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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슈타인즈_게이트:02장_5

2장 : 공리 방황의 랑데뷰 (5)

- 랩에 있던 통이하고 마유리도 도와 주어, 4사람이 붙어서 IBN 5100을 들여왔다.

린타로 : 모두 수고했다. 이걸로 우리는 싸울 수 있어.

크리스 : 싸우다니 누구하고.

린타로 : SERN. 그리고 세계를 주름잡는 지배 구조하고다.

크리스 : 당신 정말로 행복해 보여.

린타로 : 행복? 그런 건 바라지 않지. 날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광기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다. 내가 손에 넣고 싶은 건 혼돈. 그것을 위한 타임머신이다. 후하하하!

크리스 : 미안, 다시 말할게. 당신은 정말로 β엔돌핀 과잉 분비에 의한 중독자야.

마유리 : 오카린, 오카린,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고 항상 이야기하잖아―

이타루 : 그래도 대단해. 레알 찾아 올 줄이야.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태연히 해치워 버려. 그게 짜릿해―

크리스 : 동경하진 않지만 말야.

이타루 : …엇?

린타로 : 어?

크리스 : 어…?

- 한 순간 네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마유리 : 찾게 된 건 말야, 마유시― 덕분이야―

- 마유리가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서 자랑스레 가슴을 폈다. 크리스가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쉬는 걸, 난 놓치지 않았다.

마유리 : “마유시― 정보”가 없었다면― 오카린은 지금도 아키바를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을 거야.

린타로 : 그래, 마유리 말 대로야. 이번엔 정말 잘 해 줬어.

마유리 : 에헤헤― 그런 관계로― 마유시―는 슬슬 돌아갈게― 크리스는 어떻게 할 거야―? 중간까지 같이 돌아갈래?

크리스 : 고마워. 하지만 조금만 더 여기 있을래.

- 역시 크리스는 IBN 5100, 그리고 SERN에 대해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었군.

마유리 : 그런가― 너무 늦지 않게 돌아가는 편이 좋을 거야― 그럼 내일 또 봐― 뚯뚜루―♪

- 마유리는 손을 흔들며 랩을 나섰다.

린타로 : 그래서 통이. IBN 5100은 언제부터 SERN을 해킹하는 데 쓸 수 있을 것 같나?

이타루 : 으음― 그렇군―

- 통이는 그렇게 말하며 IBN 5100의 전원 아답터를 콘센트에 꽂았다. 전원을 넣자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기동한다.

이타루 : 대단해― 진짜로 전원이 들어오네. 일단 이 녀석을 어떻게 쓰는지 익혀야 할 것 같아. 우선 배선 연결하는 것부터가 큰일일 것 같고.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몰라. 서버 관리자 ID를 찾는 것하고 동시에 진행하는 건 무리인 득.

린타로 : 상관없어. ID 찾는 걸 우선해 줘. 할 수 있으면 이번 달 안에 IBN 5100을 쓸 수 있게 됐으면 하는데 말이지.

이타루 : 이번 달이라면 아직 30일 통째로 남아 있는 셈이잖아. 아무리 그래도 다음 달까진 안 걸릴 거야.

- 실로 믿음직스럽군. 과연 슈퍼 하커.

크리스 : 그래서?

린타로 : 그래서, 라니?

크리스 : 설명을 요청하고 있는 건데 말이지, IBN 5100하고 SERN에 대해서.

린타로 : 그럼 설명하지. 내 오른팔인 슈퍼 하커, 미스터 통이가―

이타루 : 슈퍼 하커가 아니라니까. 몇 번이나 말해야 됭미?

린타로 : 슈퍼 해커 미스터 통이가, SERN을 해킹했지.

크리스 : 괜찮아? 붙잡혀 가는 거 아냐?

이타루 : 난 그런쪽 도박은 안 해.

크리스 :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린타로 : 그 결과, 놈들이 LHC로 타임트래벌 이론을 연구하고 있는 흔적을 발견한 거다.

크리스 : LHC, 라…

이타루 : 그건 레알. 내가 직접 조사한 거니까 말야. 애당초 LHC는 실제로 9년 전부터 가동하고 있었어.

크리스 : 엇, 정말이야!?

린타로 : 그리고 미니 블랙홀 생성에도 성공했다고 하더군.

크리스 : 거짓… 말… 그러면 어째서 공표하지 않는 거야!?

린타로 : 그게 문제지. 어째선지 녀석들은 공표하지 않았어. LHC가 9년 전부터 가동하고 있었다는 것도, 미니 블랙홀 생성에 성공했다는 것도, 타임트래벌 이론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도, 말이지. …그건 즉 뒤가 구린 일을―

- 메일이 도착한 소리에 방해를 받아서 난 가볍게 혀를 찼다. 다시 말해야겠군.

린타로 : 그건 즉 SERN이 뒤가 구린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지. 음모의 스멜이 풀풀 나지 않나?

크리스 : 음모론을 믿을 생각은 없어. 하지만― 당신이 말한 게 진짜라고 증명된다면, 놀랄지도 모르겠어. 그 SERN이 타임트래벌 이론을… 아, 그런데 IBN 5100은? 무슨 관계가?

