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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슈타인즈_게이트:04장_1

4장 : 몽환의 호메오스테이시스 (1)

- 구세(救世)
어지러운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것.
사람들을 괴로움이나 불행 많은 세상에서 구하는 것.

- ―주(救世主)
1.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칭할 때 사용하는 말.
2. 인류를 구제하는 자, 메시아.
3. 괴로운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힘써 주는 사람.
<백과사전에서>

린타로 : 존 티토는 그야말로 바보로군!

- 나는 너무나도 기분이 나빠서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통이하고 크리스가 차가운 시선으로 보고 있지만 신경도 안 쓰였다.

린타로 : 이 내가 메시아라고!? 사양하고 싶군. 인류를 구제한다니, 한심한 소리도 이쯤 되면 걸작인데!

- 구세주라고 쓰여 있었을 때는 너무나도 우스워서 헛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만일 또다시 같은 일이 벌어지면 다시 한 번 연락을 주십시오. 그 때야말로 당신이 구세주라는 게 증명될 겁니다』 티토는 마지막에 그렇게 쓰고서, 메일 교환을 끝냈다. 하지만 난 티토의 말을 전면적으로 믿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녀석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을 정도로 난 순수하지 않다.

린타로 : 나는 메시아하고는 정 반대의 자질을 가진 광기의 매드 사이언티스트, 호오인 쿄마이며, 수많은 수라장을 헤쳐나오고 오랜 시간 동안 “기관”한테서 도망쳐 왔다! 그런 내가 바라는 것은 혼돈. 권력자를 쓰러뜨리면 평화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 답은 NO! 몇 번을 봐도 NO이다! 그런 꿈 같은 소릴 믿는, 대가리가 어떻게 된 녀석들한텐 그냥 뒈져 버리라고 충고해 주지! 권력의 파괴 후에 시작되는 건 질서 없는 혼란인 것이다. 후하하하!

이타루 : 저기, 마키세씨. 오카린은 대체 어떻게 되 버린 걸까나?

크리스 : 글쎄. 몇 시간 전에 존 티토하고 열심히 메일을 주고 받더니 갑자기 조용해져선, 그러고서 30분 정도 전부터 저런 상태야.

이타루 : 뭔가 오늘의 오카린은 전체적으로 위험하지 않어?

크리스 : 동의해.

린타로 : 듣거라, 거기 있는 랩 멤버 두 사람! 이제부터 『오퍼레이션 우르드』 작전을 재개한다!

이타루 : 제 정신임? 아래에 점장이 아직 있는데?

린타로 : 걱정 마라. 어차피 브라운관 공방은 슬슬 문 닫을 시간이다.

크리스 : 밤엔 전화렌지가 작동하지 않을 텐데.

린타로 : 해 볼 만한 가치는 있다! 검증하는 거다. 몇 시까지 전화렌지(가칭)의 작동을 확인할 수 있는가 하는 걸 말이지. 그와 함께, 통이, 그리고 크리스티나. 너희는 D 메일로 과거를 바꾸는 실험을 해 주길 바란다.

이타루 : 과거를…!

크리스 : ……

- 다세계 해석이나 어트랙터 필드라는 개념을 믿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의심이 강해졌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이 세계의 구조를 해석하는 것이 최선이며, 그걸 위해서는 실험이 필요하다. 그 집단 소실이나, D 메일의 과거 변경에 의한 기억 변경 역시 모두 D 메일이 관계되어 있다고 보는 게 좋을 것이다. 티토 왈, 내겐 특수한 능력― 즉 “리딩 슈타이너”― 가 있다고 한다. 그 진위는 차치하고서, 과연 진정으로 기억이 연속되는 것이 나한테서만 나타나는 현상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린타로 : 원하는 대로 과거를 바꿔라. 단, 될 수 있는 한 알기 쉬운 형태로.

- 전화렌지(가칭)의 준비는 되어 있다. 통이가 천장으로 시선을 돌리며 생각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크리스는 어깨를 으쓱 하고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크리스 : 난 돌아갈래. 오늘 실험 결과는 내일 리포트로 보여줘.

