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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슈타인즈_게이트:04장_6

4장 : 몽환의 호메오스테이시스 (6)

- 다음날 아침, 날이 밝고 나서 랩을 나와서 아키바 이곳 저곳을 산책해 봤다. 그 결과 알게 된 건, 혼돈 성분은 줄어들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아키바는 역시 아키바라는 것이었다. 전자 제품 가게는 변함없이 제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오히려 늘어 있었다. 그 가게들에서는 여전히 보행로까지 울려퍼지는 호객 소리나, “테마송”이 들려오고 있었다. 눈에 확 띄지 않는 ― 그러나 그 눈엔 조용한 정열이 깃든 ― 가전제품 오타쿠나 PC 매니아, 그리고 밝은 분위기의 외국인 등이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복판에서 전단지를 돌리는 메이드나, 젊은 여성 손님 ― 흔히 말하는 동인녀 ― 는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본질적으로 오타쿠의 거리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그러한 점에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참고로 메이퀸이 없어졌는데 나하고 페이리스가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 하는 것은 어젯밤에 마유리가 이야기해 주었다. 이케부쿠로의 장난감 가게에서 열린 라이넷AB의 소규모 대회에 통이하고 같이 나하고 마유리가 갔었는데, 통이가 배가 아파서 시합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갑작스레 나하고 마유리가 임시 참전을 하게 되었다 한다. 그 대전 상대가 페이리스였다. 당연히 초보자 콤비인 나하고 마유리는 참패했지만, 페이리스는 특별히 신경을 써 줘 가며 라이넷AB의 플레이 방법을 가르쳐 줬다고 한다. 그 후로 마유리가 페이리스하고 친해지게 되어,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부분은 대폭적인 과거 변경이 이루어졌지만, 결과적으로 현재의 인간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운명의 여신이라는 건 정말로 있는지도 모르겠다.

- 엇, 메일이로군.

- 받은 메일함
날짜 8/8
from [email protected]
sub
널 지켜보고 있다.

린타로 : 뭐야… 이건…?

- 장난 메일? 스팸 메일? 뭐야 이 빨간 젤리는? 보고 있다니, 뭘? 나를? 일순, 혼란스러워졌다. 그대로 주위를 둘러보고 만다. 본능적으로 소름이 확 돋았다. 상당히 안 좋은 느낌이었다.

린타로 : “기관”인가… 아니면, SERN…?

-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이건, 협박 메일…!? 심장 고동이 급속히 빨라졌다.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어쩌지. 누군가에게 상담을 해야 하나. 누구한테? 상담하게 되면 그 녀석도 말려들 거다. 그냥 장난일 거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라. 하지만 만약 진짜라면? 내 예상대로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나타난다면?

- 제거될 거다. 나는, 우리는, 제거될 거다. 경찰에 신고하면? 아니 소용없어. 이 정도 메일 가지곤 믿어 주지 않을 거야. 어쩌지. 어쩌면 좋지. 어쩌면 좋지―

- 머릿속에서 다양한 생각이 뱅글뱅글 돌아간다. 주위를 걷고 있는 모든 사람이 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든다. 견딜 수가 없어져서 인파 속에서 도망쳐 나왔다.

- 어떻게 마음을 진정시키고, 랩에 돌아왔다. 어쨌든 간에 “그 메일은 장난이다”라고 생각하는 식으로 머리 한 켠으로 몰아넣었다. 랩에는 이렇게 이른 시간인데도 ― 라고 해도 이미 한낮이긴 하지만 ― 여고생 3명이 죽치고 있었다. 랩 멤버 넘버 002와 004와 006. 마유리, 크리스, 루카코다. 표정이 굳어지지 않도록 노력해 가며 말을 걸었다.

린타로 : 연휴 기간 중의 일요일인데도 꽤나 한가한 듯 하군, 랩 멤버 걸즈여.

루카 : 아, 오카베씨. 안녕하세요.

마유리 : 오카린, 안녕―♪

- 귀여운 여고생 2명이 아침 인사인 듯 웃는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건 어떤 의미로는 행복한 광경이었다. 참고로 그 중 한 사람은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로밖에 보이지 않는 남자 고등학생”이지만. 그리고 귀찮다는 듯 한 번 노려보더니 곧바로 독서를 재개하는 조수의 태도 역시 그 행복을 사그라들게 해 주고 말았다.

