을 때. 크리스티나는 아칸소 주의 초원에서 번개에―

크리스 : 맞은 적 없어! 5살 때엔 아직 일본에 있었다구. 랄까 어째서 아칸소야.

린타로 : 한가로운 풍경을 떠올렸을 때 맨 처음 떠오른 주 이름이 아칸소였고, 그 다음으로 떠오른 게 오레곤이여서지.

크리스 : 그건 유타 아니겠어? 상대적으로 봐서도 유타 쪽이 더 “그럴싸”하지 않아?

린타로 : 그럼 대답해 봐라, 크리스티나! 어째서 그 때 “거짓말”이라고 했지!?

크리스 : …그다지 확신이 있어서 그렇게 말한건 아냐. 단지 믿고 싶지 않았던 거야. 사이비 과학은 소설이나 영화 속만으로 충분해.

린타로 : 사이비 과학이라고? 바보 같은 소릴. 너도 확실히 봤을 텐데, 메일이 과거로 거슬러 간 그 현상을! 바나나가 순간이동을 한 그 순간을!

크리스 : …봤긴 하지만 뭔가 착각한 걸 거야. 아니면 우리가 멋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뿐이거나. ATF에서 이야기 안 했어? 타임머신은 지금 기술론 몽상이나 마찬가지야. 더군다나 당신들 같은 반쯤 장난인 동호회에서 전화하고 전자렌지를 붙인 잡동사니를 가지고 타임트래벌을 일으킬 수 있을 리 없어.

린타로 : 하지만 실제론 일어났지. 넌 자기 자신의 눈으로 본 걸 부정하는 거냐? 현실보다 이론이 올바르다고 하는 거냐? 그렇다면 평생 동안 궤변이나 늘어놓으며 말장난이나 해라.

크리스 : 말장난이라는 게 무슨 소리야?

린타로 : 양자론 따윈 내가 보기엔 말장난으로밖에 안 보인단 거지.

크리스 : …잠깐, 당신 말야, 현대 물리학을 부정할 생각이야? 그렇게 잘났어?

린타로 : 현상에 대해 솔직해져라. 일어난 것이 모든 것이며 일어나지 않은 것, 관측되지 않은 것은 모두 가설일 수밖에 없다.

크리스 : 가설을 축적해서 이론이 증명되면 그건 진짜가 돼. 그렇게 해서 현대 물리학은 우주 모든 것의 진실을 이해하고 있어.

린타로 : 하지만 가설이 잘못되었을 경우도 있어. 그 아인슈타인조차 틀린 적이 있지.

크리스 : 잘못되었을지도 모르니까 안 하겠단 거야? 그렇다면 넌 평생 동안 그 지저분한 빌딩에 처박혀서 임금님 행세라도 하고 있어. 그런 걸론 진실에 절대로 도달할 수 없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야.

린타로 : 옳거니, 좋은 반론이로군.

크리스 : …그렇게 남을 깔아보기만 하네.

린타로 : 그런데 크리스티나여, 난 항상 느끼고 있었다. 물리학자에게는 모순이 있다고.

크리스 : …모순?

린타로 : 현실에 일어나서,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직도 해명되지 않고, 물리학자도 손대려 하지 않는 현상이라는 건 확실히 존재하지. 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지?

크리스 : 예를 들어 주지 않으면 모르겠어.

린타로 : 예를 들어 유령.

크리스 : 오컬트인 거야…

린타로 : 오컬트라고 해서 사고 정지냐? 그건 네가 방금 말했던 거하곤 모순되지. “그런 걸론 진실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다”.

크리스 : 윽…

린타로 : 유령을 본 인간은 확실히 존재하지. 영상으로도 증거가 존재하고 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다른 가설 다른 가설 하면서 뱅뱅 돌리기만 하고 있는 거냐?

크리스 : …전공이 아니니까.

린타로 : 해명되어 있지 않은 현상에 대해 전공이고 뭐고 없지.

크리스 : …그렇긴 하지만.

린타로 : 그런 거기 때문에 과거로 메일을 보내는 현상도 제대로 검증해야 해. 조수도 도와주도록.

크리스 : 싫어.

