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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슈타인즈_게이트:04장_5

4장 : 몽환의 호메오스테이시스 (5)

린타로 : …그래서?

- 나는 걸어가며 답답한 마음에 중얼거렸다.

린타로 : 어째서 너희까지 따라오고 있는 거지?

- 내 뒤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마유리와 통이가 따라오고 있었다. 참고로 크리스는 빈 랩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마유리 : 그치만, 마유시―는 페리스네 집에 놀러 가 본 적이 없는걸. 한 번 가 보고 싶은데― 하고 생각했었어― 에헤헤―♪

이타루 : 랄까 페이리스땅의 프라이빗한 사정이랄까… 이건 흥할 수밖에 없잖아, 상식적으로.

- 페이리스 스토커를 데리고 가는 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위험할지도 몰라… 뭐 좋아. 페이리스가 싫다고 나오면 집에 도착했을 때 쫓아내 버리면 되니까. 난 페이리스가 IBN 5100을 찾아 주기만 한다면 달리 어떻게 되든 상관은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지금부터 향하는 야나바야시 신사에 IBN 5100이 있다면 필요 없어지는 일이고.

- 신사에 가 봤지만, 루카코의 모습은 없었다. 방금 전화를 받은 건 외출한 장소였던 걸까. 어쩔 수 없이 신사 옆에 따로 지어져 있는 사무소의 벨을 눌러서, 루카 아빠를 불러내기로 했다. 야나바야시 신사에 IBN 5100이 봉납되어 있는지를 확인해 보자, “확실히 있었다”라고 했다. 그러나 다시 찾아 보니까 아무 데도 없다고 했다. 어째서 없는 걸까, 하고 루카 아빠는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전에 나한테 IBN 5100을 빌려 준 것에 대해서 물어봤지만, 그 사실 자체가 그의 기억에서 사라져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야나바야시 신사를 뒤로 하고 페이리스 집으로 향하며 나는 생각해 보았다. IBN 5100이 홀연히 사라졌다. 불과 며칠 전까지 랩에 있었는데. 그리고 야나바야시 신사에서도 IBN 5100이 사라졌다. 마치 그걸 찾고 있는 날 비웃는, 하늘의 장난 같았다. D 메일에 의한 과거 변경이 영향을 미쳤다는 건 틀림없는 것 같지만. 뭐가 어떻게 영향을 미친 건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쨌든 간에 이렇게 된 이상 페이리스한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 주말이고 해서 아키바 역 앞에는 사람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메이드나 세일러복을 입은 코스튬 플레이 점원들이, 오늘도 열심히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이렇게 더운 날에 참 고생도 많군.

린타로 : 음…?

- 멜라닌 색소를 늘리며 걷고 있던 나는, 문득 발을 멈추었다.

마유리 : 왜 그래―?

- 길가에 앉아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핸드폰을 열심히 조작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은 아무리 봐도 랩멤버 넘버 005, 아니, 지금은 어떻더라? 마유리나 통이의 기억에서 모에카에 관한 기억이 날아가 버렸으니까. 라는 건, 랩멤버로 집어넣지 않았다는 게 되는 건가? 뭐, 그런 건 어찌됐든 상관없어!

린타로 : 이 무슨 행운인가!

- 지압사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나는 황급히 달려갔다.

린타로 : 어이, 지압사!

- 말을 걸었지만, 자기 세계에 빠져든 모양으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모에카 : 아이비엔… 아이비엔… 아이비엔… 없어없어없어… 왜 없는 거야… 왜 아무데도… 이 아키바에, 진짜 있는 거야… 혹시나 벌써…?

린타로 : 듣고 있나, 샤이닝 핑거(섬광의 지압사)!

모에카 : …어딘가에… 어딘가에, 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이상해… FB는, 있다고…

- 반응 없음.

린타로 : 키류 모에카!

- 모에카가 중얼거리던 게 딱 멈췄다. 드디어 고개를 들― 것 같았지만, 결국 내 발치를 바라보는 정도로 그쳤다.

모에카 : …오카베군?

린타로 : 너, 랩에서 IBN 5100을 가지고 갔나?

- 내 등 뒤에서 마유리나 통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린타로 : 나는 네 짓이라 생각하긴 싫다. 동료니까 말야. 하지만 넌 그 PC에 이상한 집착을 보였지. 어때? 했냐, 하지 않았냐.

모에카 : IBN 5100, 찾았어…?

린타로 : 찾았지만, 사라졌다.

모에카 : 사라졌어…?

린타로 : 걱정 마라. 했다고 해도 널 경찰에 찌르거나 하진 않을 거다. 그걸 돌려주기만 한다면 말야.

모에카 : …?

- 언제나 표정이 없던 모에카가, 웬일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린타로 : 모르는… 건가?

- 모에카는 살며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리고 고개를 떨구더나 핸드폰을 고속으로 조작하기 시작했다.

- 받은 메일함
날짜 8/7 15:41
from 섬광의 지압사
sub 무슨 말이야?
1%도 이해 못 하겠어. 제대로 설명해 줘. IBN 5100을 정말로 발견한 거야? 어디서? 모에카.

- 정말로… 모른다? 내부의 범행이라면 모에카가 수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야나바야시 신사에서도 IBN 5100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하면 모에카의 범행이라는 건 거꾸로 부자연스럽게 여겨졌다. 역시 D 메일에 의한 과거 변경의 영향인가…? 아니면 SERN에 의한 조직적인 움직임이거나.

린타로 : 미안하군, 지압사여.

- 나는 모에카의 정면에 앉아서, 고개를 숙였다.

린타로 : 나는 랩멤버인 너를, 동료를, 의심하고 말았다…! 최악의 남자로군. 날 때려도 상관없어. 하지만, 이것만은 이해해 줘. …나는 “기관”에 계속해서 생명의 위협을 받은 결과,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렸어…

- 침울한 마음으로 자신을 비웃었다.

린타로 : 나는 항상 의심에 가득 차서… 아무리 동료에게 둘러싸여 있더라도, 언제나, 고독을 느끼고 있지… 웃기는 소리야…

- 받은 메일함
날짜 8/7 15:44
from 섬광의 지압사
sub 됐으니까
IBN 5100에 대해서 이야기 해 줘. 모에카.

린타로 : 내, 내 이야긴 완전히 무시냐…

이타루 : 랄까 오카린 말야, 아키바 길 한복판에서 그런 쑈는 왜 하고 앉았음. 더위라도 먹은 겅미?

