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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쟝_지로

쟝 지로(Jean Giraud)

쟝 앙리 가스통 지로(Jean Henri Gaston Giraud)는 프랑스 출신의 만화가로, 본명인 ‘쟝 지로’와 ‘뫼비우스(Mœbius)‘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대표작으로 웨스턴 안티히어로물인 ‘블루베리’ 시리즈가 있으며, 독특한 세계관의 SF물인 잉칼(L’Incal) 등을 만들었다. 독특한 작풍과 SF적인 발상으로 많은 만화, 영화를 포함한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직접 영화 아트웍을 담당하여 듄, 에일리언, 제5원소 등의 작품에 참여하기도 했다.

2012년 3월 10일, 기나긴 암 투병생활 끝에 서거, 향년 73세의 나이였다.

상세설명

쟝 지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만화가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컨셉 아티스트다. 그가 만들어낸 독특하고 색다른 그림 스타일과 표현법은 후대의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그가 도전한 과감한 구도와 구성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연구대상으로 오래동안 회자되었다.

특히 쟝 지로/질 명의와 뫼비우스 명의를 동시에 사용하며 명의별로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그려내는 놀라운 면모를 보여 혹자는 그를 ‘쌍두괴물’이라 부르기도 했다. 보통 하나의 성향으로 극에 달하기도 어려운데 두가지 특징적인 작풍을 만들고 계속 유지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그가 끼친 영향

일본에서는 오토모 카츠히로로 대표되는 선화 중심의 사이버펑크물 작가들이 직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테즈카 오사무조차도 그가 사용하는 음영표현의 짧은 선처리를 ‘뫼비우스선(メビウス線)‘이라고 부르며 연구했다고 공식적으로 발언한 적도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대표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경우에도 1980년에 뫼비우스 명의의 작품 아르작을 보고 매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스스로는 그림 스타일이 굳어버려 그의 표현양식을 도입하기는 어려워으나, 아르작에서 받은 영감을 기반으로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만들었다.(나우시카의 글라이더,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세계, 부해와 기이한 생명체의 컨셉 등은 아르작의 그것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Through Arzach, which dates from 1975, I believe. I only read it in 1980, and it was a big shock. Not only for me. All manga authors were shaken by this work. Unfortunately, when I discovered it, I already had a consolidated style so I couldn’t use its influence to enrich my drawing. Even today, I think it has an awesome sense of space. I directed Nausicaä under Moebius’s influence.

1975년에 선보인 아르작을 저는 1980년에 읽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쇼크를 받았죠.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일본 만화 작가들이 아르작에 흔들렸죠. 불행히도 제가 이걸 봤을 땐, 전 이미 스타일이 굳어버려서 제 그림을 바꿀 수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정말 범우주적인 센스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나우시카를 뫼비우스의 영향 아래에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뫼비우스의 대담에서

일각에서는 나우시카가 아르작을 모작했다는 평가마저 있었을 정도로 받은 영향을 그대로 묘사한 면이 있긴 하지만, 정작 쟝 지로는 나우시카를 보고 ‘나의 이해자가 일본에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나우시카를 매우 좋아해서, 늦게 낳은 자신의 딸의 이름을 ‘나우시카(Nausicaä, 프랑스식 발음으로는 ‘노우시카’)‘로 지어주기도 했다.

추가바람

연혁

유소년기

1938년 프랑스 교외의 노장 쉬르 마른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2차세계대전 전후로 혼돈스러운 시대였으며, 쟝 지로 또한 그러한 혼돈스런 시대를 바라보며 자라났다. 그가 3살이 되던 해에 부모는 이혼하였으며 그의 조부가 그를 거의 맡아 키웠다. 어머니는 생활비를 벌기위해 하루종일 일을 해야했기 때문에 집에서 할일이 없었던 지로는 자연스럽게 책과 그림으로 자신의 여가를 모두 소비했다. 일상적으로 계속했던 책읽기와 그림 그리기를 통해 자신의 진로를 그림그리는 일로 생각하며 성장했다. 특히 이 시기에 미국쪽의 플래쉬 고든팬텀을 읽고서 큰 충격을 받았으며, 결정적으로 15살에 읽기 시작한 잡지 ‘픽션’을 통해서 SF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훗날 자신의 필명을 ‘뫼비우스’로 정하게 된 것도 이 때의 SF잡지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어릴적부터 그림과 책에 심취한 쟝 지로는 1954년 가족의 추천으로 응용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이곳에서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정보를 접하며 미술계의 사람들과 친분을 쌓기 시작하게 된다. 이때 쟝 끌로드 메지에르를 만나 친분을 쌓게 된다.