린타로 : 기다려랏!

- 어깨를 붙잡은 탓에, 크리스는 거의 넘어질 뻔 했다.

크리스 : 잠깐, 뭐 하는 거야!?

린타로 : 그 리포트는 누가 쓰는 거지?

크리스 : 당연히 오카베지. 작전을 입안한 사람이니까. 피험자 자신도 실험 도중의 소감 같은 걸 적어 주면 더 좋을 것 같긴 한데.

- 그렇게 말하고서 크리스는 통이한테 시선을 옮겼다.

린타로 : …과거 변경엔 흥미 없는 거냐? 그렇게나 실험에는 적극적이었잖나.

크리스 : 당신 말야, 낮에 있었던 일은 모두 잊어버린 거야? 난 반대했어.

린타로 : 하지만 실험이 시작된 후엔 의욕이 만빵이었지. 불만 한 마디 안 하고서 같이 했잖나.

크리스 : 망상 같은 소리 하지 마.

- 나는 씨익 하고 웃음을 지었다.

린타로 : 객관적이라고 하기 어렵군, 크리스티… 갑칠이여.

크리스 : 일일이 그렇게 말할래…

린타로 : 실험은 이미 한 번 행해졌다. 이 내가, 과거를 바꾸었지.

이타루 : 우와, 오카린, 새치기는 안 좋아!

린타로 : 그런 게 아냐. 과거를 변경한 결과, 너희는 “변경 전”의 일부 기억을 잃었지.

이타루 : …오늘 낮의 일 말야? 로또6가 어쨌다든가 하는 소릴 갑자기 했었는데.

린타로 : 그래.

- 나는 낮에 있었던 실험의 전말을 두 사람에게 이야기했다.

이타루 : …그건 혹시나 개그라고 하는 소리야?

린타로 : 진담이다.

이타루 : …레알입니까.

- 내 표정을 보고서, 통이는 농담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한편 크리스의 표정에 변화는 없었지만, 이건 여느 때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크리스 : 어째서 당신만 기억을 잃지 않은 거야?

린타로 :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너희도 과거 변경 실험을 해 줬으면 하는 거다.

크리스 : ……

이타루 : 우하, OK! 나 말야, 딱 하나, 어떻게 해서든 바꾸고 싶은 과거가 있거든―

- 통이의 적응 능력은 대단하다. 벌써 내 말을 의심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라기보다도, 이 녀석은 자신의 번뇌에 충실한 것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린타로 : 뭐지? 다이어트 하라고 1년 전의 자기한테 보내려는 건가?

이타루 : 그런 메일 오더라도 다이어트 같은 거 안 할 테지.

- 통이 말에 따르면, 며칠 전에 『메이퀸+냥2』에서 있은 『페이리스컵』의 결과를 변경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날, 통이는 라이넷 억세스 배틀러즈로 페이리스하고 승부를 해서, 순식간에 지고 말았다고 한다.

린타로 : 그 결과를 뒤집겠다는 건가?

이타루 : 페이리스땅의 작전은 거의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그 빈틈을 찌르겠다는 거야. 우하, 난 정말 머리 좋은 득?

- 페이리스 정도 되는 실력이라면 빈틈을 찌르는 통이의, 빈틈을 찌를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린타로 : 뭐 좋아. 통이여, D 메일을 보낼 준비를 해라!

이타루 : 좋았어― 나도 힘 낼게―

- 통이는 몸을 숙이고서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 전화렌지(가칭)의 전송 설정을 하기 위해서 X68000 앞에 앉아서 손목시계를 봤다.18시 55분. 전화렌지(가칭)가 동작할까 어떨까 하는 건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기동하지 않게 되는 명확한 라인은 아직까지도 확실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크리스 : 당신 자신은 어떻게 생각해? 기억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린타로 : 끈덕지군. 좀비라는 별명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는 건가?