린타로 : ……

- 모에카 역시 내가 IBN 5100을 입수한 것을 몰랐다… 그리고 저 상태를 보건대, 저 녀석 자신도 손에 넣은 것 같지는 않았다. 더욱 더 IBN 5100의 행방은 혼미하게 되어가고 있었다.

마유리 : 예전부터 생각한 건데― 모에카씨 말야, 예쁜 사람이야― 스타일도 좋고, 키도 크고― 코스튬 플레이를 시키면, 빛날 것 같아― 에헤헤―

린타로 : …뭣… 이?

- 한 순간, 귀를 의심했다. 나는 마유리에게 다가가서,

린타로 : 너, 모에카를 알고 있어?

마유리 : 알고 있지―?

린타로 : 어째서 알고 있냐!?

- 어깨를 붙잡고 흔들자, 마유리의 머리가 앞뒤로 흔들흔들 움직였다.

마유리 : 어~~ 아~~~? 오~ 카~ 린~ 이~, 데~ 려~ 왔~ 잖~ 아~?

린타로 : 내가… 통이는? 저 여자를 기억하고 있나?

이타루 : 키류씨라면 전에 랩에서 인사했었음.

린타로 : ……

- 이전, 모에카가 D 메일을 보낸 직후에는 마유리도 통이도 크리스도, 모에카라는 존재에 대해서 마치 만난 적이 없는 것 같은 행동을 보였었다. 하지만 지금 마유리도 통이도 알고 있다고 한다. 모에카에 대해서, 또 과거가 재구성된 걸까. 그리고 그 원인은 타이밍에서 생각해 볼 때 루카코의 D 메일 이외에는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루카코의 D 메일은 “야채를 많이 먹어라”하고 어머니한테 전한 것. 그 D 메일이 뭘 어떻게 해서 랩멤버가 모에카를 알고 있는지, 아닌 건지로 연결되는 거지? 이것도 나비 효과인가… 결과에 대한 원인을, 전혀 예상할 수 없다.

마유리 : 저기 저기 오카린. 그보다 슬슬 페이리스의 집에 가야지, 분명히 기다리고 있을 텐데―?

- 그랬지. 모에카 건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을 들여 생각해 볼 수밖에. 그렇고 하니, 메모장에 써 둔 주소가 어디 있는지 찾아 보기로 했다.

린타로 : 그런데 마유리. 페이리스의 본명은 뭐지?

이타루 : 뭐야, 바보냐, 오카린 무슨 소리야. 페이리스땅의 본명은 페이리스 냥냥이잖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잖어.

린타로 : 현실 도피하지 마라, 통이. 페이리스 냥냥은 어차피 예명이지.

이타루 : 우와, 최악이에요… 이 무슨 순진한 남자들의 꿈을 부수려 하는 발언입니까.

- 헛소리가 시작되었다. 상대해 줄 순 없지.

린타로 : 그래서, 마유리. 어때? 모르나?

마유리 : 저기, 마유시―가 가르쳐 줘도 되는 걸까?

린타로 : 별달리 이야기하지 말라고 못박은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이제부터 본인 집에 가는 거니까 금방 알 수 있을 거다.

마유리 : 아, 그런가― 그렇구나― 대신 말야,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이야―? 예를 들어 메이퀸에 오는 주인님들이라든가.

-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유리 : 저기 말야, 페리스의 본명은 아키하 루미호(秋葉留未穂)라고 해―

이타루 : 아― 아― 안 들려요―

- 통이는 두 귀를 손으로 막고서 아― 아― 거리고 있었다.

린타로 : 아키하… 라.

- 아키바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로군.

- 그런 식으로 도착한 장소는, UPX의 바로 옆에 있는 고층 맨션이었다.

마유리 : 와아아… 대단해애애애…

이타루 : 우와… 레알임?

린타로 : 초 고급 맨션… 이라고…?

- 우리는 놀란 나머지 잠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더군다나 방금 페이리스의 전화에 따르면, 이 맨션의 가장 꼭대기 층에 살고 있는 모양이던데…

린타로 : 주소를, 잘못 들었나…?

- 아니,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할 내가 아니다.

린타로 : 설마 페이리스는 “기관”의 손아귀에 떨어진 건가!?

- 나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수상한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린타로 : 수상한 검은 양복 일당의 명령을 받아, 나를 조직의 포위망 안으로 불러들여, 일망타진 하겠다는 건가!?

이타루 : 망상 ㄳ. 현실은 소설보다 기이한 법. 그리고 그 페이리스땅의 맨얼굴이, 실은 부잣집 아가씨였다는 거잖아, 우햐, 레알 쩌는 전개잖슴?

린타로 : 너야말로 망상 ㄳ다.

마유리 : 어쨌든 들어가 보자―

- 오토록을 이용해서 맨 윗층의 방 번호를 호출하자, 초로의 남자 목소리가 대답해서는, 거기에 호오인 쿄마라고 이름을 대자 곧바로 들어올 수 있게 해 준 데에서 놀라고 말았다. 점점 더 함정이라는 예감이 들었지만, 이제 돌이킬 수는 없다. 방 안으로 안내해 준 것은, 인터폰으로 대답했던 초로의 남자였다. 턱시도를 입은 은발의 신사.

마유리 : 지, 진짜 집사분이야…

- 마유리 말대로, 정말로 빈틈없는 집사라는 듯한 모양새로, 실제로도 집사였다.

집사 : 아가씨. 호오인 쿄마님과 그 친구 분들이 방문하셨습니다.

- 집사가 방 안쪽을 향해 말을 걸었다. 아키바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커다란 창문을 등지고, 페이리스가 서 있었다.

페이리스 : 쿠로키, 고마워냐옹.

- 항상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것밖에 본 적이 없어서, 사복 모습이 신선해 보인다. 그런데 어째서 일상적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고양이 귀는 장비하고 있는 거지? 물어보고 싶다. 정말로 질문하고 싶다. 하지만 꾹 참았다. 만일 한 마디라도 물어본다면, 페이리스는 당연히 “고양이 귀는 페이리스가 태어났을 때부터 나 있었다냐옹” 같은 소릴 강경하게 주장하겠지.

페이리스 : 냐냐옹? 마유시―하고 통이냥도 왔어냥?

- 내 뒤에 있는 마유리와 통이를 보고, 페이리스는 눈을 깜빡거렸다.