린타로 : SERN의 데이터 베이스에, IBN―

- 또 메일이었다. 이 빈도를 볼 때 보내는 사람은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 메일광 같으니! 자중하라고 전에 주의를 줬는데!

린타로 : 미안하군, 통이, 설명을 계속해 줘.

- 그렇게 부탁하고서 나는 메일을 열었다.

- 받은 편지함
날짜 8/1 19:24
from 섬광의 지압사
sub 깜빡했어

말하는 걸 깜빡했어. 난 메일은 기본적으로 24시간 언제든 받고 있거든. 방금 전 메일에 대한 대답은 언제 하더라도 상관없어. 다만 될 수 있는 한 빨리 부탁해. 모에카

- 방금 전 메일에 대한 대답이라니, 뭐야.

- 받은 편지함
날짜 8/1 19:18
from 섬광의 지압사
sub 정보 있었어?

IBN 5100의 정보, 뭔가 알아냈어? 내 쪽은 전혀 없어. 꽤나 여러 가게를 돌아 봤지만 전시해 둔 가게는 0이었고. 역시 점원한테 물어보는 게 좋을까나. 오카베군 쪽은 수확이 있었는지 어떤지 좀 가르쳐 줬으면 해. 모에카

- 받은 편지함
날짜 8/1 19:23
from 섬광의 지압사
sub 어―이?

방금 내 메일 봤어? 봤으면 연락 좀 줘. 아, 앞으론 정기적으로 연락하도록 하자. 매일 밤 7시에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거야. 어때? 좋은 생각 아냐? 그러자. 그러지 않을래? 네 의견을 들려 줘. 모에카

- 까다로운 녀석이군. 크리스가 짜증나는 듯 나를 보고 있다. 지압사한테 대답하는 건 짧게 끝내도록 하자.

- 『IBN 5100은 손에 넣었다. 빌려줄 순 없지만 보고 싶다면 우리 랩으로 오도록』

- 랩 주소도 적어서 메일을 보내고서, 나는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린타로 : 그래서,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이타루 : SERN의 데이터 베이스에 IBN 5100이 쓰이고 있는 데까지.

린타로 : 즉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 데이터베이스의 정보를 해독하기 위해선 이쪽도 똑같이 IBN 5100을 쓰는 수밖에 없단 거다.

크리스 : 어째서 그렇다는 걸 아는 거야?

린타로 : 어떤 정보원에게서 정보를 얻었거든.

- 일부러 티토라는 이름은 대지 않았다. 이 천재 소녀의 태도를 볼 때 어차피 비웃을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는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크리스 : IBN 5100 운운 하는 건 어쨌든… SERN이 정말로 그런 연구를 하고 있는지, 확증이 있었으면 해.

- 확실히 이전에 한 해킹으론 SERN이 타임트래벌 이론을 연구하고 있다고 하는 제대로 된 증거를 얻진 못했다.

린타로 : 통이. SERN 서버 관리자의 패스워드를 알아내는 덴 시간이 걸리나?

이타루 : 마침 이제부터 하려고 생각했던 참이야. 12시간 안에 끝나지 않을까나?

린타로 : 그렇다는군.

크리스 : …그 때까지 기다릴게.

이타루 : 기다린다니, 벌써 밤이 된 건에 대해서.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서 내일 아침에 오는 게 어때?

크리스 : 아니. 기다리고 싶어. …1마이크로초라도 빨리 알고 싶으니까.

린타로 : 큭큭큭, 좋은 마음가짐이로군. 그야말로 SERN에 숨겨진 음모에 매료되어, 알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모양이로군.

크리스 : 당신들이 하는 말이 만약 사실이라면… 이것만큼 웃기는 일은 없어. SERN은 세계 최고의 연구기관이야. 거기서 실험 결과를 공표하지 않고 극비리에 실험을 하고 있다니… 전 세계의 연구자를 바보 취급 하는거나 다름 없는 거야. 만약 사실이라면, 말이지만.

- 마지막에 다시 한 번 그렇게 토를 달았다. 우리를 믿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린타로 : 그럼 통이, 부탁하지.

- 통이가 인터넷으로 조사한 결과, 중량 25킬로로 판명된 IBN 5100은 일단 개발실 선반에 넣어 두기로 했다. 반쯤 끌고 가는 느낌으로, 상자를 개발실로 날랐다. 크리스가 따라왔다.

크리스 : 전화렌지, 봐도 돼?

린타로 : 상관없어. 실험해 보겠나?

크리스 : 그 이후로 한 번도 재현하지 못했다고 했지. 과거로 메일을 보내는 현상. 이유는 파악했어?

-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을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 : 잠깐 시험해 보자.

- 크리스는 개발실 안을 둘러보고는―

크리스 : 그나저나 잡동사니 투성이네.

린타로 : 잡동사니가 아냐! 넌 아직 모르는 것 같으니 특별히 가르쳐 주도록 하지. 이건 우리 미래 가젯 연구소가 그 과학력의 정수를 집결시켜 발명한 영광스런 미래 가젯들이다! 여기에 보관되어 있는 것은 미래 가젯 1호기부터 7호기까지이며, 전화렌지(가칭)는 미래 가젯 8호로 넘버링 될 거다.