1955년, 어머니의 재혼 결혼식에 참가하기위해 연휴에 학교를 떠나 멕시코로 떠나게 된다. 원래는 결혼식 참가 후 학교로 곧바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그는 멕시코에 매료되어 9개월 가량을 멕시코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남미의 자연경관과 풍경을 감상하며 말그대로 느긋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무언가 깨우침을 얻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하며, 이 때의 기억으로 인해 그가 가장 즐겨하는 연출 중 하나가 사막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무단으로 학교를 이탈해 장기결석해 학교에서 잘리고 말았으나 본인은 별로 상관없었다고.

학교에서 잘리기 전부터 그는 자신의 첫 공식 데뷔 작품인 ‘프랑크와 예레미(Frank et Jeremie)‘를 ‘Far west’지에 싣게된다. 이어서 1958년까지 ‘퀘르 밸리언츠(Coeurs Valiants)‘에서 ‘버팔로의 왕(King of the Buffalo)‘과 ‘거인과 휴론(a Giant with the Hurons)‘을 연재하기도 했다.

성년이후

이후 1959년부터 1960년까지는 프랑스 군의 알제리 파병부대의 잡지 편집부에서 병역을 보냈다. 이 기간중에 군사잡지에 ‘5/5 Forces Françaises’라는 작품을 기고해 연재하기도 했다.

1961년, 제대한 쟝 지로는 친구였던 쟝 끌로드 메지에르와 의기투합하여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프랑스의 대표적 만화가인 ‘지제(Jijé)‘를 만나러 무작정 파리로 상경했는데, 이 때 쟝 지로가 들고 간 습작품에서 그의 능력을 엿본 지제가 그를 제자로 받아들여 그의 아래에서 만화 공부를 하게 된다. 이 때 지제의 만화 ‘제리 스프링(Jerry Spring)‘에 참여해 작업을 하며, 지제의 작품을 보고 연구하며 자신을 갈고 닦았다.

이듬해인 1962년에는 지제의 어시스턴트와 더불어서 친구인 메지에르와 함께 ‘문명의 역사’등의 책에 삽화를 그리는 일을 하기도 했는데, 만화를 그리고 싶어했던 그는 스승 지제의 소개로 어릴적부터 좋아하던 작가인 ‘쟝 미셸 샤를리에르(Jean-Michel Charlier)‘와 함께 쟝 지로 명의로 미국 독립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하는 서부극 ‘나바호 요새(Fort Navajo)‘를 필로트(Pilote)지에 연재하면서 큰 성공을 거둔다. 이 때 출판사와 협업을 하면서, 시장에서 판매되는 흐름을 보면서 그는 만화 자체 이상으로 출판사 및 시장을 염두에 두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훗날 그가 후배들에게 “만화 작업을 할 때는 그림이나 시나리오의 형식적인 연결도 중요하지만, 출판사와 만화 시장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만화란 혼자 하는 작업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산업적인 구조로 생각을 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라고 말한 것은 이 때의 경험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

이후 나바호 요새에 출연한 캐릭터인 ‘블루베리’를 주연으로 하는 스핀오프 작품 블루베리를 그리기 시작하는데, 이 작품은 유럽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쟝 지로를 유명인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그 자신 또한 이 작품을 통해 캐릭터의 개성을 강력하게 어필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노라고 회상했다.

뫼비우스 데뷔와 슬럼프

블루베리의 흥행으로 스타덤에 오른 쟝 지로였으나 어느날부터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욕구에 휩싸였고,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SF장르에 도전하게 된다. 블루베리 연재와 병행해서 ‘뫼비우스’ 명의로 풍자만화 잡지인 ‘하라키리(Harakiri)‘지 1963년 28호에 ‘21세기 인간(L’Homme du XXIe siècle)‘이라는 단편 연재를 시작하며 ‘뫼비우스’라는 필명으로서 첫 데뷔를 하게 된다.