마유리 : 페리스, 안녕 냥냥―♪

이타루 : 우홋, 페이리스땅의 사복 차림이라니… 너무나 긔엽긔…!

- 흥분하고 있는 통이를 닥치게 하고자, 옆구리에 팔꿈치를 먹여 주었다.

린타로 : 마유리와 통이는 멋대로 따라온 거다. 문제가 있다면 돌려보내지.

페이리스 : 상관없다냐옹. 모두 잘 오셨다냥♪

린타로 : 랄까, 집에서도 그 어미를 붙이는 거냐?

페이리스 : 무슨 말이냐옹?

린타로 : 그렇게 계속 시치미 뗄 셈이냐, 아키하 루미호.

페이리스 : 페이리스는 페이리스냐옹.

- 귀찮으니까 그런 걸로 해 두자.

린타로 : 그런데 이 집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아키바에서 가장 비싼 땅에 있는 초 고급 맨션이라니.

- 방 안을 다시 둘러보았다. 인테리어도 전등 등도 모두 다 세련된 물건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부잣집 분위기는 나지만, 천박한 느낌은 없었다. 라기보다, 어쩐지 모델 하우스 같은 느낌이었다. 생활감이 전혀 없는 건, 저 집사, 아니면 진짜 메이드― 집사가 있다면 메이드도 있겠지― 가 언제나 청소를 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어느샌가 집사의 모습도 사라져 있었다. 소리도 기척도 없이 자리를 뜨다니, 집사의 귀감 같은 사람이군.

린타로 : 페이리스… 넌 도대체 정체가 뭐냐?

페이리스 : 그러니까 페이리스는 페이리스냥.

- 페이리스는 천연덕스레 말했다.

린타로 : 시치미 떼지 마라. 제대로 설명하지 않겠다면, 돌아가겠어!

이타루 : 이, 이 얼마나 거만한 태도란 말인가… 우린 페이리스땅에게 부탁하러 온 입장 아니었음…?

페이리스 : 흐냐옹… 그럼 조금만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이 주변 토지는 원래 우리 가문 것이었다냐옹.

린타로 : 하아?

- 지금, 뭐라고…? “이 주변 토지는 원래 우리 가문 것이었다”…?

마유리 : 그런가― 그래서 아키하씨로구나―

- 마유리의 말에 나는 순간 떠올랐다.

린타로 : 아키하라는 성씨… 설마 아키하바라에 대대로 있었던 토지 주인 이름이라는 거냐―!?

- 페이리스는 조금 자랑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엄청난 부잣집 따님이고, 이런 고급 맨션에 사는 것도 납득이 간다.

페이리스 : 참고로 페이리스는 아키바의 도시 개발 계획에도 상당한 발언력을 가지고 있다냥.

- 페이리스는 호리호리한 허리를 살짝 구부리고는 고양이가 얼굴을 닦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페이리스 : 아키바의 각 가게에 모에 문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도록 부탁한 건, 다름아닌 페이리스냐옹.

마유리 : 와― 대단해―

페이리스 : 페이리스는 어릴 적부터 그런 회의에 나가곤 했다냐옹.

- 즉 지금 아키바는, 이 고양이녀의 취미 때문에 이 정도까지 혼돈스러워졌다는 것인가.

- 페이리스, 무서운 아이…!

페이리스 : 그치만 그치만, 방금 이야기는 비밀로 해 줬음 한다냥.

- 얼핏 페이리스의 표정에 그늘이 진 것처럼 보였다.

린타로 : 어째서지?

페이리스 : 알고 싶으냐옹?

- 페이리스는 내게 접근해 왔다. 그 표정에 요염한 빛이 떠올랐다.

페이리스 : 그건―

- 내 뺨에, 페이리스의 가늘고 차가운 손가락이 쓱 하고 스쳤다. 매료되어 버리고 만 날 보며, 페이리스는― 빙긋 웃었다.

페이리스 : 페이리스는 페이리스이기 때문이다냐옹―♪

- 이러언, 날 바보 취급 하다니 이 고양이녀가아아…!

페이리스 : 그런 관계로, 다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페이리스 LOVE인 팬으로 대해 줬으면 한다냥☆

- 아양 떨고 있는 페이리스를 보고서, 왠지 통이는 V자를 그려 보이고 있었다.

이타루 : 대하겠습니다 전력으로 대하겠습니다!

마유리 : 마유시―도 말야, 페리스의 팬이야― 페리스의 메이드 혼은, 완전 엄청난 걸. 동경하게 돼―

- 통이도 마유리도 완전히 심취해 버린 듯 하지만, 내겐 이론이 있었다.

린타로 : 난 페이리스 LOVE 따위가 아냐!

- 팍 하고, 페이리스의 코앞에 손가락을 내뻗었다.

린타로 : 너무 기세등등하지 말아 주실까, 페이리스 냥냥. 그렇지 않으면 이 고급 맨션 전체가 피바다가 될 거다. 일부러 집에 불러서 자기가 얼마나 부잔지 보여 주는 걸로, 이 나하고 교섭하는 데 있어서 정신적인 우위를 점하려는 모양이지만, 그건 헛수고다. 왜냐하면 나는 광기의 매드 사이언티스트, 호오인 쿄마이기 때문이다!

이타루 : 그, 그게 무슨 이유가 돼…

- 훗, 완벽하군. 이걸로 페이리스는 “히이이익”거리고 덜덜 떨면서 내게 용서를 빌게 되겠지. ―하고 생각했더니, 거꾸로 눈을 빛내며 날 보고 있었다.

페이리스 : 하냐~옹♪ 스스로의 신념을 관철하는 사람은, 멋지다냥.

이타루 : 뭐… 라고…?

- 나도 말하고 싶다. “뭐… 라고…?”하고. 겁을 줄 생각으로 한 말인데 거꾸로 기뻐하다니. 그렇다는 건 페이리스 녀석, 매저키스트인가…!

페이리스 : 솔직하게 말하면, 페이리스 자신에 대해선 그다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냐옹. 지금까지 여러 사람하고 만나봤지만, “아키바의 소유자”라고 이야기하면 모두 다 페이리스를 페이리스로 보지 않게 된다냐옹. 페이리스와 아키하 루미호는, 나누어서 봐 줬음 한다냐옹.

린타로 : 나누고 말 것도 없이, 넌 이미 “페이리스 냥냥”으로 확립되어 있지 않나.

페이리스 : 냐옹?