- 크리스는 딱 잘라서 그렇게 대답했다. 거기다가 째려보기까지 하고 있다. 역시 나는 이 천재 소녀에게 원한을 산 걸까나.

크리스 : 나는 사이비 과학에 손대지 않아. 아빠하고 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을 거야.

린타로 : 아버지…?

크리스 : 당신 생각은 말로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학회에선 통하지 않아. 타임트래벌 이론을 연구하고 있다고 하는 날엔 인생이 쫑날 거야.

린타로 : 어째서 그렇게 잘라 말하지.

크리스 : 우리 아빠가 그랬어.

- 크리스는 꽉 하고 이를 악물었다.

크리스 : 물리학자인 아빠는 타임머신을 정말 좋아했어. 웰즈의 『타임머신』에 매료되어 진심으로 연구를 했어. 하지만 거기에 너무나 집착한 나머지 학회에서 추방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어. 그런 아빠를 봐 왔기 때문에 나는 타임트래벌 연구에 연관되고 싶지 않아…!

- 너무나 박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엔 내가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으음, 정말로 화나게 해 버린 걸까. 무심결에 지뢰를 밟아 버린 느낌이다. 어쩌지, 더 이상 화나게 하면 찔릴지도 몰라. 조금 분위기를 풀자. 그러자. 으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나…

크리스 : …미안, 감정적이 되어서.

- 저쪽이 먼저 사과했다. 크리스티나가 냉정한 성격이라 다행이다.

린타로 : 후하하하! 신경 쓰지 마라! 지금 건 네 자질을 시험하기 위해서 일부러 화나게 한 거니까 말이지!

크리스 : …… …어쨌든 전화렌지는 타임머신 따위가 아냐. 메일 송수신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시스템이니까 그 시스템의 범위 안에서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거야.

린타로 : …조수의 생각은 잘 알았다. 그렇게까지 타임머신을 싫어할 줄이야. 네 반응은 알레르기에 가깝군.

크리스 : ……

린타로 : 억지로 랩멤버로 집어넣으려 해서 많이 곤란했겠지. 이제 두 번 다시 오지 않아도 된다.

크리스 : …그런 소리 안 해도, 안 가.

린타로 : 하지만 이것만은 말해 두지, 크리스티나여.

크리스 : 크리스티나라고 하지 마.

린타로 : 랩멤버 넘버 004는, 영구 결번으로 해 두지. 이 번호는… 쭉 네 것이다.

- 멋진 대사를 남기고 나는 크리스에게 등을 돌렸다.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천천히 걸어간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다른 사람하고 부딪치지 않을까 불안했다. 랄까, 애당초 난 똑바로 걷고 있기나 한 건가?

크리스 : 뭘 그렇게 폼 잡는 거야.

- 갑자기 어깨가 등 뒤에서부터 잡아 끌렸다. 뒤로 넘어질 뻔 한 것을 간신히 버텼다.

린타로 : 무슨 짓이야! 내 자그마한 연출― 뒤끝 없는 작별 씬을 헛되이 하다니, 네놈은 그러고도 내 조수냐!

크리스 : 그러니까 조수가 아니라고 했잖아! 난 아직 할 이야기가 있다구!

- 젠장, 순식간에 여느 때의 억센 조수로 돌아오다니…!

크리스 : 지난 번엔 못 들었는데, 내가 찔렸다는 식으로 당신이 이야기했었지? 거기에 대한 설명을 요청하겠어.

- 그래, 그것 또한 “현실에 일어났지만 해명하지 못한 현상” 중 하나다.

린타로 : 그건 내가 본 환상이야.

- 지금은 그런 걸로 해 두자.

크리스 : 어째서 당신 꿈에 내가 나오는 건데?

린타로 : 그런 건 몰라. 그리고 꿈이 아니라 환상이야.

크리스 : 닥터 나카바치가 어쨌다느니 했는데, 그건?

린타로 : 그 날, 라디오 회관에서 닥터 나카바치가 타임머신 발표회를 했어.

크리스 : 발표회는 중지되었어. 인공위성이 떨어져서.