이 때 연재한 만화들은 나바호 요새나 블루베리와는 구분되는 실험적이며 관념적이기까지 한, 만화적인 구성보다는 거대한 일러스트 자체가 하나의 씬과 스토리를 모두 품는 식의 실험적인 컷구성을 하는 등 파격적인 작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10여 편의 작품을 그리며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던 그였으나, 1964년 돌연 ‘뫼비우스’로서 그려야할 작품에 선하나 그릴 수 없게 되었다며 하라키리 지의 편집장의 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뫼비우스 명의 작품의 활동을 일절 중단하게 된다.

이 때의 슬럼프의 영향으로 1965년에는 연재중에 미국을 여행하다 상당기간동안 실종(!)되기도 했는데, 이 기간 동안에 실종된 그를 대신해서 그의 스승 지제가 블루베리를 대신해서 그려주기도 했다.(‘블루베리-잃어버린 이야기’ 단행본의 17~38페이지)

다시 작업에 복귀한 지로는 ‘뫼비우스’로서의 활동을 중단한 채로 근 10여년간 ‘쟝 지로’로서의 작품에 몰두하게 된다.

메탈 위를랑

쟝 지로가 뫼비우스로서 복귀를 하게 된 것은 엔키 비랄(Enki Bilal) 등과 함께 만들어 1973년 필로트 지에 연재한 ‘질(Gir)' 명의의 작품 ‘편차(La deviation)‘였다. 이 작품은 필로트지에 연재되었고, 또한 ‘질’ 명의를 쓴 작품이지만 오랫동안 연재해온 나바호 요새와 블루베리와는 구분되는 초현실적인 분위기와 과감한 컷구성 등을 보인 작품으로, 쟝 지로 본인도 이 작품을 기점으로 뫼비우스로의 복귀가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듬해에 ‘거대한 남자’로 뫼비우스 명의를 되살린 그는 이어서 쟝 피에르 듀오네(Jean-Pierre Dionnet), 필립 드류이에(Philippe Druillet), 베르나르 빠르까스(Bernard Farkas)와 함께 ‘인간연맹(Les Humanoides Associes)‘을 설립하고 잡지인 메탈 위를랑(영문판 ‘헤비메탈(Heavy metal)이 바로 이 잡지다!)을 발간하기 시작한다.

쟝 지로는 1974년 이 잡지의 창간호에 수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감흥을 준 작품, 아르작을 연재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본편보다도 표지에 장식된 거대한 일러스트가 더 유명한 작품으로, 본편에서도 단 한마디의 대사도 없이 문명을 판단하기 힘든 복식의 남자가 익룡을 닮은 생명체를 타고서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독특한 판타지 문명에대한 묘사와 거대한 스케일, 하늘을 날으며 부감으로 지상을 그려내는 과감한 구도는 수많은 그림쟁이들에게 말그대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잡지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SF와 판타지 만화의 집대성처럼 받아들여지며 수많은 이들의 광적인 환호속에서 높은 판매량과 인지도를 기록했고, ‘뫼비우스’로서의 활동의 중심점으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후 뫼비우스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인 ‘밀폐된 차고(Le Garage Hermétique)‘를 연재하며 뫼비우스 명의 또한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된다.

1977년에는 메탈 위를랑이 영어로 번역된 판본이 미국에 ‘헤비메탈(Heavy Metal)‘이란 이름으로 소개가 되면서 SF만화 잡지의 위상과 함께 뫼비우스의 이름을 미국에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다.