크리스 : 의미 불명인 농담은 관둬. 이쪽은 진심으로 묻고 있는 거라구.

- 크리스의 표정은 여느 때 이상으로 무서웠다. 거기에 오줌을 찔끔 할 뻔 했다.

린타로 : 나는, D 메일을 어디에 보내느냐가 열쇠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미래에서 메일을 받은 인간. 그 인간만은 과거 변경의 영향을 받지 않… 을지도 몰라.

크리스 : 흐음…

- 실은 이 건은 이미 전제 수준에서 박살이 난 상태다. 이 가설로는 집단 소실 사건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 그 사건에 D 메일이 관계되어 있는가 어떤가 하는 증거도 없다. 모든 건 실제로 시험해 보고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다.

린타로 : 통이의 실험이 끝나면 다음엔 네게 D 메일을 보내도록 하지. 내용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해.

크리스 : 싫어.

- 크리스는 딱 잘라 말했다.

크리스 : 난, 보내지 않겠어.

린타로 : 무서운 거냐?

크리스 : 그런 문제가 아냐.

린타로 : 그럼 타임 패러독스가 신경이 쓰이는 건가.

크리스 : 그런 것도 있지만, 구태여 말하자면 내 개인적인 고집이야.

- 고집?

크리스 : 과거를 바꾸는 건 비겁한 느낌이 들어서야. 내가 지금까지 축적해 온 인생은 불과 18년이지만 그래도 그 기억을 바꾸고 싶진 않아.

린타로 : 옳거니, 지금 자기 자신은 완벽하고 불만이 없다, 그러니까 바꾸고 싶지 않다는 건가.

크리스 :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거야… 지금까지의 자신을 부정하고 싶지 않아. 설령 실패만 계속해 왔다고 해도 그걸 포함해서 지금의 자신이 있는 거니까.

린타로 : 전화렌지(가칭)가 완전히 문제를 해결해서 실용화된다 해도 쓸 생각은 없다는 건가? 존 티토가 타임머신을 맘대로 써도 된다고, 만일 그렇게 이야기하더라도 어떤 시대로도 도약할 생각은 없다는 건가? 파란 고양이 모양 로봇이 책상 서랍에서 튀어나오더라도, 그걸 쓰지 않겠다는 건가?

- 내 물음에 크리스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 : 안 쓸 거야.

린타로 : 하지만 실험은 좋아한다. 그렇지?

크리스 : 조, 좋아하는 데 문제라도 있어?

린타로 : 그러니까 자기는 높은 데서 내려다보기만 하면서, 다른 사람을 실험대에 올리고서 싱글거린다라. 음, 그야말로 매드한 사이언티스트로군!

크리스 : 당신 말야―

이타루 : 됐음둥~

- 크리스가 내게 다가오려고 하는 사이에 끼어든 통이가, 자신 만만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걸 보자―

- 『페이리스컵』
- 『적의 배치는』
- 『VLVVLVLL』

크리스 : 전혀…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타루 : 페이리스땅의 카드 배치임. 보면 알거든 상식적으로. 오카린이나 마키세씨가 익숙하지 않은 것뿐임.

- 그런 건가.

- 준비는 됐다. 통이의 메일을 약 52시간 전의 통이 자신의 핸드폰으로 보내도록 설정한다.

- 방전 현상은 무사히 발생했다. 격렬한 불꽃을 튀기는 청백색 빛에, 나는 견디기 힘들어져 눈을 감았다.

- D 메일은 보내졌다. 틀림없이 이틀 전의 통이 핸드폰에 도착했을 거였다. 하지만―

린타로 : 그 사실을, 어째서, 난 기억하고 있지?

- 낮에 내가 D 메일을 보냈을 때는 나 이외의 전원이 “과거를 바꾸기 위해 D 메일을 보냈다”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지금 통이의 메일로 과거가 바뀌었다면 “현재”도 바뀌었을 것이며, D 메일을 보낸 사실도 통이 이외 인간의 기억에서 사라져야만 할 것이다.