린타로 : 그런 식으로 되어 있는 모양이더군. 하지만 내가 본 환상에서는 무사히 개최되었어. 난 그걸 마유리하고 같이 보러 갔고, 거기서 네가 말을 걸었지.

크리스 : 난 헌팅 같은 건 안 해. 더군다나 당신 같은 바보한테 말을 걸 리가 없어.

린타로 : 그러니까 환상이라고 했잖아. 아니, 아니면… 환상인 건 이쪽 세계일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전화렌지(가칭)의 수수께끼도 해결되지. 환상이라면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을 테니까.

크리스 : 현실 도피? 의외로 겁쟁이네.

린타로 : 가설을 제시한 거다. 물리학자가 흔히 하는 식으로.

크리스 : 그래서 난 누구한테 찔린 건데? 혹시 당신한테?

- 그 때 피로 된 웅덩이 속에 쓰러져 있던 크리스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서, 난 움찔했다. 그건 정말로 환상이었던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나 리얼했다. 피 냄새조차 확실히 떠올릴 수 있었다.

린타로 : 내가 달려갔을 땐 이미 넌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어. 범인은 보지 못했고.

크리스 : 알 수가 없네. 어째서 내가 환상이라곤 해도 살해당해야 하는 건데. …원한이라도 있어?

린타로 : 전혀 없지. 그 시점에서 나하고 넌 딱 한 번 이야기를 한 적 있는 정도인, 그냥 지나치는 수준의 타인이었으니까.

- 아니, 딱 한 번 이야기했다, 라는 것도 환상 속에서 생긴 일이니까 엄밀히 말하면 그 시점에서는 마키세 크리스라는 인간에 대한 정보는 잡지에서 얻은 것뿐이었다.

린타로 : 어쨌든 접점 같은 건 거의 없었어. 때문에 난 네 시체를 본 후에 119에 전화하지도 않고 그 자리를 떠났지.

크리스 : 인정머리 없긴.

린타로 : 뭘 바라는 거지? 과거로 돌아가서 네 시체를 정중히 다루어 달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화렌지(가칭)를 쓸 수 있게 해야겠군.

- 환상 속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라는 문제도 해결해야만 하겠지만.

크리스 : …이제 됐어. 앞으론 그런 환상은 보지 말길 바래. 다른 사람의 꿈 속이라곤 해도 자신이 살해당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안 좋거든.

린타로 : 보증할 순 없군. 그걸 실행하기 위해선 24시간 동안 완벽하게 내 뇌 속을 감시해야만 할 테니까.

크리스 : 정말로 당신은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대꾸하는 사람이네.

- 크리스는 질린 양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서 역 쪽을 향해 걸어갔다. 아무래도 여기서 이야기는 끝이라는 모양이었다. 나는 좀 전에 당했던 걸 되갚고자 크리스의 가는 어깨를 뒤에서 붙잡았다.

크리스 : 꺗, 뭐, 뭐야―!?

린타로 : 내 이야긴 아직 안 끝났어.

크리스 : 싸움 거는 거지?

린타로 : 작별 씬을 망친데 대한 보답이다, 크리스티나!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탓하시지.

크리스 : 예이, 예이, 알겠습니다. 그래서, 뭐야?

린타로 : IBN 5100 건이다.

크리스 : 건이다, 라고 해도 몰라. 그게 뭔데?

린타로 : …아니, 모른다면 됐다. 작별이다.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

- 이번에야말로 난 크리스한테서 등을 돌리고―

크리스 : 이야기를 시작하고서 갑자기 관두지 마. 기분 나쁘잖아.

- 두 팔을 붙잡혔다. 이런 여자를 봤나,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크리스 : IBN 오천… 뭐라고?

린타로 : IBN 5100. 1975년에 발매된 구형 PC다. 지금 찾고 있지.

크리스 : 흐음. 어디에 쓸 생각인데?

-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았다. 랩에 왔을 때도 그랬지만 이 여자는 상당히 호기심이 왕성한 것 같았다.

린타로 : 신경 쓰이나?

크리스 : ……

- 크리스는 휙 하고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내 두 팔을 잡은 손을 놓으려 하진 않는다.

린타로 : 신경 쓰이는 모양이로군?