이타루 : 그 점에 대해선 전면적으로 동의해 오카린! 냥냥 어를 말하며, 고양이귀를 달고 있는 시점에서, 거기 있는 건 페이리스땅이다!

린타로 : 그걸 너무 의식하는 건 네 쪽이라는 거다, 페이리스.

페이리스 : 그런 걸까냐옹…

린타로 : 넌 자의식 과잉인 거다. 내게 있어서 넌 어쨌든 간에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고양이귀 메이드일 뿐이다!

페이리스 : 냐하하, 고맙다냐옹, 쿄마.

- 나, 감사 인사를 받을 만한 소릴 했나? 아니, 아마도 내가 인간적으로 도량이 큰 것에 페이리스는 감복한 거겠지. 후하하하! 그럼 쓸데 없는 이야기도 끝나고 했으니, 본제로 들어가 볼까.

린타로 : 그보다 페이리스여. IBN 5100을 찾는 대신 네가 요구하는 교환 조건은 대체 뭐지? …잘 음미하고서 조건을 제시하도록 해라. 내 오른손은… 한 번 풀려나면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마지막에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 라고만 해 두지.

페이리스 : 괜찮다냐옹.

- 페이리스는 자기 머리에 나 있는 고양이귀를 가리켰다.

페이리스 : 이 고양이귀에는 모든 능력을 완전 무효화하는 『냥냥 클리어』라는 힘이 갖춰져 있다냐옹. 쿄마의 힘이 폭주했을 땐 페이리스가 분명 막을 수 있을 거다냐옹.

린타로 : ……

- 역시 페이리스한테 이런 쪽 이야길 하면 안 되겠군… 페이리스의 진정한 무서움,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억지로 빼앗아, 자신의 “설정”을 덧씌워 나간다는 능력, 즉 『더빙10』에 있다고 하겠다. 참고로 『더빙10』은 내가 지은 이름이다. 10이라는 숫자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

페이리스 : 그러면 슬슬 발표하겠다냐옹. 페이리스가 제시하는 조건은―

- 페이리스는 살짝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난 눈치 챘다. 그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페이리스 : 타임머신을 사용하게 해 달라는 거다냐옹.

- 옳거니… 어느 정도 예감은 하고 있었다.

페이리스 : 어제 메이퀸에서 쿄마가 이야기를 했지 않냐옹? 타임머신을 개발했다고.

린타로 : 그렇고 말고.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타임머신 실험을 이미 성공시켰다.

이타루 : 그러니까 인류 역사상 최초는 SERN이라니까…

린타로 :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타임머신이라 해도 책상 서랍을 탑승구로 하는, 파란 고양이 전용의 다다미 4개 반 타임머신 정도로 만능은 아니다. 우리가 성공시킨 건 과거의 누군가에게 핸드폰으로 18글자까지 메일을 보낼 수 있는 수준이다. 단, 이것만으로도 노벨 물리학상 감이며, 인류 역사를 바꿔 쓸 초절 슈퍼한 발명이긴 하지만.

페이리스 : 과거의 누군가에게 메일을 보내? 그건 정말이지 대단하다냐옹! 페이리스도 꼭 쓰게 해 줬으면 한다냐옹!

- 페이리스는 기쁜 표정이 되어선, 그 자리에서 깡총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린타로 : 타임머신은 우리 랩의 최고 중요 기밀 사항이다. 꼭 사용해 보고 싶다고 한다면, 랩멤버가 될 필요가 있다.

페이리스 : 랩멤버? 란 건 뭐다냐옹?

마유리 : 저기, 마유시―하고 같은 동호회에 들어온다는 거야―♪ 마유시―는 말야, 페리스가 랩멤버가 되어 주면 정말 기쁠 것 같아―

이타루 : 이쪽도 동감! 이랄까 대! 환! 영! 부디 들어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리스 : 어떻게 하면 랩멤버가 되는 거냐옹?

린타로 : 계약서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한 건… 그래, 계약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피의 맹약 뿐이지.

페이리스 : 피의… 맹약…!

- 창문을 닫아 잠근 상황인데도,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에어콘 바람이었다. 하지만 문득 창 밖의 하늘을 바라보자, 먹구름으로 뒤덮혀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고고고고고…” 정도의, 하늘에서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린타로 : 그대, 페이리스 냥냥이여. 태고서부터 하이 엔시언트 워드(초고대어)로 계승되고 있는 법전에 따라, 랩멤버에 참가하겠다는 것을 바란다면― 그 살, 그 뼈, 그 피를 하늘의 잔에 바칠 것을 맹세하고, 맹약이라는 이름의 세례를 받아들여라. 그러면 고대의 신은 거기에 응하여, 그대에게 랩멤버 넘버를 줄 것이노라.

이타루 : 무슨 소릴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마유리 : 우와왓― 어쩌지, 마유시―는 피의 명약도 양약도 안 먹었어― 그렇다는 건 마유시―는 랩멤버가 아닌 걸까…

이타루 : 마유시, 풀죽지 않아도 OK임. 이건 오카린이 항상 하는 그 버릇이니까.

마유리 : 그런가― 항상 하는 그 버릇이라면 어쩔 수 없네♪ 그치만 잘 됐어―

페이리스 : 알겠다냐옹. 피의 맹약을 받아들이겠다냐옹…

- 페이리스는 진지한 표정을 짓는가 했더니,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작은 나이프를 쥐고선―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손목에 가져다 대고서 재빠르게 옆으로 그었다.

린타로 : ―!?

마유리 : 안 돼!

이타루 : 아냐, 페이퍼 나이프잖아?

페이리스 : 냐하하♪ 통이냥 말 대로냐옹~

- 큭, 놀래켜 주다니…! 나는 헛기침을 해서 마음을 다잡았다.

린타로 : 그럼 페이리스, 널 랩멤버 넘버 007로 인정하겠다.

페이리스 : 알았다냐옹. 이걸로 타임머신을 쓸 수 있는 거냐옹?

린타로 : 그래, 그렇게 되지. 단 딴 데 가서 발설하지 마라. 배신자에게는 죽음을. 이것이 우리 랩의 철칙이란 걸 기억해 둬라.

마유리 : 그랬구나―

이타루 : 그러니까 오카린이 바로 여기서 떠올린 거라니까.

페이리스 : 고― 마― 워― 냐옹, 쿄마!

