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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the_pillows

the pillows (더 필로우즈)

the pillows의 로고. 1998년의 6번째 앨범 LITTLE BUSTERS에서부터 사용되었다.

the pillows는 1989년에 결성된 일본의 얼터너티브 락 밴드이다. 오리콘 같은 인기 차트의 상위에 드는 일은 극히 적고, 대중적인 인지도는 무척 떨어지는 밴드이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현역으로 음악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해외에서의 인기도 높은 밴드이다. 현재의 음악 레이블은 avex의 레이블인 avex trax 소속.

개요

버스터군

멤버는 야마나카 사와오(山中さわお), 마나베 요시아키(真鍋吉明), 사토 신이치로(佐藤シンイチロウ) 세 사람이다. 탈퇴한 멤버로 전 리더인 우에다 켄지(上田ケンジ)가 있다. 밴드로선 인원이 적기 때문에 녹음 시에는 서포트 멤버를 기용해서 연주하곤 한다. 이 네 사람의 멤버는 1989년 9월 16일에 더 필로우즈를 결성, 인디 음악 활동을 거쳐서 1991년 5월 21일에 첫 싱글 ‘비 오는 날 노래하면(雨にうたえば)‘으로 포니캐니언을 통해 메이저 활동을 시작한다. 1993년에는 리더인 우에다 켄지가 탈퇴, 한 동안 활동을 중단하였다가 1994년 킹레코드로 이적하여 활동을 재개했다. 2006년에 avex trax로 이적했다.

예전에는 밴드 이름을 the PILLOWS라는 대문자로 표기했으나 지금은 모두 소문자로 쓰는 것이 표준. 또한 흔히 일본어 카타카나로 그냥 ピロウズ라고 표기할 때도 많다1). 밴드 이름은 결성 당시, 멤버가 마나베 요시아키의 집에 모였을 때 마침 레코드 장에 있었던 영국 인디 레코드 레이블인 체리 레드 레코드의 옴니버스 앨범 ‘Pillows & Prayer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이름에 대해서 야마나카 사와오는 “다양한 음악을 작곡하는 송 라이터인 만큼, 밴드 이름은 장르를 특정하지 않는 이름으로 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the pillows의 멤버는 자신들의 팬을, 자신들의 노래인 ' LITTLE BUSTERS‘에서 딴 ‘BUSTERS’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또한 the pillows의 마스코트인 곰 모양 캐릭터의 이름 역시 이 이름에서 온 ‘버스터군’이다.

멤버

현재 멤버

야마나카 사와오(山中さわお)
  • 1968년 12월 7일 홋카이도 출신. 혈액형은 B형으로 애칭은 사와오.
  • 보컬과 기타 담당. 우에다 켄지 탈퇴 후 지금까지 계속 리더를 맡고 있다. 투어 상품의 디자인도 담당. 취미는 T셔츠 만들기, 우키요에(일본의 전통 풍속화) 수집. 딜리셔스 레이블 대표로서 이벤트 기획 및 소속밴드의 프로듀스 등을 맡고 있는 The Pillows의 리더.
  • 대부분 음악의 작사, 작곡을 담당. 실질적인 the pillows의 방향성이다.
마나베 요시아키(真鍋吉明)
  • 1962년 10월 2일 홋카이도 출신. 혈액형은 A형으로 애칭은 Pee쨩.
  • 기타를 담당하고 있으며 믹싱 엔지니어로도 참가. 취미는 일본사, 독서, 그리고 밥 말리(Bob Marley, 자메이카의 유명한 레게 뮤지션).
사토 신이치로(佐藤シンイチロウ)
  • 1968년 8월 16일 이바라키현 출신. 혈액형은 O형으로 애칭은 신쨩.
  • 드럼을 담당하고 있으며 취미는 파칭코와 아마츄어 야구.

탈퇴 멤버

우에다 켄지(上田ケンジ)
  • 1965년 8월 30일 홋카이도 출신. 혈액형은 O형으로 결성시부터 1993년까지 베이스를 담당.
  • 결성시부터 탈퇴시까진 리더를 맡고 있었다.