크리스 : 미래 가젯이라…

- 크리스는 선반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미래 가젯 4호기 『모아드 스네이크』를 들고서 꼼꼼히 쳐다봤다.

크리스 : 잠깐, 이거… 무기 아냐?

린타로 : 미래 가젯 4호기 『모아드 스네이크』는 크레이모어 지뢰하고 비슷하게 만든 순간 가습기다.

크리스 : 쓸데없이 헷갈리네.

린타로 : 물을 넣고 전원을 넣으면 불과 몇 초만에 대량의 증기가 뿜어져 나오지.

크리스 : 역시 잡동사니였어.

- 크리스는 한숨을 쉬고서 『모아드 스네이크』를 선반에 돌려놓고는,

크리스 : 이거, 좀 빌릴게.

- 그렇게 말하고, 선반 위에 방치되어 있던 새 가운을 집어서 멋진 포즈로 입었다.

린타로 : 오오―

크리스 : 역시 차분해져― 흰 가운은.

- 나는 너무나 감격해서, 크리스의 손을 잡았다. 꾹 하고 쥐었다.

크리스 : 뭐―!?

린타로 : 조수여, 넌 “알고 있”잖아!

크리스 : 뭐, 뭘 말야, 이거 놔…

린타로 : 역시 연구 개발엔 흰 가운이야말로 유니폼이지!

- 통이한테는 몇 번이나 말했지만 입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조수는 다르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스스로 입어 주었다!

린타로 : 역시 내 눈은 정확했어. 크리스티나, 넌, 최고의― 조수야.

크리스 : 칭찬해 주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이건 완전히 굴욕이라구, 어이.

- 잡았던 손이 내팽개쳐졌다. 크리스는 휙 하고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다.

린타로 : 그 흰 가운은 랩 멤버 가입 기념으로 네게 선물하도록 하지. 원래부터 아무도 쓰지 않았던 거야, 부담스러워 할 건 없어. 훗, 아니면 그 가운은 원래부터 너와 만날 운명이었던 건지도 모르지. 통이가 입으려 하지 않았던 것도 또한 필연. 모든 건 슈타인즈―

크리스 : 헛소리 그만하고 실험이나 해 보자.

린타로 : ……

- 크리스는 두 손을 가운 주머니에 찔러 넣고 몸을 앞으로 기울여서, 지금은 테이블 아래에 놓여 있는 타임머신을 꼼꼼히 쳐다봤다. 이전 실험에서 테이블을 하나 부순데다가 바닥에 구멍까지 뚫고 말았다. 방전 현상을 일으키는 데 성공하면 다시 지난 번 같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불편하긴 하지만 바닥에 놔두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 : …이거 말인데, 전자렌지 쪽은 아무 것도 건들지 않은 거지?

- 나는 X68000의 모니터를 가리켰다. 거기엔 프로그램이 표시되어 있다.

린타로 : 항상 터미널 모드로 해 두고 있지. 어떤 설정이라도 할 수 있어. 판매되고 있는 전자렌지보다도 “위험한 짓”을 하는 것도 가능해.

크리스 : 방전 현상이 일어났을 때엔 어떤 설정이었어?

린타로 : 특별히 아무런 설정도 아니었어. 출하시의 설정 그대로였지.

크리스 : 흐음. 바나나, 하나 쓸게.

- 크리스가 들어올린 바나나 송이엔 이제 무사한 바나나가 3개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린타로 : 그건 마유리 건데.

크리스 : 그럼 당신한테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겠네. 내일 새 바나나를 사오기로 하고, 말야.

- 크리스는 송이에서 바나나를 하나 뜯은 후, 주저앉아서는 전화렌지(가칭) 안에 넣었다. 그리고서 자기 핸드폰으로 조작을 시작했다. 원격 조작에 의해 전화렌지(가칭)가 역회전으로 작동했다. 120초 후,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크리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네.

- 바나나는 변함없이 렌지 안에 있었으며, 젤리화도 되지 않았다.

크리스 : 앗, 뜨거,

- 바나나를 끄집어 내려 한 크리스는 비명에 가까운 소릴 내고서 곧바로 손을 움츠렸다. 후후 하면서 손가락에 입김을 불고 있다.

크리스 : 데워져 있네.

린타로 : 렌지가 일반적으로 동작했다, 는 건가.

- 이걸로 마유리가 발견한 숨겨진 기능은 『냉동 기능』이 아니라는 것은 증명되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크리스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바나나를 투입하여, 다시 한 번 120초로 역회전 조작을 행했다. 하지만 2번째 바나나 역시 데워졌을 뿐이었다. 과거로 메일을 보내는 현상뿐만이 아니라, 젤리화 및 순간이동 현상까지 재현할 수 없는 상태였다.

린타로 : 어떻게 된 거지…

크리스 : 역시 지난 번에 일어났던 일은 이레귤러였다는 건가.

린타로 : 이레귤러였든지 어쨌든지 간에 원인을 규명해야만 해.

크리스 : 거기엔 동의해.