- 페이리스가 내 목을 껴안았다. 굉장히 달콤하고 좋은 향기가, 내 코 끝을 간지럽힌다. 거기다, 엄청나게 부드럽고…

이타루 : 잠깐, 오카린 이 자식―! 나도 전화렌지를 만들었는데―!

페이리스 : 그랬어냐옹? 그러면 통이냥한테도!

- 페이리스는 통이에게 뛰어들었다.

마유리 : 오카린 오카린. 페리스가 기뻐해 줘서, 잘 됐어♪

린타로 : 쿡쿡쿡… 마유리, 넌 정말이지 순진하군.

마유리 : 후에?

- 나는 내 핸드폰을 꺼내 들고서 귀로 가져갔다.

린타로 : …나다. …그래, 페이리스는 완전히 내 계략에 빠졌지. 어차피 17살 짜리 계집애니까 말야. 그 고양이녀는, 나하고 교환 조건이라는 걸로, 인류의 꿈, 금단의 열매인 타임머신을 사용한다고 하는 욕망을 채웠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나, 호오인 쿄마의 손바닥 위에서 춤추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고 있지. …훗, 내가 고양이녀의 조건을 받아들인 이유 말인가? 그런 건, 당연하잖아? 그건―

- 거기서 난 싱긋 하고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틀림없이 이 순간, 내 긴 송곳니가 번뜩 하고 괴이하게 빛났을 거다. …긴 송곳니 같은 건 없긴 하지만.

린타로 : 저 고양이녀는 실험 대상이거든. …뭣이? 인간도 아니라고 비난하는 건 좀 너무하군. 뭐,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쿡쿡쿡.

마유리 : …?

- 아직도 제대로 된 실험 데이터를 얻어내지 못한 D 메일. 크리스는 피실험자가 되는 걸 거부하고, 마유리하고 통이는 바보스런 이유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모에카하고 루카코로 실험은 했지만, 좀 더 데이터가 필요하다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에 이러한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실험 데이터와 IBN 5100. 난 그것을 페이리스한테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일석이조! IBN 5100을 잃어버린 쇼크에서, 난 완전히 회복했다.

린타로 : …그래. 즉 페이리스는, 우리를 이용할 생각이겠지만― 사실은 반대로, 스스로 불섶으로 뛰어든 한 여름의 벌레 같은 상태란 거지. 후하하하! …그럼 예정대로 다음 실험으로 이행하겠다. 모든 것은 슈타인즈 게이트(운명석의 문)의 선택이다. 엘 프사이 콩그루.

- 핸드폰을 집어넣자, 등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찌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러더니 곧바로 귀에 숨을 불어넣는 게 느껴졌다.

린타로 : 으헉!?

페이리스 : 지금 누구하고 전화한 거냐옹?

- 통이한테 서비스를 끝낸 페이리스가 어느새 내 등 뒤에 서 있었다. 아무래도 모두 다 들었던 것 같았다.

린타로 : 눈치 채는 게 늦었군, 페이리스 냥냥. 이미 피의 맹약은 이루어졌다. 계약을 깨면 너라는 인간에게 파멸이 찾아올 테지. 이제 도망칠 수는 없다.

페이리스 : OK냐옹. 그런데 타임머신은 어디 있냐옹?

- 무척이나 서두르는군…

린타로 : 타임머신― 정확히 말해 전화렌지(가칭)라고 하지만, 그건 우리 랩에 있다.

- 이번에는 전화렌지(가칭) 본래의 사용 방법을 응용해 보자. 즉 원격 조작이다. 랩은 크리스가 지키고 있었지. 전화렌지(가칭)의 설정은 그 조수가 하면 될 것이다. 페이리스에게 어떤 메일 주소로 보낼지를 물어보니, 10년 전의 아버지한테 보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주소를 메모해 두었다. 보내는 곳은 10년 전, 2000년 4월 3일. 반드시 그 날의 오전 8시로 보내고 싶다고 해서, 인터넷을 이용해 윤년도 계산, 86168시간이라는 결과를 냈다.

마유리 : 엇, 그렇다는 건 말야, 8만 6천 초나 계속 작동시켜야 한다는 거야―? 전화렌지, 피곤해 하지 않을까―?

린타로 : 아니, 실제로 그 초수 만큼 움직이는 건 아냐.

- 여태까지의 실험에서, 그게 어떤 식으로 되는 건지는 이해하고 있다.

린타로 : 방전 현상이 일어난 시점에서 보내면, 과거에 도착하는 거야. 그러면 나비 효과에 의해 남은 초 수 만큼은 취소될 거고.

- 지금까지의 패턴으로는 “D 메일을 보냈다”라는 사실이 사라지고, 받는 사람에게 보낸 D 메일 만이 남는 것이다. 그럼 크리스에게 전화를 할까.

크리스 : 헬로우―

린타로 : 나다. 그쪽 상황을 전달해 다오.

크리스 : ……

린타로 : 이 녀석이…! 끊어 버리다니!

이타루 : 그거야 당연히 끊겠지. 오카린이 전화하는 방식에 대응할 수 있는 건 아마 나하고 마유씨 정도 아닐까?

- 다시 한 번 걸어 주마…!

크리스 : 헬로우―

린타로 : 호오인 쿄마다. 아무 말 없이 끊지 마라.

크리스 : 뭐야, 오카베였어. 난 영락 없는 장난전화라고 생각했어.

린타로 : 이쪽 번호가 표시될 텐데!?

크리스 : 갑자기 의미 불명인 이야길 하면, 누구든 무서워서 끊게 될 거야.

린타로 : 그건 즉, 이 나, 호오인 쿄마의 광기에 공포를 느꼈다는 거로군. 그거라면 어쩔 수 없―

린타로 : 이 녀석, 또 끊었어! 또 끊었다구!

이타루 : 그러니까 오카린의 전화에 대응하는 스킬은, 나하고 마유씨만이 가지고 있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 성질이 뻗쳐서 리다이얼.

크리스 : 헬로우―

린타로 : 오카베 린타로입니다만, 전화렌지(가칭)의 설정을 조금 해 주셨으면 합니다.

크리스 :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 음― 그치만 전화렌지 쓸 거야? 브라운관 공방 점장님한테 혼나는 건 싫은데.

린타로 : 이건 귀중한 실험을 위한 거다. 알겠나 조수여. 네가 미스터 브라운에게 혼난다, 단지 그 정도의 희생만으로 타임머신이라는 인류의 꿈은 완성되는 거다.

크리스 : 정말이지 당신은 참 적당주의야. 그래서? 어떻게 설정하면 돼?