서포트 멤버

스즈키 준(鈴木淳)
  • 1968년 7월 18일 치바현 출신. 혈액형은 B형으로 애칭은 쥰 또는 쥰군.
  • 1999년부터 현재까지 베이스를 맡고 있으며 레코딩 등에 참여하고 있다.
  • 솔로프로젝트인 ‘fragment’로도 활동중.
카시마 타츠야(鹿島達也)
  • 전 서포트 멤버. 현재는 서포트 멤버에서 탈퇴.
  • 1962년 8월 20일 도쿄 출신. 혈액형은 B형.
  • 베이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서포트 멤버로 레코딩 등에 참여했다.

연혁

the pillows는 밴드 구성이나 음악 경향을 가지고 제 1기(1989년-1993년), 제 2기(1994년-1996년), 제 3기(1996년-현재)로 나눌 수 있다.

제 1기

제 1기는 결성일인 1989년 9월 16일부터 초대 리더인 베이시스트 우에다 켄지가 탈퇴하는 1993년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 우에다 켄지가 밴드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며 각 멤버의 실력 역시 아직 발전 중인 시기였다.

우에다 켄지는 자신이 직접 만들었던 ‘KENZI&THE TRIPS’라는 그룹을 해산한 후, ‘코인로커 베이비즈’라는 그룹에서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던 야마나카 사와오와 새로운 밴드 결성을 구상한다. 그 후 ‘KENZI&THE TRIPS’의 드러머였던 사토 신이치로를 영입, 또한 그룹 ‘페르샤’의 기타리스트였던 마나베 요시아키를 영입하여 1989년 9월 16일에 the pillows를 결성한다. 원래는 이 때 야마나카 사와오가 보컬, 기타를 맡고 베이스로 우에다 켄지, 드럼에 사토 신이치로라는 3인 밴드를 구상했으나 야마나카 사와오 본인이 밝힌 “기타 솜씨가 엉망이어서 다른 두 사람이 골머리를 앓은 끝에”라는 이유로 급히 기타리스트를 오디션으로 뽑아서, 마나베 요시아키가 합류하게 된다.

이렇게 결성된 the pillows는 인디 음악 활동을 시작하여 캡틴 레코드에서 2장의 미니 앨범을 낸다. 1991년에는 포니캐니언에서 싱글 ‘비 오는 날 노래하면(雨にうたえば)‘을 발매, 메이저 데뷔를 하게 된다. 이후 싱글 2장과 앨범 2장을 낸다. 이 시기의 the pillows에는 명확한 장르나 방향성이 없었으며, 멤버의 말에 따르면 “The Beatles 같은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싶다”라는 막연한 공통 인식만이 존재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펑크 락 밴드로 나름대로 인기를 자랑했던 KENZI&THE TRIPS의 지명도도 있고 하여, 처음에는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했지만 밴드 내의 음악성의 차이가 점점 심해져, 결국 1993년에 리더인 우에다 켄지가 탈퇴를 하기에 이른다. 이 때의 the pillows는 우에다 켄지와 야마나카 사와오라는 두 명의 작곡자가 활동을 했지만 각자가 지향하는 음악성이나 밴드의 방향성이 달라서, 결국 리더가 탈퇴한 후 레코드 회사를 이적하기도 하여 일 년 가까이 밴드 활동을 쉬게 된다.

제 2기

제 2기는 탈퇴한 우에다 켄지를 대신하여 보컬인 야마나카 사와오가 리더가 되어 활동을 재개한 1994년부터, 1996년에 앨범 ‘Tiny Boat’의 실패를 계기로 하여 활동 방침을 전환하게 된 때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우에다 켄지가 빠진 새로운 the pillows를 모색한 시기로, 제 3기로 가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이다.

우에다 켄지의 탈퇴 후 1년 정도의 휴식 후 활동을 재개한 the pillows는 새로이 야마나카 사와오를 리더로 하고, 베이시스트로는 서포트 멤버로 그룹 ‘SUPER BAD’의 카시마 타츠야를 영입한다. 또한 레코드 회사는 킹레코드로 바뀌는 등 밴드의 방향성이 크게 바뀌게 된다. 이 시기에는 싱글 3장과 앨범 2장을 발매한다. 이 시기의 곡 특징으로는, 리더가 된 야마나카 사와오가 소울이나 보사노바 풍을 도입하여, 다양한 리듬과 가벼운 멜로디를 지향한 곡이 많았다. 그런 만큼 이 시기에 대해서는 야마나카 사와오가 “팔릴 만한 음악을 엄청나게 의식했던 시기”라 밝히듯, 주위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타이업 같은 상업 전략을 적극적으로 시험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에 비해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으며, 점차 주위 생각과 스스로의 음악성 사이의 차이가 멤버들을 괴롭히게 된다. 특히 1996년 1월에 발매한 5번째 싱글 앨범인 ‘Tiny Boat’의 판매 저조에 멤버들이 큰 실망을 하고, 이것이 제 3기로 가는 계기가 된다.