린타로 : 뭘 하고 있지?

- 마유리와 루카코는 나란히 소파에 앉아서 한 권의 책을 같이 보고 있었다. 잠깐 들여다 보니, 코스튬 플레이의 사진집 같았다.

마유리 : 어제 말야, 나카노에 동인지를 사러 가겠다고 했잖아―? 거기서 말야, 무척이나 귀여운 코스튬 플레이 동인 사진집을 발견했거든― 그래서, 김에 충동구매를 했어♪ 이거 봐, 루카. 이거, 브라츄의 세드나 코스튬이야. 정말 잘 만들었다― 완전 귀여워―

루카 : 와아, 정말이네.

- 옳거니, 그리고 그걸 루카코한테 보여줘서 “교육중”이라는 건가. 루카코가 그렇게나 거부하고 있는데 말야, 마유리도 참 끈질기군. 그렇지만 루카코도 사진집을 흥미있는 듯이 보는 걸 보면, 코스튬 플레이 그 자체엔 흥미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단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부끄러운” 것뿐일지도.

마유리 : 저기 저기, 크리스도 함 봐 봐― 감동할 거라니까―

크리스 : 난 됐어.

- 크리스는 그 동인 사진집 감상회에는 참여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흥미 없다는 듯이 콧소리를 내기만 했다. 읽고 있는 건 어려워 보이는 원서였다. 이 녀석, 지식인 티를 팍팍 내는군. 마유리가 모처럼 신경 써서 권유를 했는데 그렇게 대꾸하는 건 너무하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유리는 별달리 기분 상한 것 같지도 않고 해서, 내가 나서는 건 관두기로 했다.

마유리 : 와, 다음 페이지부터는 수영복이네― 대단해― 노출도가 높아. 스타일도 정말 좋고. 그라비아 아이돌 같아.

루카 : 부러워…

마유리 : 부러워―? 수영복 차림이?

루카 : 난… 이렇게 스타일이 좋지 않으니까…

마유리 : 그치만 말야, 루카라면 분명히 어른이신 친구분들이 하악하악 할 거야.

- 어이 마유리… 도대체 그건 무슨 소리냐. 그런 말투는 통이나 하는 거잖아.

마유리 : 저기 말야, 빈유는 정의야. 그러니까 말야, 가슴이 별로 없더라도, 자신감을 가져―

크리스 : 쿨럭 쿨럭 쿨럭!

- 커피를 마시고 있던 크리스가 목에 걸린 듯 기침을 했다. 그 기분은 이해하지. 나도 마시고 있던 닥터 페퍼를 뿜을 뻔 했으니까. 더군다나 그 키에 어울리지 않는 슈퍼 버스트를 가진 마유리가 그런 소릴 해도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마유리 : 그래, 코미마가 끝나면 다함께 바다에 놀러 가자― 여름이고 하니까. 마유시―도 계속 옷을 만드느라 여름 방학을 전혀 즐기지 못했어. 저기 저기, 오카린, 크리스. 어때―? 랩 멤버가 모두 바다로 가는 거.

루카 : 엇…? 랩 멤버가 모두…?

크리스 : 난 안 갈 거야. 조금 더 있다가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짐도 아직 안 싸서 그럴 여유가 없어.

린타로 : 확실히 랩에서 한가롭게 독서나 하고 있을 정도니까 말야. 참으로 여유 없게 보이는군.

크리스 : ……

- 크리스는 팍 하고 책을 덮고서, 나를 노려보며 냉소적인 웃음을 지었다.

크리스 : 그러면 확실하게 말하도록 하겠어. BYONTAI 두 녀석하고 같이 해수욕하러 갈 수나 있겠어? 여성 멤버 한정이라고 한다면 기쁘게 참여하도록 할게.

린타로 : 훗, 솔직해지는 게 어때, 크리스티나. “전 엉덩이에 있는 몽고 반점을 남자한테 보이고 싶지 않아서 같이 갈 수 없어요”라고―

크리스 : 몽고 반점 같은 거 없어!