크리스 : …약간이지만.

린타로 : 그럼 대답해 주지. IBN 5100은 SERN의 비밀에 이어져 있다.

크리스 : SERN이라니… 그 SERN?

린타로 : 그렇다. 그리고 우리 랩에서 총력을 기울여 조사한 것에 따르면 SERN은 타임트래벌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는 흔적이 있다.

- 자아, 놀라도록 해라.

크리스 : …바보같아. 들은 내가 바보였어.

- 크리스는 차가운 눈초리로 날 한 번 쳐다보고선 이번에야말로 손을 떼고 혼자서 걸어가 버렸다. 이, 자, 시이익! 두고 봐라. 내가 반드시 SERN의 음모를 폭로해 주겠다!

- 다음날. 나는 부품 가게를 둘러보기로 했다. 어제는 크리스하고 헤어진 뒤에도 날이 저물 때까지 아키바 안의 가게를 찾아다녔지만 아무 수확도 없었다. IBN 5100을 입수하는 건 상당히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들어, 벌써부터 축 처져 있는 상태였다.

린타로 : 으으음…

- 라디오 센터의 좁은 통로. 그 좌우로 늘어서 있는 이런 저런 소규모의 부품 가게. 여기는 오래되고도 훌륭한 전자 상가라는 아키바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말하자면 아키바의 양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장소다. 애니메이션이나 대형 가전을 좋아하는 라이트한 오타쿠는 여기에 함부로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그야말로 매니아만이 발을 들여놓는 성지인 것이다. 참고로, 실은 나도 컴퓨터 부품에 대해서 그다지 잘 모르긴 하지만… 더군다나 부품 가게에선 부품밖에 안 팔기 때문에 커다란 구형 PC 같은 걸 놔두고 있을 리가 없다. 그걸 고려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그래서 방금 전부터 가게 앞에 진열된 부품을 살피면서도 내심 쫄아 있었다. 가게 주인 아저씨가 “이 어린 녀석이! 10년은 이르다!” 같은 소리를 지르게 되면 물러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아직 주인 아저씨도 내게 소리를 지를 것 같진 않았고, 거의 완전히 무시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볼 거면 맘대로 보고 가라, 정도 되는 통 큰 느낌을 받긴 하지만, 그냥 귀찮아하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 전화 소리에 가게 주인 아저씨가 흘낏하고 날 본다. 얼떨결에 웃음을 지으면서도, 내심 당황하고 말았다.

- 후우, 깜짝이야… 이래서야 오늘은 더 이상 부품 가게에 돌격할 순 없겠군. 한숨을 쉬며 주위를 살폈을 때, 묘한 사람을 발견했다. 여자가 한 사람 무릎을 끌어안은 듯한 자세로 주저앉아 있다. 손에 든 건 화려한 보라색 핸드폰. 그 화면을 계속 들여다보는 채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탓에 그 모습은 더욱 눈에 띄었다. 더군다나 잘 보니 본 적 있는 옆얼굴이었다.

린타로 : 샤이닝 핑거(섬광의 지압사)!

- 불러 봤지만 반응이 없다. “섬광의 지압사”는 내가 멋대로 붙인 이름이니까 저쪽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거겠군. 으음, 이 여자의 이름… 이름은… 모에… 모엣코? 아니… 으음…

린타로 : 지압사!

- 결국 여자의 눈 앞으로 갈 때까지 그 여자는 이쪽을 눈치 채지 못했다. 랄까, 눈 앞에서 부르는데도 지압사는 고개를 들려고도 하지 않는다. 손가락은 끊임없이 핸드폰 버튼을 조작하고 있으니, 의식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건 그렇다 쳐도 죽은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고, 눈동자에도 생기가 없어 보인다. 이렇게 더운데도 불구하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지만 그게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린타로 : 안 들리는 건가?

모에카 : …누구?

린타로 : 호오인 쿄마. 매드 사이언티스트다.

- 여자는 한 순간만 나를 봤다. 하지만 그건 진짜 한 순간일 뿐이었다.

모에카 : …누구, 였더라?

린타로 : 이 자식, 사람 얼굴도 못 외우는 거냐.