- 드문 일로, 의견이 일치했다. 그렇다고 해도 나하고 크리스는 지향하는 바가 정 반대겠지만. 이 조수는 “전자렌지(가칭) = 타임머신 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린타로 : 지난 번 실험에선― 뜯어 낸 바나나는 전화렌지(가칭)에서 120초가 지난 후에 바나나 송이로 젤리화해서 순간이동했지. 이건 120초 전의 상태로 돌아갔다고 생각해야 할 거다.

크리스 : 아냐. 120초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거라면 젤리화는 하지 않을 거야.

- 즉 젤리화했다는 거니까 120초 전의 상태로 돌아간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린타로 : 닭튀김은 젤리화하지 않고 냉동 상태로 돌아갔다구.

크리스 : 그 “젤리화하지 않고 냉동상태로 돌아갔다”라는 논리도 수상해. 냉동되어 있던 것뿐이고, 젤리화 그 자체는 일어났을 가능성에 대해선 검증해 봤어?

- 그건… 조사해 보지 않았다… 마유리는 그 “냉동 상태로 돌아간 닭튀김”을 먹었던 걸까.

린타로 : 소금은 젤리화하지 않았어.

크리스 : 아무 것도 변화하지 않았다, 라고 정의해야 할 거야.

린타로 : 지난 번 방전 현상이 발생한 후에 밤을 새서 실험한 결과 양배추, 무우, 쌀, 곤약, 메론빵, 와그작군, 컵라면 모두 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액체도 마찬가지였지. 그 날은, 방전 현상을 전후로 해서 실험 성공률이 180도 바뀌었어. 방전 현상 전엔 모두 성공. 방전 현상 후엔 모두 실패.

크리스 : 렌지가 전기를 축적해 두었다든가…? 젤리화 된 건 프랙탈 구조처럼 되었다고 했었지? 소금은 원래부터 단순한 구조니까 영향을 받지 않은 걸까나. 전기하고 어떤 관계가…

린타로 : 여기선 타임트래벌 이론을 전제로 해서 생각해야 할 거다.

크리스 : 안 돼. 결론을 정해 놓고 생각하는 건 좋지 않아.

린타로 : 이미 몇 가지 실험 성공 사례가 있다구. 그걸 부정할 생각이냐.

크리스 : 난 별달리 이게 타임머신이 아니라도 전혀 곤란하지 않은걸. 애당초 이 작은 전자렌지 안에서 빅뱅에 필적하는 에너지가 발생한다고 정의하는 건 무리가 있어.

- 크리스는 복잡한 심정이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크리스 : 방전 현상 재현, 그리고 프랙탈 구조화의 재현. 둘 다 할 수 없게 된 이유가 있을 거야. 실험 방식은 전혀 바뀌지 않았어. 설정도 바뀌지 않았어. 실험 대상도 변경 없고. 그 외에 변동하는 조건이라면―

린타로 : 누가 관측하는가, 로군.

크리스 : 뭐야, 그건.

린타로 : 양자론이다. 관측자는 실험의 중요한 요소지.

크리스 : 방전 현상이 일어났을 때는 여기에 4사람이 있었어. 하지만 그 전에 하시다씨가 혼자였을 때에도 발생했고. 프랙탈 구조화가 있었던 실험에선 2사람일 때나 3사람일 때가 있었잖아. 우리 두 사람도 두 가지 현상을 모두 봤고. 즉 조건은 변하지 않았을 거야.

린타로 : 그렇다고 한다면…

크리스 : 으음…

- 뭔가 다른 조건이 있을 텐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을 때 크리스의 배에서부터 “꾸르르르”하는 소리가 났다.

크리스 : ……

린타로 : 배가 고픈 건가.

크리스 : 시, 시끄러워. 점심때부터 아무 것도 못 먹었다구.

- 크리스는 저쪽을 돌아보고서 손목시계를 봤다.

크리스 : 벌써 8시구나.

린타로 : 바나나를 먹도록. 단 먹어도 되는 건 방금 전에 데운 2개로 한정. 실험에 쓴 재료니까 맛있게 먹도록. 아니면 사둔 컵라면이 있긴 한데.

크리스 : ……

린타로 : 필요없나? 역시 미국에서 생활한 지 오래되어 패스트푸드 쪽이 좋은 건가―

크리스 : 컵라면.

린타로 : 뭐라고?

크리스 : 컵라면, 먹을게.

린타로 : 컵라면을!?

크리스 : 참고로, 맛은?

린타로 : 간장라면하고 소금라면이 있지.

크리스 : 소금라면.

- 완전히 먹겠다는 기세다.

크리스 : 그리고, 포크, 있어?

- 심야가 되었다. 8시에 두 사람이서 묵묵히 컵라면하고 데운 바나나를 먹은 후― 통이는 필요없다고 했다― 계속 전화렌지(가칭)에 대해서 조사했다. 나는 주로 X68000을 통한 터미널 모드 설정을 조사했다. 대부분을 통이가 멋대로 바꿔친 그 프로그램은 위저드(전뇌의 마술사)급으로, 나라고 해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적었긴 하지만. 크리스 쪽은 좀 전부터 AC 어댑터나 랩의 배전반 같은 것을 조사하고 있다. 분해하려고 시도한 적도 있는데, 그건 말렸다. 날짜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는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애당초 이 녀석은 어디 살고 있는 걸까. 일본에 온 건 한 두 달 정도 전으로, 이번 달 안에는 돌아갈 거라고 했었지. 물론 이 시간엔 전철도 안 다닌다.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갈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애시당초 전철 끊기기 전에 돌아가라,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설마 자고 갈 셈인가…! 이 랩에 여자가 자고 간 적은 없다. 마유리는 일단 귀가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항상 이케부쿠로에 있는 집에 돌아간다. 나하고 통이는 맨날 여기서 자곤 하지만. 반쯤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서 자란 여자애한텐 랩에 묵는 것 쯤은 일반적인 일인 걸까.