- 메모해 둔, 페이리스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메일 주소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타이머도 설정하게 했다.

크리스 : 응, 입력했어.

린타로 : 좋아, 수고했다. 잠깐만 기다려.

- 나는 페이리스를 돌아봤다.

린타로 : 보낼 문장은 다 썼나?

- 이미 페이리스에겐 전화렌지(가칭) 전용 핸드폰의 메일 주소를 가르쳐 주었다. 내 질문에 페이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린타로 : 어떤 내용이지? 과거를 바꿀 만한 거겠지?

페이리스 : 그, 그건 저기…

- 뭐지? 여느 때 같은 당당한 태도가 쏙 들어가 있는데…

페이리스 : 부, 부끄럽다냐옹! 기업 비밀이다냥!

린타로 : 비밀이라고!? 웃기지 마라, 이건 실험이야! 내용을 공개해 주지 않는다면, 데이터를 검증할 수 없게 되잖나!

페이리스 : 무슨 소리냐옹! 이건 실험이 아니라 교환 조건이다냐옹! 페이리스는 실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타임머신을 쓸 거다냐옹!

린타로 : 비겁하다!

이타루 : 오카린이 그런 소릴 할 자격이 있음둥?

- 큭, 통이 녀석, 페이리스 편에 붙을 셈인가! 여자에 약한 슈퍼 하커 녀석이! 페이리스는 온 몸으로 가리듯, 핸드폰을 숨기고 있었다. 절대로 보여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실험을 일시 중지해야 하나…!?

크리스 : 이봐 오카베.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야?

- 전화 저편에서 크리스가 답답한 듯 목소리를 키웠다. 젠장, 그렇게 서두르지좀 말라고!

마유리 : 오카린, 저기 말야, 분명히 개인적인 내용인 거니까 들여다 보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

- 이, 이럴 수가… 마유리까지 페이리스 편을 들겠다는 건가… 이 녀석은 모에카 때에도 그랬지.

린타로 : 으으음…

- 내게 불리한 상황이다… 이건 페이리스를 손바닥 위에서 놀리는 게 아니라, 놀려지고 있었던 게 나라는 식이 되어 버리잖아!

크리스 : 오카베―? 대답 안 하면 끊겠어―?

린타로 : 기, 기다려…! 알겠다, 전화렌지(가칭)를… 기동해라…

- 젠장, 이 내가 고양이녀 따위에게 굴복하게 될 줄이야!

크리스 : 방전 현상이 시작되었어.

- 크리스의 보고를 받고, 나는 페이리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페이리스가 핸드폰의 확인 버튼을―

페이리스 : 딸깍 냐옹!

- 0.409420

린타로 : ……

- 천천히 어지러움이 물러가고, 내 목에서부터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럼, 세계여, 변모한 그 모습을 내 앞에 나타내도록 하라…! 라고 해도, 페이리스가 어떤 메일을 보낸 것인지 결국 알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나. 장소는 여전히 페이리스의 집이었다. 나는 창가에 서 있었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자, 아키바 전체를 전망할 수 있었다. 방 안으로 시선을 돌려 보았다.

이타루 : 그럼 카드를 오픈.

마유리 : 우와아― 또 바이러스 카드?

페이리스 : 아직 마무리가 허술한 거다냥♪

마유리 : 하으… 링크 카드를 3장 빼앗겼네? 바이러스 카드는 3장 뽑았고? 마유시―는 지금, 절체절명이에요…

- 이 녀석들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세 사람 다 테이블을 맞대고 앉아서, 거기에 놓여진 무언가가 움직이는 걸 가지고 일희일비 하고 있었다.

이타루 : 아직 터미널 카드가 있잖음. 다음 턴에 일발 역전을 노릴 수 있다니까 레알로.

페이리스 : 냐후후~♪ 지금와서 역전은 무리무리냐옹. 여기서 페이리스는 터미널 카드 『바이러스 체커』를 사용할 거다냐옹. 그럼 마유시―의 남은 바이러스 카드는 어느 쪽일까냐옹~?

마유리 : 아으~

이타루 : 촘 짱인듯, 페이리스땅.

마유리 : 저, 저기, 한 턴만… 저기, 할 수 있으면 두 턴이나 세 턴 정도 기다려 달라냐옹― 안 될까냐옹―?

페이리스 : 냐핫♪ 페이리스를 흉내내도 안 된다냥.

마유리 : 너무해.

- 두 눈에 손가락을 가져가선 우는 시늉을 하는 마유리. 아무래도 라이넷 억세스 배틀러즈를 플레이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린타로 : ……

- D 메일을 보내기 전과 후에 연속해서 기억을 유지하는 건 전 세계에서 나 한 명 뿐이다. “리딩 슈타이너”는 틀림없이 발동했다. 즉 페이리스의 D 메일은 세계에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순 전까지 D 메일을 보내기 위한 자세를 잡고 있던 세 사람이 갑자기 한가하게 카드 게임을 하고 있는 것도, 과거가 변경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페이리스가 D 메일을 보냈다”라는 사실은 소멸했다… 아마 페이리스의 핸드폰을 봐도, 메일 발신 리스트에 D 메일에 해당하는 건 없겠지. 지금 눈앞에서 라이넷을 플레이 하고 있는 페이리스한테 “어떤 메일을 보냈지!?”하고 물어본다고 해도, 페이리스는 대답하지 못할 거다. 보낸 사실 그 자체가 사라져 버렸을 테니까. 흔적은 D 메일을 보낸 상대― 즉 10년 전 페이리스의 아버지가 가진 핸드폰에밖에 없을 거다. 그렇지만 분명 10년이나 전의 메일 데이터 같은 건 이미 지워버렸을 테지. 그러니까 이것도 확인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때문에 세계의 변화는 내가 자력으로 찾아 내는 수밖에 없다. 그럼, 틀린 장소 찾기 시작이다―

마유리 : 하후~ 역시 페리스는 쎄―

페이리스 : 처음엔 마유시―도 괜찮았다냐옹. 소질이 있다냐옹. 그렇지만 설령 연습 시합이라고 해도 디펜딩 챔피온이 질 수는 없다냐옹! 그리고 이번 대회에선 반드시 우승하겠다고 아빠하고 약속했다냐옹! 그 날까지 아무에게도 질 수 없다냐옹!

마유리 : 아빠?