이타루 : 과거, 바뀌었어?

- 통이가 궁금한 듯이 중얼거렸다.

린타로 : 잠깐 기다려. 통이도 기억하고 있는 거지?

이타루 : 허? 뭘?

린타로 : 방금 D 메일을 보낸 것 말야!

- 통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어서 나는 크리스를 쳐다봤다. 이쪽은 묻기 전에 대답했다.

크리스 :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뭘 바보 같은 소릴… 아, 그런가. 오카베가 방금 말한 게 올바르다면 나하고 당신은 과거가 바뀌었다는 기억이 없겠지.

린타로 : 통이, 너, 페이리스컵에서 페이리스한테 이겼어?

이타루 : …모르겠어.

린타로 : 이겼다면 페이리스가 직접 만든 요리가 어땠든가 같은 소릴 했잖아. 그걸 먹었어? 요리는 뭐였어?

이타루 : 모르겠어… 훌쩍―

- 통이 핸드폰에서 보낸 메일함을 봤다. 역시 메일함에는 방금 보낸 D 메일이 없었다. 다른 한 편 받은 메일함에는 확실히 D 메일이 남아 있었다. 받은 시간도 목표한 시간인 2일 전으로 되어 있었다. 모두 다 내 경우하고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크리스 : …혹시, 과거가 안 바뀐 거 아냐?

이타루 : 잠깐 마유씨한테 전화해 볼게.

- 과거를 바꾼 장본인이 바뀐 다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다니, 묘한 이야기로군.

이타루 : 아, 마유씨? 아직 알바 중이지? 저기, 미안하지만 페이리스땅 거기 있어? …응, 있지!? 그럼, 잠깐만 물어봐 줬으면 하는데, 나 말야, 지난 번 『페이리스컵』에서 페이리스땅한테 이겼던가? 졌던가? …어, 졌다? 누가? 페이리스땅이? 내가? …아, 그래. 순식간에? 그래… 알겠슴다…

- 통이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전화를 끊었다.

크리스 : 지금 상황을 보니, 과거는 안 바뀌었던 모양이네.

이타루 : 어째서!? 오카린은 바꿨잖아!?

크리스 : 하시다가 보낸 “이기기 위한 방법”은 필승법이 아니라서가 아닐까? 유리하게 되긴 하지만.

-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한 부분이었다. 페이리스의 실력은 상당하다고, 예전부터 들었다. 통이가 시공을 넘어선 비기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처한 건지도 모른다.

크리스 : 최종적으로 페이리스씨가 하시다에게 이겨서, 과거는 바뀌지 않았다.

이타루 : 그렇긴 하지만, 게임 과정은 바뀔 거잖음.

린타로 : 불과 그 정도론 다이버젠스(세계선 변동률)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지도.

크리스 : 오카베가 말한 대로, 좀 더 알기 쉽도록 과거가 바뀌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도록 변경하지 않으면 실험을 할 의미가 없어. 아, 아니, 별달리 이 실험에 찬성이란 건 아니지만.

이타루 : 아니, 아직 멀었어. 아직 끝나지 않았어.

- 통이는 또다시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이타루 : 다시 한 번 다른 조언을 과거의 내게 보내 보겠어. 이번엔 좀 더 적절하게, 페이리스땅에게 진짜로 이길 만한 조언을 말여.

크리스 : 그렇게나 이기고 싶은 거야.

린타로 : 그보다는 그 정도로까지 페이리스가 만든 요리를 먹고 싶은 거겠지.

이타루 : 오카린의 대답이 정답.

- 이리하여 다시 한 번 통이에게 D 메일을 보내게 되었다. 메일 내용은 어차피 이해할 수 없으니 확인하지 않았다. 방금 전하고 같은 순서대로 전화렌지(가칭)를 작동시켰다.

린타로 : ……

크리스 : ……

이타루 : ……

린타로 : 어…?