린타로 : 애당초 여성 멤버 한정이라면 저기 있는 루카코도 무리잖나.

크리스 : 뭐야 그거, 무슨 뜻이야?

린타로 : 얼마 전에 확실하게 가르쳐 줬잖아, 루카코는 정진정명, 남자라고 말야!

- 내가 내뱉은, 진실을 꿰뚫은 말에― 그 자리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어라…? 왠지 리액션이 이상한데.

크리스 : 최악이냐, 당신. 여자애를 보고 남자라고 하다니.

마유리 : 맞아, 오카린. 그런 말 하는 건 말야, 마유시―는 별로라고 생각해…

루카 : ……

- 크리스뿐만이 아니라 마유리까지 날 책망했다. 그리고 루카코는 완전히 새파랗게 질려서 겁먹은 듯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설마, 우는 건가…? 여느 때라면 “맞아요, 전 남자니까… 그리고 수영복 입는 것도 부끄럽고” 같은 말을 하며 풀이 죽지만, 울 정도는 아닐텐데…

린타로 : 크리스티나. 네가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하는 건 안다. 루카코는 남자지만 무척이나 귀여우니까―

크리스 : 오카베!

- 크리스가 더욱 험악한 표정을 짓고서 날 몰아붙였다.

크리스 : 나한테 해괴한 별명을 붙이는 정도라면 농담으로 끝나는 거니까 괜찮지만― 아니, 사실 괜찮진 않지만, 지금 당신이 하는 소린 농담으로 끝날 게 아냐.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는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 지금 당신은 정말로 최저야.

린타로 : 뭐…?

- 뭐지? 왜 갑자기 분위기가 이런 거지?

크리스 : 사과해. 지금 당장 우루시바라씨한테 사과해.

린타로 : 아니 아니, 사과하라니, 나는 진실만을 말했―

루카 : 됐어요.

- 루카코가 사그러들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소파에서 일어섰다. 여전히 푹 수그리고 있었다.

루카 : 절… 오카베씨는, 그런 눈으로 보셨던 거군요…

린타로 : 아냐아냐아냐! 그런 눈이라니, 루카코, 넌 남자잖아!? 그게 아니라면 너까지 현실도피를 하는 거냐!?

크리스 : 현실도피하고 있는 건 당신이잖아!

마유리 : 맞아― 루카는 여자앤데 말야, 오카린 너무해.

린타로 : 그건 그렇고 마유리, 어째서 넌 갑자기 루카코를 부를 때 “루카군”에서 “루카”로 바꾼 거지?

크리스 : 오카베, 언제까지 계속할 거야!? 쟨 여자애라구!

- 마유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이건? 이 녀석들, 도대체 무슨 소릴…? 몰래카메라냐? 함정 같은 거냐?

루카 : 저… 돌아갈게요…!

- 하고 루카코는 내 옆을 지나 랩을 나가려 했다. 그 손을 뒤에서 낚아채서 붙잡았다.

린타로 : 기다려 루카코! 날 놀려먹는 거라면 그만둬! 넌 정진정명 남자잖아! 뭐하면 여기서―

- 루카코의 갸냘픈 몸을 뒤에서 붙잡은 후, 그 다리 사이에 있는 루카코의 “아들놈”을 콱 붙잡으려 하자―

- 없었다.

린타로 : 어…?

루카 : 아… 앗.

크리스 : 너…

마유리 : 아와아…

린타로 : 어어어? 어? 어라? 어째서?

- 다시금 다리 사이를 만지작거려 봤다.

루카 : 으, 시, 싫, 아, 안 돼… 오카베씨, 하지… 마세요… 흑,

- 없어, 없다. 있어야 할 텐데. 왜냐면 이 녀석은 남자―

- 그 때 내 뇌리에 전류가 스쳤다. 설마― 아니, 그런가. 그런 건가…!

린타로 : 루카코, 너…

- 분명히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그 때의 D 메일은… 성공했던 거다…!

린타로 : 넌, 여자냐!?

크리스 :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잖아―!