- 나도 지압사의 이름을 못 외우니 남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린타로 : IBN 5100을 찾는다는 협력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꼴이라니.

- IBN 5100이라는 단어에 지압사는 끔뻑 반응했다. 그래도 고개는 들려 하지 않았다.

모에카 : 오카베군…

린타로 : 난 호오인이다.

모에카 : ……

- 무시하는 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호오인 쿄마라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건가.

모에카 : 메일… 보냈어.

린타로 : 메일?

- 확실히 지금 메일을 받은 것 같긴 한데.

- 받은 편지함
날짜 8/1 14:25
from 섬광의 지압사
sub

안녕, 오카베군. 이런 데서 만나다니 별난 우연도 다 있네♪ 모에카

린타로 : …윽.

- 돌아버릴 것 같았다. 이런 걸 지금 메일로 이야기해야 하는 건가? 말로 하면 5초만에 끝나는 이야기 아닌가? 메일은 꽤나 애교를 떨고 있지만 눈 앞에 있는 지압사는 무뚝뚝 그 자체다. 웃지도 않으면서 “우연도 다 있네♪” 같은 글을 쓰는 걸 보면, 실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메일을 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들 정도다.

린타로 : 그야말로 우연이로군. 너도 부품 가게를 찾아다니고 있는 건가.

모에카 : ……

- 물어봐도 지압사는 역시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또 메일이 왔다.

- 받은 편지함
날짜 8/1 14:26
from 섬광의 지압사
sub

응, 그래. 하지만 못 찾겠더라구.

린타로 : 네 녀석은 말 한 마디 못 하는 거냐?

모에카 : …귀찮아.

린타로 : 메일을 쳐 넣는 게 훨씬 귀찮은 일이잖아!

모에카 : ……

- 내가 소리를 지르자 지압사는 점점 더 풀이 죽은 것 같았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자세가 되어 버렸다. 랄까 잘 보니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군. 그렇게 앉아 있으면 안이 훤히 보인다구. 이쪽은 전혀 곤란한 게 없지만. 나는 한숨을 쉬고서 아무 말 않고 그 자릴 떠났다. 근처에 있는 자판기에서 맥스 커피를 2개 샀다.

- 일일이 메일을 보내는구먼 정말…

- 받은 편지함
날짜 8/1 14:28
from 섬광의 지압사
sub 화났어?

미안, 사과할 테니까 돌아와. 모에카

- 화났다기보다도 질린 거다. 그리고 이쪽 역시 별 기대는 안 하고 있지만 지압사한테서 IBN 5100의 정보를 입수해야 하기 때문에 그냥 갈 생각은 없다. 그러고 보니 저 여자, 모에카란 이름이었지. 메일을 보고서 간신히 떠올렸다. 맥스 커피 캔을 2개 들고서 모에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모에카 : 아, 오카베군…

- 지압사는 일어서 있었다. 나를 흘낏 보고서 다행인 듯 한숨을 쉬었다.

린타로 : 마실 거냐?

- 맥스 커피를 내밀자 지압사는 머뭇거리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손이 닿지는 않았다. 나는 적절하게 차가운 캔 뚜껑을 따고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 달달함을 가끔은 맛보고 싶어지곤 한다.

린타로 : 어째서 말을 하지 않지?

모에카 : 메일 쪽이, 마음… 편하니까.

- 그런 건가. 아니면 이 여자는 대인공포증이라도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서 나는 곧바로 내 생각이 얕았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린타로 : 그런가, 그런 건가…!

- 즉, 지압사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 나, 광기의 매드 사이언티스트 호오인 쿄마의 사악한 아우라를!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이 태도도 납득이 간다. 오히려 내가 미안해지는군. 불쌍하게시리. 이 나의 앞에선 어떤 상대라 하더라도 위압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모에카 : 나… 이상, 하지…

린타로 : 아니, 일반적이다.

모에카 : 그래…?

- 나에 대한 경외의 감정은, 아무리 정신을 단련한다 하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지!