- 세 사람이 모두 다 자세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방전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보통 때라면 데우기 버튼을 누르고 나서 대강 10~20초 정도에서 발생하는데. 결국 타이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0이 되어 버렸다.

크리스 : …타임 오버?

린타로 : 그런 모양이군.

이타루 : 뭐야아, 모처럼 멋진 조언을 적었는데…

린타로 : 어쩔 수 없지. 실험은 내일로 연기다.

- 시계를 확인하자 밤 7시가 넘어 있었다. 7시 정도로 보면 되는 건가.

크리스 : 어제 호텔로 돌아가서 계속 생각해 봤어. 이 전화렌지는 어떤 원리로 시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가를 말야.

린타로 : LHC하고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거다. 네가 말했을 텐데, LHC는 거대한 전자렌지라고.

크리스 : 전자렌지가 LHC하고 같은 기능을 가진다면 일본은 “한 집에 한 대씩 블랙홀”이 되겠네.

이타루 : 그, 그건 일본 침몰 수준이 아니잖아―

크리스 : SERN이 무척이나 간단하게 커 블랙홀을 만드는 것처럼 보이니까 감각이 마비되어 있긴 한데― 애당초 블랙홀 같은 건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위험한 것이기도 해. 가정의 전자렌지에서 블랙홀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이상한 거야.

- 티토의 타임머신은 차에 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블랙홀을 만들었다. 그렇게 말하려 했지만 지금 난 티토에 대해 회의적이 되었기 때문에 결국 입 밖에 내진 않았다.

크리스 :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전자렌지 단독으로는 블랙홀은 만들 수 없다는 거야. 이 전자렌지에 뭔가가 간섭해서 전자를 주입하고 있는 건 틀림없어.

- 전자를 주입하는 “뭔가”… 그건 대체…

크리스 : 그럼 난 돌아갈게. 더 이상 땀내 나는 남정네들 소굴에 있긴 싫거든. 내일 봐. 리포트는 잘 정리해 둬.

- 크리스는 흰 가운을 벗어던지곤 곧바로 랩을 나가 버렸다. 리포트… 진심으로 한 소리였나.

이타루 : 흐음… 마키세씨가 입었던 가운인가… 어디 보자…

- 남은 향기를 맡으려고 가운에 손을 뻗친 통이의 멱살을 뒤에서 붙잡고서,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린타로 : 어디 보자, 가 아냐, 바보 녀석! 그런 쓸데 없는 짓을 할 여유가 있으면 내일 실험으로 어떻게 과거를 바꿀지나 생각해 둬라!

- 그리하여, 다음날 아침까지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밤 늦게 잠들기 전까지 가끔씩 전화렌지(가칭)를 움직여 봤지만 역시 방전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브라운관 공방 가게 앞에 있는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직 오전중인데도 이미 태양은 작열하고 있어서, 태양광에 쪄 죽을 것만 같았다. 땀이 방울이 되어서 턱 끝에서 뚝 하고 떨어졌다. 그건 그렇고, 실험을 한다고 어제부터 이야기해 뒀는데도 랩 멤버는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열 받아 가며 기다리고 있자, 가장 먼저 모습을 나타낸 건―

텐노지 : 오, 꽤나 한가한 모양이로군, 오카베.

나에 : 안녕하세요, 오카린 아저씨.

- 이륜에 타고 나타난 텐노지 부녀였다.

린타로 : 난 아저씨가 아냐. 오라버니, 하고 불러라.

나에 : 엇… 아빠, 어떡해요?

텐노지 : 오카베, 네놈은 우리 딸한테 무슨 웃기지도 않는 소릴 하는 거냐.

린타로 : 교육이 잘 안 되어 있지 않는 것 같군요 미스터 브라운. 저 애가 절 아저씨라고 부르는 걸 어떻게 해 주십쇼.

텐노지 : 별달리 상관 없잖아. 속 좁은 녀석. 나에, 이런 녀석이 하는 소린 안 들어도 된단다.