- 그 직후 정수리에 쾅 하는 충격이 떨어졌다. 크리스가 들고 있던 두꺼운 원서 모서리가, 내 머리에 내리꽂혔다―

루카 : 흑… 으흑… 흑…

- 루카코가 울고 있다. 그 뒤에서, 마유리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등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크리스는 내 앞에 팔짱을 끼고 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막 도착한 통이는 방 귀퉁이에서 웃음을 참고 있었다. 뭐 하는 짓이냐, 같은 소린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정을 모르고서 지금 이 상태를 옆에서 봤다면, 분명 100명 중 100명은 이렇게 인식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변태 남성 대학생을 정의의 여고생이 무릎꿇리고 있다”. 더군다나 그 인식에 잘못된 점도 없다… 정수리가 욱신거린다. 분명히 긴급 국가 보호를 필요로 하는 내 세련된 뉴런이 크리스의 일격에 1억개는 사라졌을 거다. 온천에 들어갈 때처럼, 나는 머리에 젖은 수건을 갖다 대었다.

크리스 : 한 번 당신 머리를 절개해서 뇌만 꺼내서 잘 씻어 주고 싶은 기분이야. 할 수 있다면 그대로 몸에 되돌리지 않고서 배양액 속에 쳐넣고선, 평생토록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할 수 없도록 해 주고 싶어. 어쨌든 경찰에 넘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는 게 좋을 거야.

린타로 : 예… 죄송합니다…

- 얌전히 사과했다. 그건 그렇고, 깜짝 놀랐다… 설마 “없을” 줄이야.

- 루카코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겉보기는 전혀 바뀌지 않았고 가슴도 납작했지만 정진정명 여자애였다. 뭣보다도 거기에 있어야 할 것이 “없었”으니까. 그걸 나는 이 손으로 확실하게 확인했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크리스가 말했던 “고기를 먹으면 남자애가, 야채를 먹으면 여자애가 태어난다”라는 바보스런 속설이 이런 형태로 진실임이 증명되다니. 그 이전에, 루카코한텐 정말 미안하다… 17살 순진한 여자애의 다리 사이를 만지작거린다는 변태적 행위를 당하게 되면 PTSD가 되어도 이상할 건 없다. 더군다나 루카코는 보다시피 얌전하고 무구한 성격이니까… 앞으로는 가능한 다정하게 대해 주자… 아니, 애당초 앞으로 내가 말을 거는 것도 피할지도 몰라. 그렇다 해도 잘못한 건 모조리 다 내 쪽이니까 어떠한 오명이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크리스 : 그건 그렇고 왜 우루시바라씨가 남자애라는 묘한 망상에 사로잡힌 거야?

린타로 : 큭큭큭… 그건 전에도 이야기했을 텐데. D 메일을 이용한 과거 변경이지. 루카코는 남자였지만 “여자애가 되고 싶어”라는 소원을 들어 주기 위한 D 메일을 보냈고, 그건 성공했다. 세계선이 바뀐 그 순간을 난 확실히 인식했다. 즉 마안 “리딩 슈타이너”에 의해서 말야. 그 점에 대해선 반성해야만 하겠지. 나는 좀 더 나 자신이 가진 특수한 힘을 믿었어야 했다는 걸 말야!

- 크리스가 예의 원서를 살짝 들어올렸다.

크리스 : 또 맞고 싶어?

린타로 : 아니, 정말이야. 그것만은 믿어 줘…! 이 현상을 이론으로 설명하면 말이지, D 메일을 보낼 때마다 이 세계가 이루어져 온 역사가 변한다는 거지. 즉 과거가 변해. 그걸 내 뇌는 지각할 수 있다는 거라구! 온 세상에서 이 나만이 인과율의 변화를 인식할 수 있어! 그래, 말하자면 나는 이 세계의 관측자란 거야!

- 흥분한 나는 일어서서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크리스 : 됐으니까 앉아.

- 나는 맥없이 다시 정좌했다.

린타로 : 이해 못 하겠나? 관측자― 즉 양자역학적으로 말하면 슈뢰딩거 고양이 실험에서 “상자를 여는 사람”에 해당한다구!

마유리 : 슈뢰딩거―?

이타루 : 우와, 나왔어, 슈뢰딩거의 고양이. 일본 사람이 슈뢰딩거를 좋아하는 건 이상할 정도임.