린타로 : 크리스티나. 이런 시간까지 여기 있어도 괜찮나? 적어도 집에 연락이라도 하는 게 어때.

크리스 : 연락 같은 건 필요 없어.

린타로 : 뭐? 네 부모는 방임주의인 거냐?

- 크리스는 내 쪽을 돌아보고서 한숨을 쉬었다.

크리스 : 아버지하곤 이래저리 7년 동안 만나지 않았어. 어머니는 미국. 난 지금 호텔에 묵고 있고. 알겠어?

린타로 : 뭣…!

- 호텔에 묵는다고? 확실히 1개월 정도 체재하는 데에 아파트 같은 걸 빌리는 건 바보 짓이겠지만―

린타로 : 이 갑부 같으니…! 미국인이라면 호텔보다 모텔이잖아!

크리스 : 난 미국인도 아니고, 토쿄 한복판에 모텔은 없잖아.

린타로 : 어떤 호텔이지?

크리스 : 어떤 호텔이라니, 오챠노미즈에 있는 보통 호텔이야.

린타로 : 오챠노미즈? 그럼 여기서 걸어서 돌아갈 수도 있잖아.

크리스 : 뭐 그렇지.

- 옳거니. 그래서 이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었던 건가. 이제야 납득했다.

린타로 : 그럼 아버지 건에 대해서 묻지.

크리스 : 하아?

린타로 : 7년 동안 만나지 않았다, 고 했었지.

크리스 : 어째서 당신이 내 아버지한테 흥미를 가지는 거야?

린타로 : 네가 보란 듯이 아버지에 대해서 말했잖아. 그건 결국 “아버지에 대해서 상담하고 싶어요 부탁입니다”하는 메시지겠지?

크리스 : 그럴 리가 있나.

린타로 : 좋아, 넌 내 조수다. 조수의 고민은 들어 줘야겠지. 그러니까 마음 편히 다 털어놓도록!

크리스 : ……

- 크리스는 딱 보기에도 기분 나쁘단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배전반을 노려보고 있다.

린타로 : 왜 그러지?

크리스 : 당신한테 이야기 할 건 아무 것도 없어―

린타로 : 그런가, 알았다! 네 아버진 원래 영웅이었지만, 결국 악에 물들어서 지금은 제국의 간부가 되어 검은 마스크와 검은 망토를 입고서 후―하― 같은 소릴 내고 있는 거지! 그래서 장차 부모자식 간에 싸울 운명이―

크리스 : ……

- 끼이익, 하고 크리스가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려온 듯한 느낌이었다.

린타로 : …호, 혹시나 엄청 화난 거야?

크리스 : 다른 사람 가족 문제를―

- 크리스는 내 눈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단지 화를 죽인 듯한 낮은 목소리가, 얼마나 분노해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크리스 : 그렇게 희화화하지 마. 당신은 지금 내 마음 속으로 더러운 발을 들여놓은 거나 다름없어.

린타로 : ……

- 설마, 아버지 건은 지뢰인가…? 이건 사과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해고서 할 말을 찾고 있을 때―

이타루 : 떴, 다아아아아아!

- 통이의 고함 소리가 울려퍼졌다.

린타로 : 통이, 해 낸 거냐!

이타루 : 미션 컴플릿.

-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싱긋 웃는 통이의 하얀 이가 눈부시다.

이타루 : 서버 관리자의 ID하고 패스워드를 입수했지. 이걸로 이제 마음대로 시간할 수 있어, 햣호!

린타로 : IBN 5100이 쓰이고 있는 쪽의 데이터베이스는?

이타루 : 그쪽은 독립해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거하곤 전혀 관계없잖아, 상식적으로. 애당초 그렇게 특수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데이터베이스는 접속할 수 있는 인간도 제한되어 있을 거잖아. 소장급도 접속할 수 없는 모양이야.

린타로 : 소장급 이상의 직책이 존재한다는 거야?

이타루 : SERN 평의회라는 게 있는 모양이야.

린타로 : 흐음… 평의회라니, 그야말로 뭔가 있는 이름이로군.

이타루 : 뭔가 있다니, 뭐가?

린타로 : 최종 보스스러운 이름이지, 당연히.

크리스 : ……

- 크리스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뭐 좋아. IBN 5100을 쓰고 있는 데이터베이스 쪽은 나중으로 미루자.

린타로 : 통이, 조속 타임트래벌 이론에 대한 정보가 있는지 조사해 줘.

이타루 : 오키도키. 전에 조사했을 때 “Z 프로그램”이란 게 수상했었지.

린타로 : 그거하고 “젤리맨즈 리포트”다.