나에 : 응…

- 점장은 이륜을 세워 놓고서 곧바로 가게로 들어갔다. 시스터 브라운은 그 뒤를 따르려 하다가―

나에 : 아,

- 길 저쪽을 보고서 확 하고 표정이 반짝였다. 그에 이끌려 시선을 향하자, 마유리가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마유리 : 오카린, 안녕―

나에 : 마유리 언니이―

- 하고 나에는 기쁜 듯이 웃으며 마유리한테 달려갔다. 그대로 마유리의 가슴에 달려들었다.

마유리 : 나에, 안녕―

나에 : 안녕,

- 무척이나 사이가 좋아서, 얼핏 보면 진짜 자매처럼 보인다. 그것도 그럴 것이, 마유리는 다양한 연배의 상대― 같은 나이, 연상, 연하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자매처럼 사이 좋게 지내는 특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는 나하고 통이하고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마유리는 무척 잘 따른다. 지금처럼 항상 품에 뛰어들곤 한다. 그걸 본 통이가 헛소리(?)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이 얼마나 부러운 시츄에이션! 나도 마유씨의 괘씸한 가슴에 뛰어들고 싶어”, “아니, 하지만 기다려 봐, 나에땅이 내 가슴에 뛰어드는 것도 나쁘지 않군” …같은 소리였나.

마유리 : 나에한테 이걸 줄게. 자, 여깄어―♪

- 마유리는 들고 있던 비닐봉지 안에서 알사탕을 3개 정도 꺼내서 나에한테 주었다.

나에 : 와아, 고마워.

마유리 : 자, 오카린도―

- 그렇게 말하고서 내민 알사탕을, 난 묵묵히 받았다.

마유리 : 거기 앉아서 뭐 하고 있었어―?

린타로 : 랩 멤버가 전원 모이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나에 : 오카린 아저씬, 한가해요?

린타로 : ……

- 이 애완동물 녀석이, 말 한 번 거침없이 하는군. 날 두려워하는 마음이 부족한 모양이야…!

마유리 : 아냐, 나에. 저기, 오카린은 분명히 뭔가 어려운 걸 생각하고 있는 거야―

나에 : 우와, 그렇구나― …

- 마유리, 좋은 어시스트다.

마유리 : 오카린 오카린, 이 시간에는 전화렌지씨가 아직 번쩍거리지 않지―? 그럼 말야, 볶음국수 빵을 데워도 될까―?

린타로 : 문 부분을 떼어냈기 때문에 데우는 건 무리야.

마유리 : 아, 그랬었지― 실망이야― … 아, 오카린은 아침밥 먹었어?

린타로 : 아니.

마유리 : 그럼 같이 먹을래? 볶음국수 빵은 차가운 거 그대로 먹고, 라면캔이라면 뜨거운 물로 데우면 되니까― 나에도 먹을래―?

나에 : 아니, 아침밥 먹고 왔어.

마유리 : 그렇구나―

- 나에는 가볍게 손을 흔들고 브라운관 공방으로 돌아갔다.

- 라면캔이라는 말에 낚여서 나는 마유리와 함께 랩 안으로 향했다. 열기가 가득 차 있었으며 실내도 더웠다.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켜도 거의 효과가 없었다.

마유리 : 통이군하고 크리스, 아직 안 오는 걸까나―?

린타로 : 그래, 랩 멤버라는 자각이 부족하군.

- 그 때 아래층에서 자전거의 브레이크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자 알바 전사가 출근하고 있었다. 금방 내 시선을 눈치 채고, 올려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스즈하 : 안녀엉―

마유리 : 뚯뚜루―♪ 스즈씨,

스즈하 : 오오― 시이나 마유리, 뚯뚜루―♪

- 두 사람은 완전히 의기투합한 상태였다. 과연 마유리. 나에뿐만이 아니라 스즈하하고도 이미 친해진 건가.

스즈하 : 오카베 린타로, 티토는 뭐래―?

린타로 : …글쎄라.

- 적당히 넘겨 버리려고 했는데 알바 전사가 계속 물고 늘어졌다.