크리스 : 당신도 일본 사람이잖아.

이타루 : 이젠 진짜 질렸음둥. 고냥이가 귀여운 건 인정하지만.

린타로 : 윽…

- 통이가 하는 말은 너무나 적절해서, 반론할 수도 없었다. 확실히 일본에서 나돌아다니는 양자론 계열의 오락 작품에서는 반드시 이 슈뢰딩거 실험이 등장한다.

린타로 : 어쨌든 난 그런 특수한 힘이 깃든 마안을 가지고 있어. 그 이름이 “리딩 슈타이너”라는 건 전에 설명했을 거다.

크리스 : 그 “리딩 슈타이너”라는 이름은 바보 같으니까 관두라고, 나도 전에 이야기했을 텐데. 그야말로 일본식 영어야. 만화에 나오는 필살기 같아. 문법에도 안 맞고, 슈타이너가 “STEIN(슈타인)“이라면 앞쪽은 영어고 뒤쪽은 독일어잖아, 엉망진창이야. 참고로 이 이야긴, 슈타인즈 게이트였나? 거기에도 해당해.

린타로 : 쿡쿡쿡… 아직 엉덩이의 몽고 반점이 없어지지 않은 모양이로군, 크리스티나. 네이밍은 어감이 가장 중요하지. 그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하고 비견할 만한 내 창조력은, 문법 같이 하찮은 것에는 속박되지 않는다구! 후하하―

- 또다시 맞았다. 눈앞에 별이 튀었다.

크리스 : 반성 좀 해.

린타로 : 죄송합니다…

- 루카코는 아직도 울고 있었다.

- 그 후로 30분 이상 난 정좌하고 있었다. 크리스가 계속 감시하고 있어서 자세를 바꿀 수도 없었다. “죽어버려, 변태, 미친XX” 같은 식으로 루카코가 비난을 한다면 납득할 수 있는 일이지만, 어째서 실제로 피해를 보지도 않은 크리스가 나서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혹시나 그 녀석, 반장 역할이라도 맡겠다는 건가? 어쨌든 더 이상 랩 멤버 걸즈의 압박에 견딜 수가 없어져서 난 랩에서 도망쳐 나왔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 크게 기지개를 켰다. 다리가 상당히 저려서 똑바로 서 있기가 힘들긴 하지만. 그 때 브라운관 공방의 문이 열리고 알바 전사가 나왔다.

- 눈이 마주쳤다.

스즈하 : 안녕…

- 여느 때에 비해서 기운이 없어 보였다.

스즈하 : 왜 그렇게 흐느적거리고 있어?

린타로 : 이, 이런 체조도 있거든.

스즈하 : 흐음. 그건 처음 알았네.

- 스즈하는 별로 흥미 없다는 듯한 말투로 그렇게 답하고선 벤치에 앉았다. 스즈하가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어서, 나도 그렇게 하늘을 쳐다보았다.

- 커다란 적란운이 창궁을 침식하려 하고 있었다. 헬기가 한 대 날아가서, 프로펠러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스즈하 : 사이클링 하기엔 딱 좋은 날이네.

린타로 : 음? 그래?

- 이렇게나 더운데, 사이클링 같이 피곤해지는 짓은 하고 싶지가 않군. 에어콘을 팍팍 틀어 놓은 방에 앉아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PC로 인터넷을 본다. 그것이 바로 여름 방학 기간을 보내는 가장 사치스러운 형태겠지. 그러한 연유로, 랩에 에어콘이 없는 건 그야말로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스즈하 : 저기 말야, 사이클링 해 보지 않을래?

- 뭐, 진심이냐? 꽁무니를 빼고 싶어졌다.

린타로 : 자전거는 한 대 밖에 없잖나.

스즈하 : 두 사람이 타면 되잖아.

린타로 : 알바를 내팽개쳐도 되는 거냐?

- 스즈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가 곧바로 다시 나왔다.

스즈하 : 허가 받아 왔어. 어차피 손님도 안 오니까.

- 어떻게든 이유를 들어서 거부하려 했지만 그건 실패로 끝났다.