- 둘 다 구체적인 개요에 대해서는 결국 알 수 없었다.

- 크리스는 잡아먹을 듯이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다. 그 표정에서는 좀 전의 엄청나게 화난 듯한 분위기가 사라져 있었다.

린타로 : 잘 봐 두도록. 그리고 그 눈에 새겨 둬라. SERN이 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기만이라는 현실을 말야.

이타루 : 우홋, 발견했어. LHC 계획 담당 책임자야, 흥한다.

린타로 : 책임자… 라는 건 상당히 중요한 위치로군.

이타루 : 지금 그 녀석의 PC를 훔쳐볼게~ Z 프로그램, Z 프로그램은… 어디 보자…

린타로 : Z는 젤리를 줄여 말한 게 틀림없어!

크리스 : 젤리는 J야. JELLY.

이타루 : 풋, 경솔한 실수였음둥. 꼴사나워라.

린타로 : 으흠, 그, 그러니까 그렇게 단순한 이름일 리는 없어. 거기엔 중요한 의미가 숨겨져 있어. 틀림없이 더블 미닝!

- 로그를 뒤지고 있던 통이의 손이 멈췄다.

이타루 : 옷, 떴다, 떴어.

- 그림 파일이 모니터에 표시되었다. 꽤나 오래된 종이로 된 자료를 스캐너로 뜬 것처럼 보였다. 『Z Program』, 『TOP SECRET』 같은 문자가 떠올라 있었다.

이타루 : 프로그램 입안일은… 1973년으로 되어 있어.

린타로 : SERN이 생긴 때는?

크리스 : 1954년.

- 나는 통이에게 물었지만, 대신 크리스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Z 프로그램을 위해 SERN이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했지만, 54년이라고 하면 내 억측은 빗나간 거로군.

린타로 : IBN 5100이 발매된 때는?

이타루 : 1975년.

- 그래서 SERN의 중추에는 IBN 5100이 사용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마침 연대를 보면 딱 맞아 떨어졌다, 정도 되는 이유.

- 아니, 그게 아냐―

- 나는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그런 하찮은 이유일 리가 없다. 여기엔 틀림없이 세계 규모의 음모가 얽혀 있다. 오히려 IBN 독자적인 숨겨진 프로그래밍 언어 쪽이 SERN의 Z 프로그램을 위해서 IBN 5100에 들어간 건지도 모른다. IBN과 SERN은 공모하고 있다. 그리고 양쪽을 그림자에서 조종하는, 더욱 거대한 조직이 존재한다― 실로 재미있는 이야기 아닌가.

이타루 : 으겍, jpg냐― 웃기지 말라구. 카피&페이스트를 못 하잖아.

- 통이가 중얼거리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크리스 : 흐음, 텍스트는 프랑스어가 아니구나…

- 지금 표시되어 있는 건 영어인 모양이었다.

이타루 : 아니, 프랑스어나 네델란드어나 독일어로 쓰여진 것도 있음둥. 내용은 똑같은 것 같지만.

크리스 : …『시공의 지배와 거기에 기반한 역사의 파괴, 바꿔 말하면 과거에서부터 미래까지 포함하는 “위원회”에 의한 완전한 이상향을 실현하는 것은 21세기를 맞이하는 SERN의 존재 의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갑자기 크리스가 목소리를 죽인 말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타루 : 아, 그런가! 마키세씨는 영어 할 수 있었지!

린타로 : 잘 했다 조수! 네가 미국에서 유학을 한 것도 모두 오늘 이 날을 위한 거였어!

크리스 : 그럴 리가 없잖아. 멋대로 운명을 느끼지 마.

- 통이가 의자를 양보해서, 크리스는 PC 앞에 앉았다.

크리스 : 『본 실험 계획은 기밀 유지를 위하여, 또한 임기 응변에 따른 계획명 변경을 가능케 하기 위해 Z 프로그램으로 명명했다』 『Z는 곧 Ω(오메가)이며 я(야)이기도 하다』 『그 이름에 의미, 아니면 무언가의 정열적인 정신을 담는 것을 금지한다. 프로그램 종사자에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Z 프로그램은 국가간의 장벽을 넘는 극비 공동 프로젝트이며 전파연구소와 마찬가지로 “300인 위원회”에서 승인을 받은 최우선 연구 사항이다』 『이후 SERN에서 행해지는 다른 연구는 모두 이 Z 프로그램을 은폐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 아무래도 크리스가 읽고 있는 건 문서의 서문 같았다. 점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린타로 : Z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내용은 쓰여 있지 않은 건가?

- 통이가 옆에서 키보드를 조작해서 다른 그림을 표시했다.

크리스 : 음… 엇… 있어. …이… 이건…!

- 몸을 내민 상태의 크리스는 눈을 크게 뜨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린타로 : 뭐지?

크리스 : …『Z 프로그램에서는 고에너지 양자간 충돌을 이용해서 시공간 전이 실험을 행한다』

- 시공간 전이 실험. 그건 즉―

린타로 : 타임트래벌 실험…!

- 소리를 지르고 말 것만 같았지만 꾹 하고 참았다. 창가로 달려가서, 열려 있던 창문을 닫았다. 열기가 안 빠지긴 하지만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들리는 건 위험하다.