스즈하 : 의욕 없어 보여. 모처럼 물어 봤잖아―?

린타로 : 물어보긴 했지만 그 녀석의 이야기가 올바른지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스즈하 : 어엇―!? 그래!? 어떤 부분이!?

- 저 녀석, 어째서 저렇게나 당황하는 거지.

린타로 : 그런가, 저 알바 전사 녀석, 티토 덕후인가.

- 그런 부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유리 : 아, 크리스다―

- 마유리가 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손을 흔들었다. 크리스가 걸어서 이쪽으로 오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알바 전사는 크리스한테 뭔가 원한을 품고 있는 듯 했는데. 상황을 보니, 명백히 알바 전사의 기분이 나빠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크리스를 가만히 쳐다보며,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말없이 싸움을 거는 상태. 크리스는 크리스대로 기가 쎈 탓에, 그 시선을 냉랭한 표정으로 받아 치고 있다. 두 사람은 빌딩 앞에서 한 두 마디 말을 나눴다. 그러다 멱살이라도 잡는 게 아닌가 하고 가슴이 콩닥거렸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마유리 : 크리스, 뚯뚜루―♪

크리스 : 굿모닝.

린타로 : 밑의 알바하고 무슨 이야길 했지?

- 크리스는 가볍게 어깨를 끄덕 했다.

크리스 : 별로 대단한 건 없어.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확실하게 말하라고 했지.

- 그, 그건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러고도 잘도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군.

린타로 : 그쪽은 뭐라고?

크리스 : 아무 말도 안 했어. 분한 듯이 그르렁거리기만 했거든. 도대체 뭘까나.

이타루 : 마키세씨의 인기에 질투하고 있는 거잖아 상식적으로!

- 통이가 현관 문을 기세 좋게 열며 들어왔다.

이타루 : “본래대로라면 내가 랩 멤버 넘버 004가 되어서 즐겁게 모두 함께 청춘을 즐길 예정이었는데, 우끼―! 분해라!” 같은 식으로. 3차원은 무서비.

크리스 : 랩 멤버 넘버 같은 건 얼마든지 양보할 건데.

린타로 : 랩 멤버 넘버는 모 국가에선 수천만엔 정도 되는 금액에 위법적으로 거래될 정도로 귀중한 자격인데!?

크리스 : 그게 무슨 여권이냐, 애당초 모 국가란 게 어디야, 어이.

마유리 : 모두 사이 좋게 지내는 게, 마유시―는 좋은데~

- 뭐어, 갑칠이와 알바 전사의 골육상쟁 같은 건 내게 있어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지금 내 흥미는 오직 하나. D 메일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뿐이니까.

- 곧바로 D 메일 실험을 시작하자, 아직 정오가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화렌지(가칭)의 방전 현상은 발생했다. 오늘은 순조로울 것 같았다. 참고로 아래층 점장에겐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다. 사전에 변명거리를 생각해 둬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점장의 안색을 살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래, 이것은 “기관”, 그리고 SERN이라는 놈들― 세계를 그림자에서 지배하는 음모하고 싸우는 것이니까 말이지!

이타루 : 안선생님, 페, 페이리스땅의 요리를 먹고 싶어요…

마유리 : 포기하면 거기서 시합 종료잖아―?

- 통이의 두 번째 D 메일로도 과거는 바뀌지 않았다. 애당초 라이넷의 승패는 아무리 편법을 써 봤자 뒤집기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불과 18자밖에 안 되는 조언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인터넷 서핑을 시작한 통이는, 어쩔 수 없이 쳐내버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랩 멤버를 피험자로 삼으려 해도, 크리스는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남은 후보는 단 한 사람 뿐이다.

린타로 : 마유리여, 다음엔 네가 과거를 바꿔 보도록 해라.

마유리 : 엇―? 마유시―? 바꿔도 돼? 그렇지만, 과거를 바꾸다니, 뭘 바꾸면 좋을까나―?

- 마유리는 곤란하단 표정을 지으며 라면캔을 한 입 먹었다.