린타로 : 허억, 허억, 크윽, 난 매드사이언티스트지, 사이클리스트가 아냐… 허억, 허억, 그런데도 어째서 내가 널 뒤에 태우고 자전거를 몰아야 하는 거지…

스즈하 : 오랜 옛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습니다. “시간은 운동의 개수만큼 존재한다”라고. 그러니까 운동해 두는 것도 좋아.

-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설마 역 앞까지 오는 것 정도로 녹초가 될 줄은 몰랐다. 익숙하지 않은 일은 안 하는 게 좋겠어… 난 자전거에서 내려서 벽에 등을 대고 주저앉았다. 스즈하는 자전거를 세워 두고 내 옆에 앉았다. 땅바닥에 그대로 앉는 건 흉해 보여서 그다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숨을 고를 여유 정도는 괜찮겠지. 대빌딩 앞을 인파가 스쳐가고 있었다. 대다수가 남자였다. 그 중에선 큰 상자를 들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모두 PC 부품이나 전자제품으로, 모에 일러스트가 그려진 봉투나 포스터 같은 건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아키바가 변모하자, 찾아오는 사람들도 바뀐 것이다. 이 분위기― 어쩐지 고전적인 느낌이었다. 난 사진에서나 봤었던 20세기 말의 아키바. 순수한 “전자상가”라는 모습. 그것이 지금 내 눈앞에 부활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눈치 채고 있는 것은, 이 거리 속에서 나 혼자 뿐이다.

스즈하 : 나 말야,

- 스즈하가 툭 하고 내뱉었다.

스즈하 : 토쿄에 온 건 열흘 쯤 전이 처음이야―

- 호오, 그건 처음 듣는 소리군.

린타로 : 여름 방학을 이용한 관광… 은 아닌 것 같군.

스즈하 : 아버지를 “수색”하기 위해서야.

- 수색… 수색이라.

린타로 : 증발하기라도 한 건가?

스즈하 : ……

- 농담삼아 해 본 말이었지만 스즈하의 표정이 진지했기 때문에 당혹스러워졌다.

스즈하 : 못 본지 몇 년 정도 됐어. 여기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린타로 : 그런가… 그런데 그러면 알바나 하고 있으면 안 되지 않나?

- 스즈하는 매일 같이 브라운관 공방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아침에는 11시쯤 와서 밤 7시까지 일한다. 그래서야 찾아볼 시간 같은 건 없을 것 같은데.

스즈하 : 단서가 없어, 솔직히 말하자면 말야.

린타로 : 경찰에 실종 신고는 했어?

스즈하 : …아니.

린타로 : 그러면 신고하는 게 좋을 텐데. 그리고 돈이 있으면 탐정한테 부탁하든가.

스즈하 : 그런 예산은 없어. 그리고 여러 가지로 사정이 있거든.

- 사정… 이라.

스즈하 : 그렇지만 말야, 딱 한 번 기회가 있어. 그 기회가, 내일이야. 내일, 어떤 장소에 나타날지도 몰라.

- 어떤 장소? 묘한 정보로군. 꽤나 불온한 느낌이다. 혹시나 증발한 게 아니라, 범죄를 저질러서 경찰에게 쫓기고 있는 건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게 되어서 난 침묵했다.

스즈하 : 그 기회를 놓쳐 버리면, 난 이제 여기서 떠나야만 해.

린타로 : 떠난다니, 고향에 돌아가는 건가.

스즈하 : 가야만 하는 데가 있거든. 나도 “다망”하단 거야.

- 다망…? 다망… 다망… 무척 바쁘다는 건가?

스즈하 : 애당초 내일 못 만난다면 포기할 생각이었고.

린타로 : 불안한 게로군?

스즈하 : ……

린타로 : 그 기분은 잘 알지. 아는 사람 없는 이곳에서 혼자서 아버지를 찾겠다니, 불안해지는 것도 당연하겠지.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상담을 하고 싶단 거겠지. 그리고 가까이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이 호오인 쿄마에게 상담한다는 건가. 하지만 유감이군. 나 같은 광기의 매드 사이언티스트에게 의지한 건 네 실수다, 알바 전사여…!

스즈하 : 하아…

린타로 : 쿡쿡쿡, 그러한 널, 내가 실험대에 올려서 써먹어 주마…!