- 페이리스는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페이리스 : 만일 페이리스가 우승하면, 아빠는 일하는 중이라 해도 시간을 내서 반드시 축복하러 올 거라고 말해 줬다냥.

이타루 : 나도 전력으로 축복하고 싶은데, 그 날 밤에 시간은 있어?

페이리스 : 밤에는 아빠하고 둘이서 식사다냐옹.

이타루 : 그, 그래…

마유리 : 저기 말야, 결승전에는 랩에서 모두 다 응원하러 갈게―

페이리스 : 고맙다냐옹―♪

이타루 : 결승 상대는 『바이럴 어태커즈』라는 콤비였지? 대회 시작 당시엔 노 마크였는데, 설마 페이리스땅의 라이벌인 『이디요나』를 깨 버릴 줄이야. 페이리스땅하고 『이디요나』의 듀얼은 항상 엄청났으니까, 이번에도 기대했는데.

페이리스 : 다른 라이네터의 시합은 전혀 보지 않았는데, 『바이랄 어태커즈』가 그렇게 강하냐옹?

이타루 : 뭐, 페이리스땅의 상대는 아냐. 페이리스땅은 최강. 페이리스땅이 절대자!

페이리스 : 냐우~웅♪ 그렇게까지 띄워 주면 부끄럽다냐옹~

린타로 : ……

- 세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나는, 이유 모를 “기분 나쁨”을 느끼고 있었다.

- 뭔가 이상해.

- 이성보다 더 안쪽에 있는 목소리가 내게 속삭이고 있었다. 지금 대화를 되씹어 보자, 곧바로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페이리스는 지금까지 라이넷 억세스 배틀러즈의 공식 시합에 나간 적이 없었을 텐데. 그런데 이제 곧 “대회 결승전”에 출장한다고 한다. 결승이라는 건 준결승까지 이기고 올라왔다는 거다. 즉 페이리스가 변경한 과거라는 건 라이넷의 대회에 나갈 만한 내용이 담겨 있는 건가? 보낸 사람이 아버지였다는 걸 생각해 보면, 원래 페이리스 아버지가 엄하게 그런 대회에 나가는 걸 금지하고 있었다, 라든가… 옳거니, 그거라면 있을 법하군. 하지만 D 메일을 보내서 과거를 변경할 정도의 문제인 건가? 페이리스는 아직 17살이며, 지금부터 대회에 참가한다고 해도 전혀 늦지 않았을 때인데 말이지. 라이넷의 대회에 연령 제한이라도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아니면 가치관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인 건가?

- 그 때 방 문을 누군가가 노크했다. 도어가 반쯤 열리고, 초로의 남성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 진퉁 집사가 아니었다.

페이리스 아빠 : 실례. 루미호, 잠깐 괜찮을까?

페이리스 : 아, 아빠.

- 페이리스는 얼른 일어서선 방에서 나갔다.

이타루 : 우핫, 페이리스땅의 아버님이라… 인사해 둬야 할 것 같은데?

마유리 : 페리스네 아빠 말야, 사장님이시지―? 대단해―

린타로 : ……

- 페이리스는 곧바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듯한 시선을 향했다.

페이리스 : 미안하다냐옹! 페이리스는 아빠하고 나가 봐야하게 되었다냐옹.

마유리 : 그럼 말야― 마유시―는 이제 빠이빠이 할 게―

이타루 : 어엇―? 페이리스땅, 나하고 시합하는 건?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라이넷이 무언지를 강의해 주겠다는 약속은?

페이리스 : 아무도 그런 약속 한 적 없다고 생각하는데냐옹?

이타루 : 예, 그렇고 말고요. 이야기해 보고 싶었을 뿐이라서…

마유리 : 통이, 페리스한테 폐 끼치면 안 돼― 자, 오카린도, 돌아가자―

린타로 : 그래.

페이리스 : 그러고 보니 쿄마는 웬일로 조용했다냐옹. 어떻게 된 거냥?

린타로 : 아니, 아키바를 높은 데서 내려다보며, 기쁨에 잠겨 있었을 뿐이지.

이타루 : 과연 오카린… 의미불명…

- 페이리스와 함께 현관으로 나오자, 아버지나 집사가 배웅하러 나와 주었다. 미중년인 아버지는 “또 놀러 오너라”하고 말하고 배웅해 주었다.

- 페이리스의 아버지, 좋은 사람이었어. 부자가 가지는 특유의 뻐기는 듯한 분위기가 없었다. 해는 기울어져 가고 있었지만 아키바 역 앞에는 아직 사람이 많았다. 외국인의 모습이 여느 때 이상으로 눈에 띄었다. 아키바라는 곳은 일부러 해외에서 가전 제품이나 모에 상품을 사러 올 정도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는 곳이니까. 그건 그렇고, 덥군. 그냥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신에서 땀구멍이 열리는 느낌이다. 페이리스네 집은 에어콘이 빵빵해서 실로 쾌적했다. 랩에도 도입하고 싶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돈은 없다. 모처럼이고 하니 어디서 밥이라도 먹고 갈까. 그렇게 생각하며, 뒤에서 걷고 있는 통이하고 마유리를 돌아보자― 마유리의 모습이 없었다.

린타로 : 음…? 마유리는 어디 갔지?

이타루 : 응? 어라? 그러고 보니 사라졌네.

- 또 스타더스트 셰이크핸드(별똥별하고의 악수)가 발동한 건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역 쪽으로 느긋한 발걸음으로 걸어 가는 마유리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미 거리로는 50미터 이상 벌어져 있었다. 황급히 쫓아갔다.

린타로 : 마유리, 어디 가는 거냐!?

마유리 : 아, 오카린― 저기 말야, 마유시―는 이제부터 집에 돌아갈 건데, 나카노에 들렀다 가려고 해서.

린타로 : 돌아갈 거라면 돌아갈 거라고 이야길 해야지.

마유리 : 엣헤헤― 미안. 그치만, 나카노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더니 말야, 그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 버렸거든요.

이타루 : 마유씨가 낌새를 지우고 사라지는 능력은 이상할 정도임둥.

- 마유리는 자주 이럴 때가 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하늘하늘~ 어디론가 가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통이가 말한 대로, 이럴 때의 마유리는 정말로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갑자기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스타더스트 셰이크핸드와 맞먹는 마유리의 능력― 스니킹 페이드아웃(침묵의 귀환). 실로 골치 아픈 능력이다.

린타로 : 애당초 나카노에 무슨 일이 있다고?