크리스 : 설마… 정말이었다니…! 더군다나 40년 정도 전부터 전 세계의 과학자를 속여 왔다는 거야?

린타로 : 내가 주목한 대로로군. SERN 뒤엔 거대한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어. 아마도 “기관”, 아니면 그에 준하는 조직이다.

크리스 : 뭐가 “기관”이야, 이 중이병. 가끔은 진지하게 이야기하라구.

린타로 : 훗, 바보 소리 마라. 내 말은 항상 진실을 가리키고 있다.

이타루 : 랄까, “기관”이라기보다 “위원회” 아냐? 그렇게 쓰여 있었고 말야.

크리스 : 300인 위원회라. SERN 평의회하곤 또 다른 걸 가리키고 있는 것 같은데, 뭘 가리키고 있는 걸까.

린타로 : 세계는 수많은 기만으로 가득 차 있지. 너희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아름답진 않아.

이타루 : 이야기 좀 들어, 오카린…

린타로 : 듣고 있어. 300인 위원회야말로 모든 비밀 결사, 각국 정부, 수많은 재벌의 최상위에 위치하는 거대한 어둠이다.

크리스 : 또 적당한 소릴…

린타로 : 사실이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면 인터넷을 뒤져 보도록. 지금까지 인류는 아무리 번영을 맞이했다 해더라도 시간이라는 벽에 부딪쳐 왔다. 그 벽을 돌파할 수 있는 타임트래벌 기술은 인류 역사를 크게 바꿀 수 있겠지.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과거의 핵병기하고 마찬가지로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될 수 있는 금단의 열매다. 그걸 얻고자 하는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자는 없어. 당연하게도 권력을 가진 자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손에 넣으려 하겠지. 인간으로서의 윤리 따윈 신을 지향하는 자들에게 있어선 내버려야 할 헛소리다. 알겠나, 크리스티나.

크리스 : …좋으신 말씀 감사합니다. 그렇게 술술 떠든다는 건, 당신도 신을 지향한다는 거야?

린타로 : 이 호오인 쿄마가 원하는 건, 그러한 신 후보의 타도, 그리고 지배 구조가 붕괴한 뒤의 혼돈이지. 후하하하!

크리스 : 호오인한테 물어본 게 아냐. 난 오카베한테 묻고 있어.

린타로 : 나, 나는 호오인이다.

크리스 : 즉 자기 생각은 없다는 거네.

- 큭, 조수 녀석. 방심할 수 없는 녀석이다. 이 나를 동요시킬 줄이야…

이타루 : 그런 것보다 마키세씨, Z 프로그램의 그 다음을 플리즈.

린타로 : 통이! 그런 거라니 말이 심하잖아.

이타루 : 음모론은 지겹도록 들었어. 오카린의 망상보다 Z 프로그램 쪽이 신경이 쓰이고.

- 망상도 음모론도 아닌 사실이라고 했건만… 하지만 확실히 통이의 말도 일리가 있다. 지금은 SERN이라는 국제적 연구 조직의 어두운 면을 알아내는 것이 최우선 사항이다.

린타로 : 조수, 계속하도록.

크리스 : 부탁하는 것 정도는 성의를 보이라구…

- 화가 나서 불평하면서도 크리스는 순순히 번역 작업으로 돌아갔다.

크리스 : 그러니까… 『프로그램 제 1단계. 대형 하드론 충돌형 가속기 건설 및 실용화』 『가속기에 대해서는 1959년에 완성된 양자 싱크로트론에서부터 반세기에 걸친 노하우 축적에 의해 일정한 성과를 얻었다』 『프로그램 제 2단계. 리프터의 실용화 및 조정』 『이에 의해 2개 이상의 인공적인 국소장 특이점 생성 및 커 블랙홀 생성을 가능케 한다』 『또한 블랙홀 생성에 대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왜곡시켜 유출하는 것으로 프로그램 본래의 목적에 대해 알아채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다』 『프로그램 제 3단계. 동물 실험』 『프로그램 제 4단계―』

- 거기서 크리스는 말을 멈췄다. 한 번 꿀꺽 하고 숨을 삼키고서, 천천히 분노를 억누르듯 중얼거렸다.

크리스 : …인체실험.

이타루 : …레알?

- 진짜인… 건가… 위험해, 지금, 등줄기에 쓰윽 하고 오한이 일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좀 전까지 나는 들떠 있었다. 그 SERN 정도나 되는 연구 기관이 타임트래벌 실험을 진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우연인지 필연인지 타임트래벌이라 생각되는 현상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잘만 하면 SERN을 앞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말한 대로, 세계는 기만에 가득차 있고 제대로 된 윤리 같은 건 무시당하고 있는데… 우리가 손을 댄 건 잘 한 짓인가?

이타루 : 저, 저기, 오카린. 전에 해킹했을 때, 기억하고 있어? 확실히 훔쳐 본 메일에 써져 있었지… 실험 결과 에러. 휴먼 이즈 데드, 미스매치. 자세한 것은 별지 젤리맨즈 리포트를 어쩌라든가…

린타로 : ……

- 휴먼 이즈 데드. “사람이 사망”.

이타루 : 그거, 인체 실험하고… 뭔가 관계가 있는 걸까?