스즈하 : 실험대… 라니?

린타로 : 당연하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인류 과학의 꿈… D 메일이다.

- 스즈하에겐 이전에 D 메일에 대해서 한 번 설명한 적이 있다.

린타로 : 네 녀석을 그 실험대에 올려 주마. 크크크.

스즈하 : 어, 어쩔 거야?

- 이제서야 스즈하가 경계하는 듯 했다. 한 발짝 내게서 거리를 두듯 물러섰다.

린타로 : 뭐, 간단히 말해서… 난 지금 D 메일 검증 실험 데이터를 조금이라도 많이 얻으려 하고 있지. 너도 과거를 바꿔 줬으면 한다. 물론 그 “바뀐 과거”를 인식할 수 있는 건 바로 나 뿐이지만…! 극악무도하다고 생각해도 상관없다. 허나 넌 이미 내 독니에 걸려든 어린 양. 놓치지 않겠다… 그래, 좋은 생각이 났어. 네가 과거로 보낼 메일 내용 말야. 쿡쿡쿡, 잘 들어라. 넌 증발하기 전의 아버지한테 이런 메일을 보내는 거다. “딸을 버려두고 가지 마라”라고 말야! 후하하하하!

스즈하 : …너 말야, 좋은 녀석이구나.

린타로 : 뭐… 라…?

스즈하 : 뭐랄까, 약간이지만… 마음이 편해졌어.

린타로 : 너 말야, 날 모욕하는 거냐. 난 좋은 녀석이 아냐. 실험밖에 생각하지 않는, 광기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닷. 알아듣겠으면, 네 아버지의 핸드폰 주소를 알려 줘. 그러지 않겠다면… 내 오른팔이 불을 뿜을 거다… 참고로 봉인이 풀린 오른팔을, 난 제어할 수 없지. 네 생명도 보증할 수 없다… 고 해 두지.

스즈하 : 미안, 그건 무리야.

린타로 : 계속 거역할 셈이냐―

스즈하 : 아버지의 핸드폰 번호도 메일 주소도 모르거든.

린타로 : ……아, 그런가.

- 어찌 기운이 빠져 버렸다.

스즈하 : 뭐, 그래서 내일의 기회에 걸어 보려는 거거든. 걱정해 줘서 쌩큐―♪

린타로 : 걱정한 적 없다. 실험대에 올릴 수 없어서 실망한 것 뿐이야.

스즈하 : 그건 그렇고 대단해. 메일을 과거로 보내다니. 인류 최초의 타임머신이잖아.

린타로 : 훗, 대단한 거야 당연하지. 왜냐하면 난 호오인 쿄마니까 말야.

스즈하 : 업그레이드 할 예정은?

린타로 : 업그레이드?

스즈하 : 그 타임머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거 말야. 예를 들어, 사람을 전송한다든가.

린타로 : 검토중이다.

- 좋은 아이디어는 현재로선 없긴 하지만.

스즈하 : 그렇다면 말야, 만들기 전에 한 가지 충고할게. 마키세 크리스는 동료에서 제해 두는 게 좋아.

린타로 : 그러고 보니 넌 그 녀석을 꽤나 싫어했었지.

스즈하 : …… 그럼 슬슬 공방에 돌아가야지. 30분 휴식 허가를 받았을 뿐이라서.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혼날 거야.

- 자전거에 올라타는 스즈하를, 난 붙잡았다.

린타로 : …내일은, 아버지하고 만나든 만나지 못하든 랩에 오도록.

스즈하 : 왜?

린타로 : 네 마음의 상처를 이용해서 D 메일을 쓰게 해 주지. 크크크…

스즈하 : 아하하, 과연 매드 사이언티스트야. 극악무도해~♪ 만일 아버지하고 만난다면 갈게. 그러면 모두 모여서 “축포”를 쏘자.

- 기쁜 듯이 웃으며, 스즈하는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 …나를 내버려 두고서.

린타로 : 자, 잠깐! 나도 태워 달라구! 어이!

- 스즈하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랩까지 달려서 돌아가게 되었다…

게임/슈타인즈_게이트/04장_6.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1/07/03 03:02 저자 LeD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