린타로 : 넌 아무 것도 부끄러워 할 필요 없다. 이 세상에는 절대 불변의 진리라는 것이 존재한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노력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벽이 말이지. 때문에 사람들은 타협하고, 포기하고, 그 때마다 다른 길을 찾는다. 하지만 이것만은 잊지 마라. 자기 마음 속에, 자신만의 슈타인즈 게이트를 가져라.

모에카 : 슈타인즈 게이트…

린타로 : 사람은 반드시 한 가지, 그 문을 가진다. 이것만 있으면 아무리 다른 길로 가게 되더라도 망설이진 않겠지… 그래, 바로 나처럼 말이지.

모에카 : ……

- 모에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해한 듯 싶었다.

린타로 : 그러면, 이제부터 본제로 들어가지. IBN 5100에 대한 정보는 뭐가 있나?

- 모에카는 가만히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으로 대답했다.

린타로 : 도대체 언제부터 조사하고 있는 거지?

모에카 : …2, 개월 정도.

린타로 : 어떻게 조사했지?

- 곧바로 모에카의 손가락이 고속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받은 편지함
날짜 8/1 14:36
from 섬광의 지압사
sub 여러 가지로

여러 PC 가게를 돌아다니거나, 인터넷 옥션 사이트를 조사하거나, @채널에다가 「모르세요?」하고 물어보거나, 아키하바라를 걸어다니는 사람한테 물어보거나. 그렇다고 해도 이야기를 걸 수 있었던 사람은 오카베군을 포함해서 4명 정도지만 말야 >< 모에카

- 2개월에 4사람이라니… 아키바에는 매일 엄청난 수의 오타쿠가 오는데.

린타로 : PC 가게 점원한테 물어보거나 한 적은 있나? 아키바에서 가장 PC에 대해서 잘 아는 건 그 사람들인데 말이지.

모에카 : ……

- 모에카는 또다시 가만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 녀석한텐 조사는 무리라는 걸 나는 깨달았다. 시간을 헛 썼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지압사에게 조사를 부탁한 “뭔가 라이트”라는 편집 프로덕션이 무능한 거겠지. 이런 성격인 주제에 편집 프로덕션에서 알바를 하려고 생각한 이 녀석도 이 녀석이지만.

린타로 : 네 목적은 어느 쪽이지? IBN 5100을 입수하는 것하고 도시전설을 조사하는 거하고.

모에카 : 양쪽 다.

린타로 : 그렇군.

- 그러면 이 녀석이 찾고 있는 건 “아키하바라에 있는 IBN 5100”으로 한정된다는 건가. 나는 실제로 도시전설 같은 건 어쨌든 상관없고, 그냥 IBN 5100만 손에 넣으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진실한 목적은 그것을 손에 넣은 다음 일이니까. 그러니까 “아키하바라에 있는 IBN 5100”에 집착할 필요는 없는 거다. 사실상 인터넷 옥션을 이용해서 해외에서 구입해 오더라도 문제는 없는 것이다. 시간하고 돈은 들겠지만. 앞으로 2~3일 정도 찾아 봐서 아무런 단서도 입수할 수 없다면 그쪽 방법도 검토해 보자.

린타로 : 이 다음엔 어딜 조사할 셈이지?

모에카 : 그건… 그게…

린타로 : 음? 잘 안 들리는데.

- 모에카는 고속으로 메일을 썼다.

- 받은 편지함
날짜 8/1 14:38
from 섬광의 지압사
sub 난처해

어디서도 찾을 수 없어서, 곤란하던 참이야. 모에카

- 안 되겠군. 역시 이 녀석은 도움이 안 돼.

린타로 : 걱정 마라. 나는 쓸만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지. 그걸 구사하면 구형 PC라도 찾는 건 아무 것도 아냐.

모에카 : ……

- 모에카가 오늘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거기 있는 표정은 나를 바라보는 존경의 시선.

린타로 : 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호오인 쿄마다! 원하는 것은 지배 구조의 붕괴, 그리고 혼돈이로다! 후하하하!

모에카 : 그것이… 오카베군의 슈타인즈 게이트…

린타로 : 오카베가 아냐, 호오인이다!

게임/슈타인즈_게이트/02장_3.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1/07/03 02:53 저자 LeD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