- 목이 바싹 말라 왔다. 이마에서 땀이 나고 있는 건, 더위 때문이 아니다. 크리스와 통이가 내 말을 기다리고 있다. 결단은 내게 맡기겠다는 뜻인가.

- 자문해 본다. 괜찮은 건가? 정말로? 물러설 수 없게 될 거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음모를 그냥 보아 넘긴다는 것도 뒤끝이 나쁘다.

린타로 : 통이… 젤리맨즈 리포트를 찾아 줘.

이타루 : 레알이야?

린타로 : 레알이다. 하지만, 크리스티나.

크리스 : 어?

린타로 : 넌 이제 돌아가라.

크리스 : 뭘 지금 와서―

린타로 : 젤리맨즈 리포트…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이걸 보면 우리는 이미 보통 생활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너는 그 젊은 나이에 『사이언스』지에 논문을 실었을 정도의 천재야. 유망한 미래를 버릴 필요는 없어.

크리스 : 설마 걱정해 주는 거야?

린타로 : 당연하지. 넌 내 조수니까 말야.

크리스 : …조수가 아니라고 했잖아. 걱정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돌아가진 않겠어. 이 진실을 세계에 고발해야―

린타로 : 안 돼! 그건 너무 위험해.

크리스 : 쫄은 거야?

린타로 : 우리는 이 음모 앞에선 너무나도 무력해. 함부로 행동하면 즉각 제거될 거다.

크리스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린타로 : 이건 장난이 아냐. 농담으로 하는 소리도 아냐.

크리스 : …… …알겠어. 고발은 그만둘게.

- 내 진지한 호소에, 크리스는 아직 납득하지 못했다는 표정이긴 했지만 뜻은 꺾었다.

크리스 : 하지만 돌아가진 않을 거야. 신경이 쓰여서 잠도 안 올 거고.

린타로 : 후회하진 않을 건가?

크리스 : 안 해.

- 확실하게 그렇게 잘라 말했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인지, 용기가 있는 건지, 단지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지. 하지만 더 이상 설득한다 해도 들을 것 같지도 않았다.

린타로 : 통이는 어떻게 할래? 각오는 되어 있어?

이타루 : 뭐, 나는 슈퍼 해커고 하니까.

- 이 녀석은 이 상황에서도 무척이나 속 편하다.

이타루 : 애시당초 꼬리를 잡힐 만한 실수도 안 한달까.

- 그럼 결정되었군. 마유리가 이 자리에 없어서 다행이다. 그 녀석을 위험에 말려들게 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통이하고 크리스의 얼굴을 교대로 쳐다봤다.

린타로 : 좋아… 시작하자.

- 크리스는 통이에게 자리를 넘겼다.

린타로 : 그리고 본 작전명은 “레갈룬(업화봉쇄)의 상자”로 한다.

크리스 : 어째서 북구 신화?

이타루 : 헤에, 북구신화야? 그거야 간지나니까 그런 거 아냐?

크리스 : 애당초 작전명 같은 소릴 하는 남자는…

린타로 : 통이, 작전 개시!

- “젤리맨즈 리포트”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이중으로 된 패스워드 인증이 걸려 있었지만 통이는 별 문제 없이 그것을 돌파했다.

이타루 : 준비됐어? 연다?

- 통이가 나하고 크리스를 교대로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나는 마른 입술을 살짝 핥고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거운 공기가 랩 안에 감돌고 있었다. 창문을 닫아 버린 탓에 엄청난 열기 또한 감돌고 있었다. 통이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서 조심스레 엔터키를 눌렀다.

- 그것은― 얼핏 보기에 이력서 같았다. 오른쪽 위에는 얼굴 사진. 왼쪽 위에는 이름하고 나이, 키, 체중, 출신지 등. 가운데에는 영어로 긴 문장이 쓰여 있었으며― 가장 밑에, 신문을 잘라 낸 것을 스캔했다고 생각되는 흑백 사진이 붙여져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알았다. “젤리맨즈 리포트”의 젤리맨이라는 건 뭘 의미하는지.

크리스 : 『젤리맨즈 리포트 10』 『피실험자 제임스 맥커시, 31세, 출신, 미국』 『Z 프로그램4, 실험일 2005년 1월 28일 13시 05분』

- 크리스가 통이의 어깨 너머로 몸을 내밀고서 거기 쓰여져 있는 것을 읽어나갔다.

크리스 : 『실험 결과 에러. 휴먼 이즈 데드. 미스매치』…

이타루 : 또 그거야…

크리스 : 『초중력에 의한 무한 압축 및 커 블랙홀 내의 특이점 통과에 견디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1921년 4월 3일 뉴욕 14번지에서 빌딩 벽면에 오른쪽 반신이 묻혀 있는 듯이 죽어 있는 남자가 발견되었다』…

- 크리스는 마지막에 붙여져 있는, 흑백 사진이 첨부된 신문 기사를 읽고 있는 모양이었다.

크리스 : 『신원 불명인 남자의 시체는―』 『전신이 말랑말랑한 젤리 상태가 되어 있었다』…

게임/슈타인즈_게이트/02장_5.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1/07/03 02:54 저자 LeD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