영화참여

1975년, 메탈 위를랑으로 이름을 드높인 ‘뫼비우스’는 SF영화 감독들이 눈독을 들였고, 마침 프랭크 허버트의 영화화를 계획하던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에게 참여 제안을 받고 미국에 방문하게 된다.1) 쟝 지로는 이 작품을 위해 3000장이 넘는 컨셉아트와 디자인 아트를 쏟아내며 열정을 쏟아부었고, 알레한드로 감독을 포함한 스탭들 또한 열정을 보이며 이 프로젝트에 임했으나, 지나치게 방대한 프로젝트를 잡았던 알레한드로 감독의 기획과 캐스팅의 충돌, 그에 따른 미국 영화사의 투자 기피가 겹쳐 영화 제작이 좌절되고 말지만2) 이 때의 인연으로 뫼비우스는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가 원작을 담당한 1978년작 ‘고양이의 눈’과 1981년작 잉칼을 그리게 된다. 이 당시 쟝 지로는 알레한드로 감독에게 완전히 심취해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말할 정도로 그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이 때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 감독의 소개 듄의 각본을 맡았던 '댄 오바논‘과 알게되어 1976년에는 그가 쓴 각본을 기반으로 ‘기나긴 내일(Long Tomorrow)‘를 그리게 되며 미국과의 교류를 확대하게 되는데, 이 작품의 분위기와 디자인은 후일 리들리 스콧의 영화 블레이드 런너의 컨셉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어 댄 오바논이 각본을 맡은 에일리언1의 감독 리들리 스콧의 강력한 요청으로 컨셉디자이너로 참여, 우주복을 비롯한 SF적인 요소에대한 컨셉 디자인을 담당하게 된다. (에일리언과 외계문명 디자인은 HR 기거가 담당) 이후 1982년 트론의 SF적인 슈트와 바이크 등의 컨셉디자인을 담당하기도 했다.

1982년에는 르네 라루감독의 SF애니메이션 시간의 지배자(Les Maîtres du temps)(국내에는 ‘타임 마스터’로 개봉)의 디자인, 원화, 채색, 각본으로 참여해 그 해의 판타지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아동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1989년에 개봉된 리틀 니모를 일본에서 애니메이션화 시킨 니모 NEMO3)의 각본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1989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만든 어비스의 컨셉아트를 담당하기도 했으며, 1997년 뤽 베송제5원소의 컨셉아트와 디자인을 담당하기도 했다. 4)

2002년에는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르작’을 직접 감독하여 만든 아르작 랩소디를 OVA형식으로 내놓기도 했다.

호도로프스키, 마벨 코믹스와의 합작

듄의 작업을 통해서 호도로프스키와 인연을 맺은 쟝 지로는 호도로프스키가 짠 스크립트를 기반으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잉칼을 그리게 된다. 이 작품은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SF의 걸작으로,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미래상과 지독하리만큼 직설적인 인간문명에의 독설, 오리지널적인 신화코드는 훗날 영화 제5원소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작품은 당시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쟝 지로-뫼비우스의 작품의 완성형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프랑스의 차량 업체인 시트로엥 광고에서 시작되어 확장되어 SF코믹스로 발전한 에데나의 세계(Le Monde d'Edena)를 그리기도 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확장된 시도를 하게 된다.

1988년, LA로 이사한 쟝 지로는 댄 오바논을 거쳐 알게된 스탠 리와의 협업을 통해 마벨 코믹스의 유명 만화 중 하나인 실버서퍼 시리즈 중 하나인 실버서퍼-Parable을 그리게 된다. SF의 거장 뫼비우스와 실버서퍼라는 히어로물의 만남이라는 그 자체로 충분히 소재가 될만한 것이었고, 그가 그려낸 이 실버서퍼는 이전의 히어로물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독특한 작품으로 나와 많은 이들에게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5)

뫼비우스 명의가 크게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쟝 지로, 혹은 질 명의의 작품을 소홀히 한 것도 아니었다. 1989년 7월 10일, 그의 출세작인 나바호 요새와 블루베리의 각본을 맡은 쟝 미셸 샤를리에르가 세상을 떠났지만, 쟝 지로는 블루베리 시리즈를 계속 이어가면서 뫼비우스와 쟝 지로의 두가지 스타일 작품을 병행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추가로 직접 연재한 것은 아니었으나 1997년에 일본의 만화가 타니구치 지로의 작화로 ‘잉칼’의 일본판본인 이카루를 잡지 ‘모닝’에 연재했으나 12회 연재 후 1부 완결 상태에서 편집장이 변경되면서 붕떠버려 2부 연재가 개시되지 못한 채 종료되고 말았다.