제 3기

제 3기는 1996년 6월에 싱글 '스트레인지 카멜레온‘을 발매한 이후, 현재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얼터너티브 락이라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현재의 the pillows라는 이미지도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6번째 싱글인 ‘스트레인지 카멜레온’에서는 대중적인 음악에 실패한 자신들의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가사와 함께 곡 자체도 지금까지의 the pillows가 가졌던 음악성을 크게 부정하는 스타일을 추구했다. 이 때문에 ‘스트레인지 카멜레온’은 발매에 반대하는 레코드 회사와 멤버가 대립한 결과 반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이 곡을 수록한 정규 앨범인 'Please Mr. Lostman‘은 멤버에게 있어서 인디 세계로 돌아갈 각오까지 되어 있던 ‘음악 업계에 대한 유서’라고도 할 수 있는 앨범이었다.

이렇게 밴드 방향성을 크게 전환한 the pillows는, 이후 ‘스트레인지 카멜레온’이 라디오 방송국에서 추천곡으로 뽑히는 등 점차 지지를 얻게 된다. 또한 이 역경을 함께 넘어선 멤버나 스탭 사이의 결속도 더욱 강해져서 이어서 발매되는 6번째 정규 앨범 'LITTLE BUSTERS‘에서는 야마나카 사와오가 “처음으로 듣는 사람 쪽을 향한 감사의 마음”으로 노래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후 the pillows는 얼터너티브 락이라는 스타일을 굳혀서 현재의 락 밴드 형태를 확립해 가며, 이 때부터 서포트 멤버로 카시마 타츠야를 대신해서 스즈키 준이 베이스를 담당하게 된다.

이 시기부터는 정규 앨범과 병행하여 베스트 앨범 등도 상당한 수를 발매하게 되며, 2004년에는 데뷔 15년을 기념한 셀프 커버 앨범이나 트리뷰트 앨범도 발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다. 2006년 말에는 avex trax로 레이블을 이적, 이후 2007년에는 킹레코드에 있었을 때의 싱글 수록곡을 담은 싱글 컬렉션도 발매한다. 또한 2000년 이후로는 일본 국내보다도 해외에서 더 잘 알려진 밴드가 되어, 해외 라이브 등도 행하게 된다. 2005년에는 미국 투어를 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해외 투어는 매번 큰 성공을 거두는 등, 해외에서의 인기는 the pillows의 멤버 자신들도 놀랄 정도.

사실 이러한 해외에서의 인기는 2000년 작 가이낙스 (GAINAX,ガイナックス)의 애니메이션 '프리크리‘의 영향이 큰 것으로, 실제 프리크리 내의 삽입곡이나 테마곡 등은 대부분이 the pillows의 곡으로 채워져 있다. 프리크리는 미국 카툰 네트워크에서의 방송을 통해 영미권에서 큰 인기를 모으게 되었으며2)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이를 통해 the pillows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2008년에는 Oasis의 방일 공연에 참가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거절하는 편이 더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2009년에는 결성 29주년을 기념하여 2장의 베스트 앨범을 발매하고, 다수의 투어, 또한 YouTube를 이용한 전 세계 규모의 커버 컨테스트 기획 등을 하고, 현재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참여작품

바깥고리

1) 특히 일본의 음반 매장 등에서는 the를 기준으로 해서 さ 항목에 위치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ひ 항목에 위치하기도 하는 등 찾기가 불편한 편이다
2) ‘프리크리’는 일본에서도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에반게리온의 대성공으로 인해 많이 가려지는데 비해, 영미권에서는 에반게리온에 필적한 만큼의 인기를 끌었다

 

덧글

사람/the_pillows.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1/06/30 20:08 (바깥 편집)