마유리 : 저기 말야, 어제 『아이소드』의 동인지가 나왔거든―

이타루 : 성인물?

마유리 : 아니. 그치만, 그린 사람이 “코우가 유이”씨야. 마유시―는 간만에 진심이 되어 볼까 싶어서―

이타루 : 헤에, 코우가 유이라― 작년에 했던 건밤의 캐릭터 디자인이었지?

마유리 : 응. 그래―

이타루 : 내 것도 사 줘.

마유리 : 알겠어―♪

린타로 : 어이 어이, 너희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동인지라면 『토라노아나』가 눈앞에 있잖아.

- 내 말에 통이하고 마유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유리 : 눈앞이라니, 어디―?

린타로 : 아니, 눈앞은 눈앞이지. 저기에―

- 가리킨 그 장소에― 『토라노아나』는 없었다.

린타로 : 어… 라…?

- 눈을 비비고서, 몇 번이나 깜빡인 후, 다시 눈을 크게 떠 봤다. 장소를 착각한 건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그걸로 끝이 아니라― 『토라노아나』 옆에 붙어 있는 『애니메이트』까지 사라져 있었다. 그 장소엔 대신 전자 제품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더군다나 그 가게는 『제일가전』과 『T-2ONE 미나미 본점』이라는, 낯선 가게였다. 잠깐 기다려… 확실히, 꽤나 전에 미스터 브라운하고 이야기를 했을 때 과거 아키바는 좀 더 많은 전자 제품점이 있었다고 했었다. 지금에 와선 이미 폐점해 버린 몇 개의 가게. 그 중에서 『제일가전』과 『T-2ONE 미나미』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린타로 : 『토라노아나』도 『애니메이트』도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이타루 : 그거 혹시 개그랍시고 하는 말이야?

린타로 : 하?

마유리 : 아키바에는 『토라노아나』도 『애니메이트』도 없는데―? 그래서 마유시―는 나카노까지 동인지를 사러 가는 거랍니다.

린타로 : …없다니, 무슨 소리야!? 어제까지는 잘 있었는데!?

- 오늘은 어떻게 된 거지? 페이리스 집에 갈 때, 확실히 봤잖아…

이타루 : 그러니까 없다니까. 애당초 그런 모에 계열 가게가 아키바에 있을 리 없잖음. 모에의 성지는 나카노니까 상식적으로.

린타로 : 아키바 쪽이 모에의 성지로 전 세계 규모로 유명하잖나.

이타루 : 정말로 더위 먹어서 맛이라도 간 거야, 오카린. 아키바는 전자제품의 집결지. 모에 가게가 생긴다면 그것만으로 매니아들이 폭동을 일으킬 레벨임둥.

- 대화의 아귀가 맞지 않는다. 이 느낌… 이 느낌이다…! 나는 답답해졌다. 과거가 변경되었다. 머리 한쪽 구석에서 그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확인은 해야만 했다.

린타로 : 『만다라케』는?

마유리 : 없어―

린타로 : 『아키바왕~』은!?

이타루 : 그건 있지.

린타로 : 동인지를 파는 『아키바왕국』 말하는 거다!

이타루 : 뭐야 그건.

마유리 : 아키바왕~에서 동인지를 팔아―?

이타루 : 그럴 리 없어. 그건 진짜 무리수임.

린타로 : 『게이머즈』는!? 『람타라』는!?

- 두 사람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린타로 : 『멜론 북스』는!? 『아소빗 시티』는!?

- 되돌아 오는 건 곤혹스러운 표정. 그건 즉― 나는 꿀꺽 하고 숨을 삼켰다. 드디어, 이해했다. 너무나도 현실적이지 않았지만, 이해만은 했다.

린타로 : 이 곳의 혼란이… 옅어져 있어…

- 애니메이션이나 야게임 같은, 흔히 말하는 모에 계열 오타쿠를 대상으로 하는 가게들만이 아키바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 최후의 발악 같은 식으로, 나는 언제나 자주 가는 장소를 향해 달렸다. 『메이퀸+냥2』. 마유리나 페이리스가 일하고 있고, 나나 통이가 단골로 드나드는 메이드 까페. 그러나 그 가게 앞에 도착한 나는, 최후의 일격을 당한 기분이 되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린타로 : 없어―

- 사라졌다. 모에 계열 가게뿐만이 아니라, 메이드 까페까지 사라졌다. 틀림없이 메이퀸만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메이드 까페나 “코스튬 플레이 서비스”를 하는 가게도 모두 다 사라졌겠지.

린타로 : 마유리. 너, 메이퀸에서 일하고 있지?

마유리 : 메이퀸? 음, 그게 뭘까―? 감자?

린타로 : 『메이퀸+냥2』말야!

- 통이한테도 물어봤지만, 반응은 없었다.

마유리 : 마유시―가 알바를 하는 데는, 『르모앙느』인데―?

린타로 : 르모앙느? 그건 메이드 까페야?

마유리 : 아니, 그냥 까페.

린타로 : …아키바엔 메이드 까페가 한 곳도 없는 건가?

이타루 : 없어. 아키바에 오는 인간은 그런 모에 계열 비지니스 같은 걸 혐오하니까. 아무도 접근하지 않을 걸.

린타로 : ……

- 이걸로 확정적이었다. 이건 틀림없이 페이리스가 방금 보낸 D 메일의 영향. 크리스가 말했던 “나비 효과”다. 페이리스는 어릴 때부터 아키바의 도시 개발 계획 회의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페이리스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모에 계열 가게가 늘었다고 했다. 그걸 직접적, 아니면 간접적으로 부정하는 내용의 D 메일을 2000년으로 보낸 걸로, 그런 가게가 없는 아키바라는 세계선으로 재구축 되었다… 그런 건가. 단 한 통의 메일에 의해, 한 장소가 걸어 온 10년의 역사가 완전히 변경되어 버리고 말다니. 우리 멋대로― 라기보다 페이리스 멋대로, 이 곳의 모습을 변화시킨 건 잘 한 짓일까. 그런 죄책감 같은 감정도 있었지만, 애당초 원래의 아키바를 기억하고 있는 건 나뿐인 이상, 아무도 그걸 탓하지는 못한다. 변해 버린 건 어쩔 수 없지, 하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페이리스 녀석, 도대체 어떤 내용의 메일을 보낸 거길래…?

게임/슈타인즈_게이트/04장_5.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1/07/03 14:33 저자 에리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