말년의 활동

2000년부터 지로는 자신의 지금까지의 행적을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한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쟝 지로= 뫼비우스’ 명의로 인사이드 뫼비우스 시리즈를 집필했다. 이 작품은 쟝 지로의 자서전이며 자신의 내면을 분석한 자가 분석지로, 자신을 캐릭터화 시킨 존재가 등장해 현재의 자신과 대담을 나누거나 자신이 만든 캐릭터 블루베리, 아르작 등과 대화를 나누며 자유롭게 자신의 작품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곤 했다.

2002년에는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르작의 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제작하는 등 자전적인 일에 상당히 몰두하며 세계 각국에서 전시회를 하는 등 식지않은 열정을 보였다.

2003년에는 국내에서도 유명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소설집 나무에 프랑스판에는 없는 28점의 일러스트가 추가되어 소설 특유의 상상력을 환상적으로 묘사해주었으며, 이 때의 인연으로 2007년 그의 소설 빠삐용에도 삽화를 담당해주었다.

2007년에는 쟝 반 암 원작의 소설을 만화화한 XIII의 첫 화를 그리기도 했으며, 같은해 BBC에서 제작된 자신의 다큐멘터리에 삽입된 오프닝 3D 애니메이션의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2008년 ‘밀폐된 차고’ 신작과 아르작의 신작 시리즈를 기획했으나, 아르작 신 시리즈는 첫 권을 선보이는 것을 끝으로 신작을 선보이지 못했다.

이 즈음에 대한민국에도 방한했던 적이 있는데, 2007년 SICAF에 참가, 용산CGV 극장에서 영화 감독인 박찬욱과 대담을 가지는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서거

2012년 3월 10일, 쟝 지로는 기나긴 투병 생활 끝에 파리에서 73 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직접적 사인은 악성 림프종에 의한 폐색전증이었다. 그의 장례식은 3월 15일 파리 7구의 생뜨 클로틸드 대성당에서 치뤄져으며, 가족 뿐만 아니라 많은 팬들이 참가해 그의 영면을 배웅했다고 한다. 만화 규장각에서 프랑스에서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리포트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다.

프랑스 문화부 장관 프랑수와 미테랑은 장례식에 직접 참여해 “프랑스는 지로와 뫼비우스라는 두 명의 위대한 예술가를 동시에 잃었다”고 추모 코멘트를 전했으며1), 일본에서도 오오토모 카츠히로, 우라사와 나오키, 타니구치 지로 등의 유명 만화가의 추모글이 잡지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의 유체는 장례 후 몽 파르 나스 묘지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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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고리

바깥고리

1)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는 이 때 지로에게 제안을 하지만 지로가 망설이자 ‘그럼 자네 친구인 필립 드류이에에게 물어보도록 하겠네’라고 하자 곧바로 ‘내가 가겠소’라고 했다고 한다
2) 듄은 이후 1980년대에 이르러 ‘에일리언’을 촬영한 직후의 리들리 스콧에게 맡겨졌다가 다시한번 좌절되고, 이어 1984년에 이르러서야 데이비드 린치 감독을 통해 영상화 된다. 결과물은 상당히 한심한 영화가 나와버리고 말았다
3) 무려 1982년부터 6년간 제작된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의 제작을 거친 세기의 뻘짓으로 만들어진 희대의 엽기작
4) 제5원소의 경우 잉칼의 컨셉이나 초기 씬 구성을 오마쥬한 부분이 상당히 유명했는데, 후에 잉칼의 시나리오를 담당한 알레한드로 감독이 뤽 베송과 영화사를 도용으로 고소하는 진풍경을 보이기도 했다. 참고로 알레한드로 감독이 패소했다.
5) 스탠 리는 이 작품의 ‘스토리’만을 건네주자 뫼비우스가 이 작품을 다 만들어왔다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참고로 영화 ‘붉은 10월’에서 ‘뫼비우스가 만든 실버 서퍼는 허당이다’라는 식으로 언급한 케이스도 있는 등 워낙 이전의 슈퍼 히어로물과 다르다보니 호불호가 엄청나게 갈린 작품이다.

 

덧글

사람/쟝_지로.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5/03/06 19:25 저자 에리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