마유리 : 아, 그럼 말야, 이런 건 어떨까―? 루카군한테 마유시―의 코스튬을 입게 하도록 과거를 바꾸는 거야.

린타로 : 어떻게?

마유리 : 루카군에게 메일을 보내든가 해서 말야―♪ 에헤헤―

- 그건 과거 변경이 아니라, 그냥 소망이잖아…

린타로 : 좀 더 간단하고 알기 쉬운 건 없나?

마유리 : 으~음~?

- 또 라면을 먹고 있다.

린타로 : …그 라면캔을 쓰자.

-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방법을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린타로 : 한 시간 전의 마유리에게 D 메일을 보내는 거다. “오늘은 오뎅캔을 먹고 싶어” 같이 말이지.

크리스 : 그런 유도에 말려들 정도로 단순하지 않을 것 같은―

마유리 : 아, 그거 말야, 정말 좋을 것 같아―☆

크리스 : 어…?

마유리 : 오늘도 말야, 자판기 앞에서 10분 정도 망설였어― 오뎅캔으로 할까― 라면캔으로 할까― 하고.

린타로 : 그러니까 등을 떠밀면 마유리는 필연적으로 오뎅캔을 먹고 싶어질 거란 거로군! 좋아, 그걸로 가자!

마유리 : 응, 알았어― 그럼 과거를 바꾸기 전에 라면을 모두 다 먹어 둬야지―

- 그러고서 마유리는 열심히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크리스 : 먹어 두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

마유리 : 아깝잖아♪

크리스 : 아, 그, 그래. 그렇구나… 아하하.

- 마유리가 방글거리며 그렇게 대답하자, 크리스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그야말로 태평한 바보 캐릭터다.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지만.

- D 메일을 보낼 준비를 한다. 마유리가 쓴 메일 문장은 심플, 그 자체.

- 『오뎅캔은 말야』
- 『뜨뜻하고』
- 『맛있어!』

- 이걸로 마유리의 선택이 오뎅캔으로 기울기를 빌자. 마유리가 라면캔을 다 먹기를 기다려서, 전화렌지(가칭)를 기동했다. 1시간 전으로 보내기 위해서 타이머에 설정한 수치는 “1#”. 즉 데우는 시간은 불과 1초 뿐이다. 이 시간으로 방전 현상이 일어날 것인가. 이것 역시 처음으로 도전하는 실험이었다.

린타로 : 전화렌지(가칭), 기동!

마유리 : 아아―, 메일 아직 못 보냈어― …

- 눈을 깜빡일 시간조차 없었군…

크리스 : 1초론 방전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인가. 데이터대로긴 하지만 귀중한 실증 데이터를 얻었어.

이타루 : 이거 말야, 예를 들어 사전에 예열 같은 걸 해 두면 어떻게 될까?

크리스 : 예열?

이타루 : 그러니까 말야, 1초론 방전 현상이 안 일어나는 거잖음. 그러니까 사전에 메일을 보내지 않고 30초 정도 렌지를 움직여 두는 겅미. 그 다음에 곧바로 타이머 1초로 다시 한 번 움직임둥. 그러면 1초만으로도 방전 현상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음?

크리스 : 근거는?

이타루 : 없슴다.

린타로 : 에에이, 마유리여, 뭔가 다른 건 없는 거냐!?

마유리 : 어, 으음― 그럼 어제 샀던 주먹밥 내용물을 다른 걸로 한다거나― …

린타로 : 넌 어제 먹었던 주먹밥의 종류를 기억하고 있냐?

마유리 : 가다랭이.

크리스 : 고, 곧바로!?

-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유리 : 그러니까 말야, 가다랭이를― 음― 명란젓으로 하자―♪

- …다른 실험 대상을 찾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랩 멤버 네 사람이 머리를 맞댔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내가 바라는 실험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것도 당연했다.

게임/슈타인즈_게이트/04장_1.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1/07/03 02:58 저자 LeD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